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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pi Jul 29. 2022

세대전쟁 in 스웨덴

11-2 Västra Götaland - '안전'이라는 가치와 Volvo

* Västra Götaland 서부 해안의 Härön 섬 전경


스웨덴은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이다. 인구 천만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임에도 스웨덴은 제조업의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미국의 GM과 독일의 지멘스와 함께 세계 3대 전장업체인 ABB, 1912년 세계 최초의 진공청소기를 개발한 가전업계의 강자 Elextrolux, 산업 필수장비인 공기압축기(일명 컴프레서) 분야 세계 1위의 세계적인 산업장비 업체인 Atlas Copco, 세계 최초의 수소 철강 생산에 성공한 철강업체 SSAB, 우리나라 최초의 전화를 가설해주기도 했던 세계적인 통신기업 Ericsson, 그리펜 전투기로 유명한 방산업체 SAAB 등 스웨덴이 배출한 세계적인 기업들은 열거하기에도 바쁘다.


그러나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역시 현대 산업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업체인 'Volvo'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Volvo가 스웨덴은 물론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가지고 있는 위상은 상당하다.

1920년대 생산된 Volvo의 초기 모델(사진 : 볼보 박물관)

   

자동차 판매대수가 많아서 그럴까? 아니다. 실제로 세계 자동차 총판매대수 순위를 보면 Volvo는 10위권 밖이다. 우리나라의 현대기아차가 5위권임을 감안하면 13~14위권 수준의 Volvo는 미약하다.


그런데 왜? Volvo가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가. 그 대답을 알려면 일단 'Volvo'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그렇다. 우리는 'Volvo는 안전이다.'라는 말에 익숙하다. 몇 년 전 유명 아나운서 커플의 대형 교통사고에도 불구하고 경상에 그친 뉴스로 유명해지기 훨씬 이전부터, 볼보가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것은 바로 '안전'이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835087  


Volvo 자동차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볼보자동차가 1927년 차를 만들기 시작한 이유는 당시 스웨덴의 도로 사정에 맞는 충분히 안전하고 튼튼한 차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볼보의 창립자인 Assar Gabrielsson과 Gustaf Larson도 '자동차는 사람이 운전한다. 그러므로 볼보에서 제작하는 모든 것은 안전이라는 지상과제를 기본으로 하며, 이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이라고 언급했다 한다.


북유럽은 산악지대가 많고 척박한 환경으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모든 척박한 환경을 가진 나라들이 안전을 강조하는 차량을 만든 것은 아니지 않은가. 도요타가 지진 발생에 안전한 자동차에 주력한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인류애적인 발상으로 '안전'이라는 가치를 고수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기업 차원에서 좀 더 고차원적 이미지 메이킹을 통한 경쟁력 확보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더 높은 이익을 창출한다는 목표로 귀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Volvo는 1959년 세계 최초로 3 점식 안전벨트를 장착한 모델 PV 544를 발표했는데, 이에 대한 특허 등록을 통해 엄청난 수익을 거둘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경쟁업체도 사용할 수 있도록 1963년 그 기술을 공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것이 어쩌면 60년이 넘도록 Volvo의 안전 철학을 광고비 한 푼 들지 않고 세상에 널리 알린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안전을 위한 혁신적인 기술을 널리 공유하는 기업인 Volvo로.    

1959년 세계 최초로 3 점식 안전벨트를 장착한 Volvo의 PV 544 모델(사진: 볼보 박물관

* Volvo의 엔지니어인 Nils Bohlin에 의해 개발된 3점식 안전벨트는 기존 2점식이 장기 파손 등의 문제를 야기한다는 문제점을 보완하여, 인체의 가장 단단한 부위인 어깨, 가슴, 골반 뼈를 지나는 방식으로 개발되었으며 전 세계 1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구한 자동차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술로 평가됨



한편 Volvo가 '안전'이라는 가치를 결코 대외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만 쓰지 않고 진정한 자신들만의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는 사실은 단순히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내부 근로자들의 언급에서도 나온다.


Volvo의 한 디자이너가 쓴 책에 따르면, 내부의 디자인이 아무리 멋져도 안전에 반하면 절충은 있을 수 없고 반드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바, 안전하지 않은 자동차는 아무리 빠르고 실용적이라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념이 Volvo를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이러면 국제 규격은 통과해도 볼보 규격은 통과하지 못한다'라는 말을 내부에서 많이들 한다고 한다.

