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서 동양인 이방인으로 살아남기
나는 여러 대륙에서 살아봤다. 대도시, 중소도시, 위성도시, 행정도시, 심지어 문화유적으로 지정된 아주 오래된 도시에서도 살아봤다. 그래서 베이징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을 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 나라의 수도라면 시골보다야 백 배는 더 살기 편할텐데 뭐가 걱정인가.
안타깝게도 베이징은 너무 '대'한 도시였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팽창된 공간이라, 대도시 특유의 밀도에서 나오는 편리함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만 6천 제곱킬로미터가 넘는 영역에 2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다. 서울 면적의 두 배 정도 되는 지역에, 인프라가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문제다. 병원? 대학병원도 있고 국립병원도 있고,
어딘가 있기야 있겠지. 근데, 그게 어디라고? 차 타고 한 시간? 가서도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고? 예약하면 일주일 뒤에 오라고? 인터내셔널 호스피탈로 가면, 음, 진료비만 한국돈으로 30만원? 약값은 또 따로? 그럼 못 가는거네, 그냥. 그건 그냥 없는 거나 마찬가지네. 아, 나 이런거 비슷한거 전에 겪어봤어. 강원도 횡계에서. 안과가 없었거든.
그러니까 이런건, 대도시가 아니야. 하지만 역시, 중국은 중국이네.
황소가 얼마나 큰지 몸소 보여주려다가 빵 터져버린 개구리 이야기처럼, 베이징의 팽창은 중국의 팽창과 위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신중국은 너무 많은 인구와 너무 넓은 땅과 너무 큰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여기에 자부심과 열등감까지 잔뜩 얹어, 마치 개구리에게 소금을 뿌린 듯 다이나믹한 광경이 펼쳐지는 이 곳, 중국, 중국의 수도 베이징이 나는 너무 피곤했다.
민족주의, 개인주의, 황금만능주의, 성장지상주의에 가부장제와 유교사상, 지역이기주의까지, 한국에서 이미 충분히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베이징에서는 외부인의 입장에서 그 모든 걸 다시 겪어야 했다. 아니, 내부인이면서 이방인인 처지였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나는 그들과 같은 인종이고, 같은 유교문화권에 속하며, 역사를 공유하는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내부자 위치로 끌어들여 놓았다.
같은 울타리 안에 들어오는 바람에 나의 이방인 정체성은 더욱 두드러졌다. 중국어를 잘 못 한다던가, 일본인을 미워하지 않는다던가, 홍콩시위에 반대하지 않는 등, 내가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왔다면 별 문제 삼지도 않았을 것들이 문제가 되었다. 상하이에서는 달랐다. 상하이 사람들은 내 중국어가 좀 딸린다 싶으면 곧바로 영어를 썼고, 홍콩시위나 노재팬 불매운동은 상대방이 무안해 질 수 있음을 고려하여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중국의 심장 베이징은 그다지 개방적이지 않다.
나는 대도시 다운 개방성과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베이징을 버거워했지만, 남편은 나와는 다른 이유로 베이징을 원망했다. On the Border가 없다는 이유였다.
나에게 멕시코음식이란 꽤나 멀찍한 음식이었다. 맛이 없다는 건 아닌데, 어쩌다 한 두 번 먹으러 가면 몰라도, 굳이 멕시코 타코 부리또 노래를 부르며 찾아다닐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도시니까, 서울이니까, 맛난 건 널리고 널렸으니까. 아메리카대륙 밟아보지도 않은 사람이 TexMex는 왜이렇게 좋아한담.
중국음식이 신랑 입에 안 맞았냐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설령 음식이 입에 잘 안 맞았다 한들, 한식집이 널리고 널린 곳이 바로 베이징이다. 심지어 신랑네 가족은 원래가 중식을 상당히 좋아했다. 그는 베이징살이를 미식을 추구할 아주 좋은 기회로 삼아서, 회사에서 힘들었다는 핑계로 베이징덕을 얼마나 자주 먹었는지 모른다. 그 밖에도 스촨요리, 카오위 같은 후베이요리, 허베이요리, 광동요리, 신선로같은 산시요리, 심지어 안회요리 중 '초괴위'라고 불리는 삭힌 생선 등등 없는 것 빼놓고 다 먹었다.
