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을 위한 준비물

나와 작별할 시간이 된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한다

by 윤태진
물론 내 방은 아니다. 내 방이 이런 모습이길, 늘 희망한다


단순한 삶을 지향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자. 청소, 정리, 버리기 등 살면서 쌓아온 짐을 덜어 내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버린다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 천천히 시간을 들여 버려야 한다. 무작정 버리고 나면 꼭 다시 사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한다. 방이 좁아 보인다는 이유로 커다란 책상 의자를 팔아버리고, 수건을 널어놓으면 되겠지 라며 가습기를 팔아 버리고는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러니 신중해야 한다. 과연 이 녀석이 나와 작별할 시간이 된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이 의자를 버리면 어디에 앉을 것인지, 가습기의 간편함을 대처할 부지런함은 있는지 따위를 말이다.

‘버리기’에 대한 노하우를 쌓아가며, 오늘은 고심한 끝에 오래된 신발 한 켤레와 책 몇 권을 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수 천 개의 물건이 남아 있다. 나에게 쓸모없는 물건들은 곧 버려질지 모르니 몸 사리는 게 좋을 거라는, 거만한 눈빛으로 녀석들을 노려본다.


“넌 요즘 영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저와의 첫 만남을 벌써 잊으셨나요?”

“첫 만남 따위.”

“예전처럼 절 사용해주세요.”

“쳇. 낡아빠진 구두 녀석.”


이게 바로 권력이란 걸까? 권력은 역시 폭력적이다.

일단 물질적인 복잡함이 정리되면 이제 필요한 건 마음가짐이다. 마음속의 짐들 역시 덜어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자면 애인 앞에서 저질렀던 찌질한 행동들, 술 마시고 객기에 저지른 부끄러운 순간들, 꼴 보기 싫은 동료, 오르는 전셋값, 그것보다 더 오르는 집값, 불안한 고용, 필연적으로 고민해야 할 창업, 적신호를 알리는 건강검진 등 온갖 잡념들을 멈춰야 한다. 복잡한 머릿속을 쉬게 할 필요가 있다.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싶지만 단순지향주의자로서 시도를 해보자. 하지만 역시 불가능할 것이다.


보통 이럴 때는 명상을 해야 한다. TV 속에서 많이 봤다. 온몸에 힘을 뺀 채 배에 힘을 주고 단전호흡을 하는 것이 시작이다. 문제는 몸에 힘을 뺀 채 배에 힘을 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른다는 점이고 그게 과연 가능한지 회의감이 든다는 것이다.

어쨌든 해본다. 단전호흡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호흡이란 게 별거 있겠나 싶다. 일단 부드럽게 들숨, 날숨을 반복하며 호흡을 한다. 그래, 이제 천천히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자. 복잡하기가 실타래 같은 마음을 하나씩 풀어나가면 된다. 보통 엉킨 실타래를 풀다 화가 치밀어 가위로 시원하게 잘라버리고는 했지만 그건 억압에서 온 폭발이었을 뿐이다.

마음의 실타래를 과연 어떻게 푸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더 가열차게 몸에 힘을 빼보기로 한다. 눈을 감고 어깨를 탁탁 털며 흔들어도 보고, 깊이 숨도 들이마셔보고 또다시 내쉬고. 힘을 제대로 뺐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몸 어딘가 힘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허리 힘을 빼자니 자세가 구부정하고 이럴 거면 그냥 눕는 게 나은 게 아닌가 고민도 된다.

온몸에 힘을 빼고 배에만 힘을 줬더니 방귀가 나올 것 같다. 가만히 있으려니 몸이 뒤틀리고 좀이 쑤신다. 몸에 힘을 빼는 게 이렇게 힘든 거였나? 단순해지려 했는데 오히려 더 많은 고민에 빠진다. 정작 명상은 시작도 못했는데 이미 에너지의 절반 정도를 써버린 것 같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거 조금 더 해보기로 하자. 잘하고 있는지 의심스럽지만 마음속 근심 걱정을 하나 둘 떠올리며 정리의 시간을 가져본다.

우선 요즘 눈에 거슬리는 인간 하나를 떠올렸다.

‘알량한 권력과 자존심에 날 괴롭히고 귀찮게 하지만 그 인간도 나름의 고통을 안고 살겠지. 그런 몹쓸 성격이라면 얼마나 삶이 괴롭겠어. 더구나 그 사람은 나보다 못생겼단 말이지. 그렇다고 내가 잘생긴 것도 아니니 그 사람은 대체 얼마나 사는 게 힘들까.’

일단 명상이 시작되니 물 흐르듯 생각이 이어진다. 놀라운 경험이다.

‘더구나 그 인간도 언젠간 죽을 거 아니야. 성격이 그렇게 더러우면 금방 죽지 않을까? 성격이 더러우면 단명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아. 내 성격은 어떻지? 더러운가? 오래 사는 게 승리는 아니지만 일단 오래 살고 볼 일이지. 뭐 어찌 되었건 더 이상 갈등 생길 일을 만들지 말자. 되도록이면 얼굴 안 보고 살면 되잖아.’

역시 깊이 고민하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다. 이것이 명상의 효과다.

‘어쩔 수 없이 봐야 한다면 그 인간의 눈썹 사이 모공을 보자. 모공 정도는 봐줘도 되잖아. 모공에 벌레가 산다는 상상을 하면 노려보기가 좀 수월할지도 모르겠다. 작은 벌레가 기어 나오길 기다리며 얼굴을 바라보면 오히려 그 인간이 안쓰러워 보이진 않을까?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쯤은 저주의 시간을 갖도록 하자. 돈을 잃어버리거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교통사고로 죽게 해달라는 저주는 너무 잔인하니까 그런 저주는 참자. 그 사람에게도 가족은 있을 거 아니야. 가벼운 저주 몇 개는 괜찮겠지.’

잠시 명상을 하니 놀랍게도 더 이상 그 인간이 밉지 않았다. 정말 놀라운, 마법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몸에 힘을 빼며 느꼈던 졸음도 어느새 인가 사라졌다. 명상을 잘 마친 건지 모르겠지만 정신이 맑아진 기분이다. 마음의 여유를 2% 정도 찾은 것 같다.


이렇게 마음 정리의 시간을 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또 왠지 뭔가 지저분해 보인다. 연필꽂이의 물건들이 오늘따라 너저분해 보이고 책상 위 잡동사니가 정신을 사납게 한다. 책상 서랍도 오랜만에 정리를 한번 해줘야 할 것 같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다. 졸리긴 하지만 그래도 청소의 욕망이 날 자극한다. 치우고 싶다. 하지만 지금 자지 않으면 내일 회사에 가서 힘들겠지? 아침에 일어나면 또 얼마나 피곤할까? 치울 게 그렇게 많은 건 아니니 한 시간 정도면 될 것 같긴 한데. 시작해? 말아?

단순함을 지향하며 사는 게 이렇게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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