세계 최초 사이드 에어백(사진 : 볼보 박물관)

이러한 Volvo의 가치는 일련의 기술 개발로 이어지는데, 이중접합 래미네이트 안전유리 개발(1944), 자체 안전도 검사 시작(1949), 세계 최초 후방 어린이 안전시트 개발(1964), 충격흡수식 범퍼 장착(1974), 급제동 방지 브레이크 개발(1984), 세계 최초 사이드 에어백 및 측면보호시스템(SIPS) 개발(1994), 커튼형 에어백(IC) 및 경추보호시스템(WHIPS) 개발(1998), 전복 방지 시스템(2002) 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볼보는 운전자 이외 자신들이 만든 차로 인한 피해도 최소화하고자 보행자 감지 자동 브레이크 개발(2010), 보행자 충격 대비 에어백 장착(2012), 자전거 감지 자동 브레이크 개발(2013) 등을 개발하면서 자동차 운전에 있어서 '안전'이라는 개념을 운전자에서 보행자로 확대한다.  엄청난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자동차 외부 충격 피해자를 위한 시스템 개발(사진 : 볼보 박물관)


이러한 볼보의 '안전'에 대한 철학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보이는데, 그 바탕에는 '인간'이 있으며 그 인간에는 '운전자', '보행자' 그리고 볼보를 만드는 '직원'들로 이어진다.

Volvo의 직원 대상 골프 강습의 설명(사진 : 볼보 박물관)

노동자의 권리라는 개념 자체가 척박한 1930년대 Volvo는 이미 골프 강사를 고용하여 공장 내에서 직원들이 근무시간 중 강습을 받게 했는데, 창업주인 Gabrielsson은 골프를 통해 직원들이 단합하고 건강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결국 작업 능률의 향상으로 이어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이는 하나의 단적인 사례일 뿐이고 Volvo의 직원들에 대한 복지는 거창하지 않고 당장 휴가와 근무시간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 엄격하게 준수하는 직원들의 휴가로 공장 라인을 제외한 스웨덴 본사의 모든 부서가 7월 중순에서 8월 중순까지 4주간 아예 문을 닫는다던지(물론 대부분의 스웨덴 회사들이 그렇기도 하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초과 근무를 지양하고 정시 퇴근해 '저녁이 있는 삶'을 당연시 여기고 특히 금요일 오후 3시부터는 조기 퇴근이 회사 전체적으로 정착되어 있다고 한다.



그럼 이제 볼보는 새로운 시대 어떤 가치를 추구해나갈 것인가. 그들은 '기후변화'라는 인류의 커다란 숙제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전기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향후 이를 핵심 사업으로 구상하여 나갈 예정이다. 화석연료 감축을 위한 스웨덴의 정부-기업 협력 조직인 fossil-free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스웨덴 내 온실가스 배출의 19.3%가 자동차에서 발생하여 1위를 차지하고, 그 대부분은 트럭 등에 의한 도로수송(haulage)이다.


이에 대비하고자 Volvo는 전기트럭 양산을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 진출도 올해 말에서 내년 초에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시대, Volvo는 안전에 이어 '기후변화에 기여한다'는 '있어 보이는 마케팅'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가치를 이어가면서 계속해서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지위를 공고히 해날 것인가. Volvo의 행보를 주목해 볼 만 하다.

예테보리 Volvo Trucks 본사에 한국 진출 예정 전기 트럭 제작 관계자들과 함께(2022.4월)

  



발표를 다 들은 박사장이 입을 열었다.


"'안전'이라는 가치에 집중하고 안전하지 않은 자동차는 아무리 빨라도 소용없다고 고집하는 것이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데자뷔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네. IKEA가 그랬죠.  IKEA는 '가구는 비싸고 한 번 사면 물려받는 것이다'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가구를 누구든지 원하면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는 이념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값싼 가격'을 상당히 중시했죠. 이쯤 되면 단순한 장사치가 아니라 이념을 가진 기업가라고 볼 수 있고, 이념을 가진 기업은 오랫동안 롱런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한편 스웨덴에서 Volvo는 싸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보다 비싼 거 같다고 해요. 그러기에 스웨덴 내에서도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는 좀 더 대중적인 폭스바겐이 차지하고 있지요. 그리고 실제 Volvo를 운전하는 사람들 말로는 디자인도 최근 경영진의 변화로 좀 이뻐진 거 같고, 안전성을 강조하다 보니 다이내믹한 '운전하는 맛'은 없다고 해요.


하지만,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은 돈만 있다면 Volvo를 타고 싶어 할 거예요. A.H. Maslow의 동기 이론에서 욕구의 5단계 중 1단계인 '생리적' 욕구 다음으로 2단계가 '안전에 대한' 욕구잖아요. 디자인도 좋고 스피드도 좋지만 원초적인 이 욕구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겠죠. Volvo의 가치는 거기에 닿아있어요. 안전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대체할 수 없는 기업의 이념과 결합시킨 것이죠. 그래서 자동차 시장에서 전체 판매 대수는 적을지 몰라도 Volvo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박사장이 답했다.


"그래. 오래가는 기업은 대체할 수 없는 이념을 가지고 있구먼. 좀 지루하더라도 단순하되(simple) 지속 가능하게(sustainable) 말이야. 지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그렇게 세계의 별종 취급을 받으면서도 자신들만의 방역 정책을 고집했고 결과적으로 국민적인 지지와 성공적이라는 결과를 받았잖아. 그게 스웨덴이고 스웨덴 사람들인 거 같아." 

스웨덴인들과의 회의는 매우 단순하고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의 메시지는 간결하고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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