한 나라의 수도인 만큼 나름 세계음식점도 많았다. 괜찮은 일식은 일본인이 많이 사는 리두(여도)에서, 한식은 한인타운인 왕징(망경)에서, 각국 대사관이 모여있는 량마차오(양마교)역 주변에서는 브라질리안 바베큐, 독일맥주, 프랑스 빵을 즐길 수 있다. 지하철로 한 두 정거장만 더 가면 있는 싼리툰(삼리둔)은 한국의 가로수길과 이태원을 섞어 놓은 듯한 공간으로, 인도,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 레스토랑도, 이탈리아는 당연하고 스페니쉬 레스토랑도 유명했다. 베이징 사는 외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The taco bar'도 산리툰에 있다.
내 입맛에 나쁘지는 않았는데, 남편은 아무래도 베이징의 타코는 맛이 없다며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온더보더보다 짜다, 온더보더보다 비싸다, 온더보더보다 싱겁다, 온더보더보다 메뉴가 적다... '더 타코 바'는 공간이 좁아 대기시간이 너무 길다, 맛이 없는 건 아닌데,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할 정도로 맛있는 건 아니다. 저렴한 편이지만, 그만큼 양도 적고 메뉴도 몇 개 안 된다 등등...
the Taco Bar 바로 옆에는 'TexMex'를 아예 가게 이름으로 쓰는 미국식 멕시코 레스토랑이 있다. 여기 역시 신랑의 기준에는 미달이다. 택스맥스는 더타코바보다 공간은 훨씬 넓지만 맛이 덜하다, 양은 많지만 가격이 비싸다, 미국 분위기 내려고 종업원이 너무 오버한다, 라이브뮤직은 분위기 있지만 너무 시끄럽다... 미국에 가 본 적 없는 나의 달링은 완벽한 미국식 타코바를 재현한 곳에서도 여전히 온더보더를 그리워했다.
중국에서 살 때는 한국으로 출장 나올 때 마다 죽어라고 온더보더를 챙겨서 다니더니, 정작 한국에 돌아오자 온더보더의 'ㅇ'자도 안 꺼내게 된 남편. 무슨 심보인가 어이가 없었지만, 그는 사실 한국이 그리웠던 거다. 유년기를 보낸 잠실이라는 동네가, 돌아서면 모든 게 갖춰져 있는 서울이라는 동네가, 음식 주문 할 때마다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알파벳과 한글이 넘쳐나는 한국을 향한 그리움을, 아닌 척, 요상하게 풀어냈던 거다.
아마, 스스로도 자신이 얼마나 베이징을 불편하게 여기는지 잘 몰랐을 터다. 누가 보아도 '안정적인' 삶이니 말이다. 월급 따박따박 나오고, 회사에서 집도 주고, 해외 주재원이라고 추가수당도 나오고, 젊은 나이에 해외경험을 쌓은 것은 물론 심지어 사랑하는 배우자가까지 동행해서 해외에서 함께 생활하니 기러기 신세도 면했다. 무의식중에라도, 자신은 절대 아쉬운 소리 할 처지가 못 된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피부색이 다른 나라로 가서 인종차별을 겪을 걱정도 없다는 사람들에게, 중화사상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설명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중국에서의 현실은, 언제나 의사전달이 명확하게 이뤄진건지 전전긍긍 하는 매일, 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오더를 내려야 한다는 부담감, 비슷해 보이는 속에 더더욱 두드러지는 낯선 일상의 연속이었다. 가없이 팽창한, 지금도 팽창중인 도시는 스스로도 어디로 떠가고 있는지 몰라서, 베이징사람들은 도시에, 주변에 애정을 주지 않는다. 중국사람들조차 한 치 앞을 모르고 사니 이방인은 더욱 답이 없다. 이동의 자유도, 사상의 자유는 물론 언론의 자유가 없다는 사실은 평벙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아주 은.근.하.게. 조여와, 잊고 살다가도 섬찟 하는 순간마다 피로가 쌓였다.
베이징에는 맛있는 타코집이 없어서 싫어
그래, 타코가 맛이 없어서 베이징이 싫은 걸로 하자. 상하이엔 맛있는 타코집이 있어서, 그래서 상하이가 더 살기 좋은 거라고 하자.
타코를 잘 하는 동네라면 분명, 이방인으로 살기 나쁘지 않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