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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는 맛있는 타코집이 없다_1

대도시 답지 않은 대도시에서 살아남기

by 티제이

베이징은 이상한 곳이다.

인구도, 면적도, 서울의 배는 되는 것 같은데, 살아보니 사실은 서울과 경기도를 합쳐서 베이징이라 칭하는 것에 가깝다. 4환 밖으로는 풍경이 바뀌고 6환은 심지어 서울에서 인천까지 가는 거리다. 새로 지은 베이징 타이싱(대흥)국제공항이 바로 이 6환 밖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는 '인천공항'에 괄호로 '(서울)'을 붙이는데, 여기는 '북경공항'이라고 쓰고는 괄호로 '(타이싱)'을 붙이는 것이다.


베이징은 '환' 즉 동그라미로 구성되어 있다. 자금성을 한 가운데 기준으로 두고 2환, 3환, 4환 등등이 동심원을 그려 나간다. 자금성 주변에는 호수가 있는데, 각각 베이하이(북해, 북쪽 바다라는 뜻), 중난하이(중남해, 중앙에서 약간 남쪽에 있는 바다라는 뜻) 등으로 불린다. 중난하이에는 국무원을 비롯하여 중국 공산당의 중요기구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다. 전에는 황제가 있던, 지금은 국가원수들이 자리하고 있는 이 천안문 일대를 1환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지만, '1환'이라는 명칭은 따로 없다. 중심은 그냥 중심이고, 숫자는 2환 부터 센다.

제일 비싼 지역은 3환을 따라 놓여있다. 2환도 비싸지만, 2환은 자금성, 천안문 일대부서 시작해서 가장 먼저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 지금은 다 낡았다. 게다가 중국 어느 도시던 철거비용을 들여 재개발을 하느니 외곽으로 확장하는 편을 택하기 때문에, 도심 한복판에는 버려진 쇼핑몰이나 폐허가 된 주상복합이 자꾸 남는다. 베이징대(북경대), 칭화대(청화대), 런민대(인민대) 등의 어중이 떠중이들이 다 모여드는 우다코우(오도구)에도, 중관촌에도 불 꺼진 낡은 건물들이 허름함을 뒤집어쓴 채 박제되어 있다.

IMG_6487.JPG 북경대 미명호에서. 연세대를 줄여서 '연대'라고 하듯, 베이징따쉐는 줄여서 '베이따(北大)'라고 부른다.

베이따(북대=북경대)를 비롯한 유명한 대학들은 대부분 베이징 서쪽 끝 4환 부근에 위치한다. 3환은 너무 비싸서 넓은 캠퍼스 부지를 갖기 어려워서다. 3환에 소재한 대학들은 그래서 규모가 좀 작다. 나는 굳이 3환 동쪽에 살면서 4환 서쪽의 베이따, 즉 북대(북경대)를 2년 간 다니느라 매일 같이 길바닥에 시간을 뿌리고 다녔다. 교통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이징은 대도시 답지 않게 지하철도, 버스도 애매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시스템 자체는 나쁘지 않다.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에서 겪었던 고충에 비하면 베이징의 지하철은 훨씬 깨끗하고 편리하다. 다만, 베이징의 인구와 규모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일 뿐이다. 중국에서도 유독 베이징에서만 푸시맨과 일명 버스안내원(양)이라고 불리던 버스차장이 아직도 열일 중이다.

뭐든지 큼직큼직, 넓직넓직하게 떨어져 있는 베이징에서 대중교통의 맹점을 해결할 대안으로 공유자전거가 떠오르는가 싶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만에 브랜드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공유자전거는 단숨에 골칫덩어리로 전락해버렸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자전거가 인도를 점령하고, 화단이나 갓길에 내팽개쳐져 있기도 일쑤였다. 공유사물시장이 레드오션이 되어버리면서 망하는 기업도 속출했다. 자전거를 수거해 갈 비용이 없어 버려진 자전거는 더욱 늘고.

폐물 자전거는 지자체에서 인력을 써서 싸그리 치워버렸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살아 남은 공유자전거를 이용하기는 한다. 전동킥보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중국에서 공유시장은 더 이상 사회를 변화시킬 획기적인 흐름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IMG_9673.JPG 베이징 근교 관광지 만리장성 중 모전욕산성 구간에서. 베이징에서 제일 가까운 구간이라도 차로 최소 1시간 이상 떨어져 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국제운전면허를 딸까 생각도 해 봤다. 중국 운전면허 필기시험은 컴퓨터로 보는데, 다개국어 번역을 제공하므로, 중국어를 잘 못해도 면허를 딸 수 있다. 한국에서도 워낙 드라이빙을 좋아해서, 혼자 살 때는 퇴근 후 혼자 차 끌고 잠깐 나갔다 오는 것 만으로도 많은 위로를 받고는 했던 나였다.

그러나 모든 차의 앞좌석 양 옆 창문의 앞쪽 선팅만 없는 걸 보고, 느긋한 운전습관자는 빠르게 마음을 접었다. 뭔 말이고 하니, 딱 사이드미러 길이 만큼 운전자와 조수석 창문 선팅필름을 잘라낸 거다. 베이징에서는 워낙 다닥다닥 바짝 붙어서 운전을 하다보니, 사이드미러 각도가 굉장히 좁다. 각도가 좁은 만큼 사각이 발생하기도 쉽고 어두운 선팅 때문에 오히려 빛반사로 거울이 잘 안 보일 가능성도 높다. 그 말인 즉, 나의 운전습관으로는 베이징에서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의미다.

마음대로 다닐 수 없다는 건, 다 큰 성인에게 너무나도 큰 제약이다. 집콕도 자발적으로 할 때나 행복한거지, 누가 시켜서, 혹은 어쩔 수 없이 집콕을 해야 하면 답답해서 미치는 게 인간이다. 이 넓디 넓은 대륙의 수도에서 나라는 이 작고 작은 이방인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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