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 소설이 필요한 인생

가슴이 꽉 막힌 세상을 살다 보니 그런 것 같다

by 윤태진
영화 <7년의 밤> 중 한 장면


여름 하면 역시 스릴러다.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스릴러야 말로 무더운 여름을 무사히 보내는 노하우 중 하나다. 무더운 여름, 에어컨 아래 누워 스릴러 소설 한 권 펼쳐 들고 시간을 보내는 건 이제 하나의 공식이 되었을 정도다. 괜찮은 소설을 선정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책 값 만 원 정도면 더 이상 필요한 건 없다. 물론 일급 호텔 수영장 썬베드에 누워 읽는 다면 더 좋겠지만 뭐 책을 그렇게까지 읽나 싶다, 고 말하는 건 부러워서다.

마찬가지 이유로 공포 영화를 찾기도 하는데 영화는 솔직히 너무 무섭다. 영상으로 보이는 귀신은 기억 속에 새겨져 며칠 밤 나를 괴롭게 만든다. 특히 기억에 남는 귀신은 영화 <주온> 속 어린아이 귀신인데.(사실 영화를 본 것도 아니다. 우연히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장면이 전부다) 이불속에서 느닷없이 등장하는 푸르스름한 듯 시커먼 귀신의 모습은 '섬뜩함' 그 자체였다. 스치듯 본 장면이지만 밤잠을 설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대체 어떻게 죽으면 그렇게 무서울 수 있는 건지 그 사연이 궁금하긴 하다. 그렇다고 영화를 볼 생각은 결코 없다.

이런 이유로 여름이면 스릴러 소설을 찾는다. 다소 잔인하긴 하지만 뭐 매일 밤 뉴스로 보도되는 살인사건도 비슷하다.(당연히 현실이 가장 무섭다고 생각한다)


스릴러 소설을 즐기는 가장 큰 이유는 '가식'이 없다는 거다.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스릴러 소설 안에 가식은 있을 수 없다. 또한 그 악당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 역시 악을 무찌르겠다는 명확한 목표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저렇게 살아도 될까 싶을 정도로 몰입하여 악을 쫓는다. 물론 그 해결 과정과 얽히고설킨 사연이 복잡할 테지만 목표가 명확하니 독자 역시 흔들릴 이유가 없다. 그래서 잡는 거야 못 잡는 거야라는 물음만 있다.

스릴러 소설에는 통쾌함도 있다. 악인의 살인이든 선인의 응징이든 이들의 행동에는 주저함이 없다. 살인범은 죽이고 싶은 사람을 꼭 죽인다. 잔인하게 죽이기도 하고 복잡하게 죽이기도 하고 또 단순하게 죽이기도 한다. 주인공 역시 범인을 잡는다. 힘겹게 잡기도 하고 쉽게 잡기도 하고 처절하게 잡기도 하지만 결국 선은 악을 물리친다.

가슴이 꽉 막힌 세상을 살다 보니 그런 것 같다.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뉴스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 기사 하나 속 시원한 게 없다. 심지어 명확한 악당과 범인을 눈앞에 두고도 처벌하지를 않는다. 늘 지지부진한 법적 절차가 이어지고 결국 범인은 유유히 잘 먹고 잘 산다. 무더운 여름 이런 기사를 보고 있으면 없던 더위도 생길 지경이다. 그러니 악당은 벌을 받고 우리의 주인공은 행복하게 사는 통쾌한 스릴러를 펼쳐 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좀 변태스러운 고백인데, 솔직히 말해 스릴러 소설에 등장하는 악당들의 놀라운 활약(?)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응원을 하곤 한다. 악당의 살인, 그것도 잔인한 토막살인 따위를 저지르는 악당을 응원한다는 것이 변태스럽지만 솔직히 그렇다. 물론 그 악당이 붙잡혀 처형당하는 것을 더 간절히 원하기도 한다. 보통 악당이 잔인할수록 마지막의 쾌감은 커지기 마련이다.

동물의 세계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에서 종종 굶주림에 지친 사자가 사슴이나 물소 따위를 사냥하는 게 나온다. 그때 사자가 초식동물의 사냥을 성공하길 바라는 사람이 있고 실패하길 바라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보통 육식동물을 응원한다. 이와 비슷한 심정으로 소설을 보는 것 같다.

특히 매력적인 악당을 좋아하는 데 무늬만 인간인 그들이 경찰이나 특수요원을 농락하며 더 강력하고 잔인한 나쁜 짓을 벌이길 기대하며 소설을 읽는다. 기억에 남는 악당으로는 실제 존재했던 살인자의 연쇄 살인을 배경으로 했던 소설 『차일드 44』의 안드레이와 정유정을 일약 스타로 만든 『7년의 밤』의 남편 영재, 제목부터 엽기스러움을 자랑하는 『눈알 수집가』의 눈알 수집가(심지어 같은 작가의 책 『눈알사냥꾼』도 있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이 있다니 라고 생각하며 읽었던 『밀레니엄』의 마르틴 방예르 등등.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매번 악당을 놓치는 형사의 한심함을 욕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갈대 같은 마음이다. ‘넌 애가 왜 그렇게 눈치가 없니? 범인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 CCTV는 장식이니? 위치추적은 왜 안 하니?'


범죄소설을 주로 쓰는 최혁곤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기술의 발달로 추리소설 쓰는 게 점점 더 어려워졌다고. 치밀한 범죄를 만들기가 예전보다 쉽지 않아졌다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사방이 CCTV에 블랙박스에. 좀처럼 눈을 피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러다 또 악당이 끝내 붙잡히지 않고 유유히 도망가는 결말을 보면 다시 또 화가 치민다. 그런 작품의 작가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결말이 대체 왜 이럽니까?”

"글쎄요.”

"지금 나랑 장난합니까?"

"일종의 열린 결말입니다만."

"전 닫힌 걸 좋아합니다. 잘 때도 방문을 꼭 닫고 자는 걸요."

"이산화탄소 농도가 짙어 건강에 해로울 텐데요."

"지금 나랑 장난합니까?"

"닫힌 결말의 위험함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선호하는 취향을 보면 일상의 욕망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난 많이 억압되어 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죽이려면 단칼에 깔끔하게, 복수 역시도 단숨에 화끈하게.

삶도 소설도 단순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인생은 열린 결말이길 바란다.

'주인공 윤씨는 모든 악당을 물리치고 영웅이 되었는데 하늘이 도와서인지 로또 복권에 2주 연속 당첨되었으니 그의 행복한 인생은 이제부터다.' 이런 결말이라면 열려있는 게 아무래도 좋겠다.


* 상단 자료 사진 역시 영화 <7년의 밤> 공개 이미지 중 한 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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