단순지향주의자

어디론가 틀어박히고 싶은 날

by 윤태진
출판단지 한 구석에 자리잡은, 애정하는 카페에 앉아


거래처에서 일방적으로 지금까지 이야기해오던 모든 계획을 취소하겠다고 통보를 해왔다. 물론 미안하다는 말투였지만 그렇다고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도 아니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지금껏 들인 돈과 시간은 고스란히 나의 책임 되고 말았다. 우리 쪽이 ‘갑’인지 ‘을’인지 애매모호한 관계였는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우리 쪽이 ‘을’이었다는 걸 단번에 깨닫는다. 그 정도야 별거 아니라며 안심시키더니 다음에 기회를 봐서 하자는 건 아쉬울 게 없는 놈이나 하는 소리다. 계약서를 쓰지 않은 내 잘못이지 뭐.

어디론가 틀어박히고 싶은 날이다.


어릴 적 부모님에게 크게 혼날 때면 방에 틀어박혀 청소를 하던 특이한 습관이 있었다. 3평 남짓한 작은 방이었고 책상과 침대가 전부였다. 그 좁은 방 책상에 찌그려 앉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라도 되는 듯 못나게 굴었다. 돌이켜보면 참 촌스러운 아이였다. 여느 사춘기 소년들이 그러듯 허세와 자의식 과잉, 밑도 끝도 없는 분노와 설움. 여기에 청승맞게도 울긴 또 왜 그렇게 자주 울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울 때면 서럽게 훌쩍이며 청소를 했다. 누가 봤으면 별 미친놈이 다 있네 했을 모습이었다.

쓸고 닦고 책장에 꽂힌 책의 높이를 가지런히 정리했다. 책상 유리 아래 깔아 둔 연예인 사진들을 다시 정돈했으며, 서랍 속에 던져둔 카세트테이프를 가지런히 배열했다.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득했던 책상을 정리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나름의 방법이었던 것 같다.

그때의 버릇 때문인지 지금도 청소에 대한 강박이 있다. 결벽증이라고 하기에는 그 증상이 미약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가 되어있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일종의 강박에 시달리기도 한다.(물론 이 강박은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라졌다.) 덕분에 매일 참 부지런히도 청소를 했다. 몸이 아무리 피곤해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천근만근 몸을 이끌고 집구석을 청소할 때면 내가 미쳤구나. 잠이라도 한 숨 더 자지 이게 뭐하는 짓이지 라고 생각하며 자책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수십 년을 살다 드디어 해법을 찾았다. 뜬금없게도 법정스님 덕분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이 있다. 법정스님은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모든 책을 절판시켜 달라며 본인 스스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시려 했지만 덕분에 스님의 책은 한정판이 되어 고가로 수집가들에게 매매되고 있는 상황이다. 무소유가 이렇게 어렵다.

『무소유』에 이런 글이 있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곰곰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실제로 소유가 주는 불편함과 괴로움이 적지 않다는 걸 공감, 절감하게 된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은 소유에서 시작되고 덕분에 불편하다는 것.


주위를 둘러보니 당장 눈에 뜨이는 책도 역시 그렇다. 책이야 말로 소유함으로써 오는 괴로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물건 중 하나다. 물론 책장 가득 꽂혀있는 책을 볼 때면 안도감과 만족감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소유한다고 당장에 나의 지적 수준을 높여주지도 않는다. 더구나 적지 않은 공간을 차지하며 이사 때마다 처치곤란의 가장 무거운 짐이 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책장에는 읽지 않은 책이 훨씬 많으며 언제 읽을지도 과연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읽지 않는 책은 짐일 뿐이고, 언젠간 읽어야 한다는 부채감을 줄 뿐이다.

비단 책뿐이랴. 옷도 신발도 화분도 컴퓨터도 태블릿 PC도 장식품도 에어컨도 비싼 자전거도 술도 따지고 보면 고민과 걱정의 시작이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없어선 안 될 것들이다. 소유에서 오는 불편함은 없겠지만 당장 삶의 모든 것이 불편해지고 만다. 세상 어느 것이든 뭐든지 과해선 안 된다는 것쯤은 알 나이가 되어 다행이다.

그래서 단순한 삶을 지향한다. 물론 단순하게 살지는 못한다.

단순하게 산다는 것은 말처럼 단순하지 않다. 꼬이고 꼬여 풀리지 않는 뭉텅이가 되고 그 뭉텅이를 풀려고 쭈그려 앉아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실이야 꼬여 뭉텅이가 되면 끊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우리 인생은 그럴 수 없다는 게 통탄할 일이다.

단순한 삶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복잡한 삶을 사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너처럼 복잡하게 사는 인간이 무슨 단순함을 논하냐고 손가락질한다면 기꺼이 그 손가락에 볼을 내밀어야 할 지경이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구입한지 십 년도 넘은 옷들이 옷장 가득하다. 책상 서랍 역시 마찬가지다. 수년 전 여행지에서 사 왔던 열쇠고리, 마땅히 세워져 있어야 할 액자, 구식 휴대폰, 건전지, 양말, CD포켓, 누워서 TV를 볼 수 있는 안경, 식염수, 블랙박스, 종이컵, 연고, 외장하드, 시계, 안경, 교정기, 스피커 등 아무런 규칙도 정리도 없는 아노미 상태다. 눈에 거슬리면 어디든 쑤셔 넣고 보는 성격 탓에 책상이고 창고고 대체로 이런 판국이다. 여우 앞의 토끼가 눈 속에 고개를 처박고 완벽히 숨었다고 생각하듯 일단 내 눈에 안 보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책 욕심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책장이 폭발하는 중인데도 책을 사다 나른다. 언젠간 읽겠지 라는 욕심 때문이고, 요즘에는 어린 자식들이 훗날 커서 읽겠지 라는 기대로 책을 모은다. 한글도 배우기 전인 자식들에게 독서의 의무를 전가하는 중이다.

이런 복잡함을 멈춰야 한다고, 과감히 모든 것을 털어버려야 한다고 자책하지만 그 와중에도 택배는 쉴 새 없이 날아온다. 여기에 얼마 전 구입한 자전거와 아기 미끄럼틀이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단순함 삶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 걸까?

오늘 옷장에서 누렇게 변한 티셔츠를 세 장이나 과감히 버렸다. 며칠 동안 방치되어있던 냉장고 속 맥주도 세 캔이나 해치웠다. 박차를 가해 찬장에 숨겨둔 사발면도 하나 처리할 생각인데. 뭐. 뭐든지 조금씩 천천히 나아가면 된다고 믿는다. 난 오늘도 조금씩 단순해지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필요한 건 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