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구이린 여행
결혼 1년 차, 중국생활 1년 차,
첫 중추절을 맞이하여 어디 베이징에서 멀고 먼 땅으로 여행을 가자고 다짐했다. 음력 추석에 해당하는 중추절보다 국경절이 훨씬 긴 명절(?)이지만, 그렇기에 국경절에는 전국에서 인민들이 쏟아져 나온다. '인해전술'이 얼마나 대단한 '전술'이었는지 굳이 몸소 체험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므로, 우린 휴가를 붙여 써서 중추절에 놀고 국경절은 쉬기로 했다.
구이린으로.
구이린은 한자로 계림(桂林)이라 쓴다. '계림'이라는 말만 듣고는 신라의 계림처럼 닭 계(鷄)인 줄 알았더니, 계수나무의 '계'였다. 이름 그대로 도시 곳곳에 계수나무가 워낙 많아서, 계림에서는 가로수까지 모두 계수나무다. 덕분에 계화꽃이 만개할 무렵에는 느끼할 정도로 진한 단내가 진동을 한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에 중추절을 맞이하므로, 우리가 구이린에 갈 적에는 계화향이 그렇게 무겁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노란 산수유 비스무리한 계화꽃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게, 워낙 남쪽이기 때문이다.
추위에 몹시 약한 타입인 나에게, 겨울을 한창 준비하던 중 남녘 여행은 상당한 행복감으로 다가왔다. 겨울은 언제나 일년 중 가장 피하고 싶은 계절인지라 습한 무더위가 이토록 반가울 수 없었다. 게다가 베이징을 비롯한 몇 몇 대도시에 비해 물가도 정말 저렴해서, 많지 않은 돈으로도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중추절(仲秋節)「명사」음력 팔월에 있는 명절이라는 뜻으로 ‘추석’을 달리 이르는 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공산혁명 이후 대대적인 개혁을 겪으면서, 중국에서는 더 이상 중추절이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봉건적 후진주의를 타파한다는 명목으로 과거의 관습을 많이 버리면서, 한식에 나물 먹고 동짓날 팥죽 먹는 한국보다도 세시풍속이 덜 남아 있다. 춘분이니 추분이니 하는 24절기가 중국에서 유래한 건데도 말이다.
'중국특색사회주의'를 부르짖는 요즘은, 십 여 년 전과는 또 분위기가 다르다. '중국스러움'을 확립하려는 노력은 정책적으로도 중요한 안건이어서, 옛 세시풍속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청명절이다.
청명은 24절기 중 가장 맑다는 날로, 겨우내 웅그렸다 일어나 봄나들이를 나가는 때다. 지금은 중국의 5대 명절 중 하나로 여겨지는 청명절은 우리의 한글날처럼 휴일이었다가 평일이었다가 다시 공휴일로 지정되기를 몇 번 반복했다.
현대 중국이 만든 두 공휴일 청명절과 국경절은, 왠만해서는 절대로 어디 놀러 나가면 안 되는 날로 유명하다. 일단 각각 봄과 가을, 정확히 제일 놀기 좋은 시즌에 위치한 노는날이다. 여기에 유난히 연가/휴가가 없는 중국의 근무문화도 한 몫 했다. 한국도 유럽에 비하면 연가/휴가 별로 없기로 유명하지만, 노동자의 나라인 중국보다는 낫다. 중국에서는 공휴일이 아니면 가족들끼리 휴가를 떠나기가 정말 어렵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청명절과 국경절마다 수시로 압사사고가 발생하고는 했다. 오죽하면 코로나 사태에도 2020년 청명절날 인산인해를 이룬 풍경이 뉴스에 나올 정도였을까.
연휴가 아닌 하루짜리 공휴일, 그러니까 중추절에 놀러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경우가 많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말은 곧 경제적 여유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혹은 우리처럼 외국인이거나. 중국에서 이방인 신분으로 살아간다는 건 절대로 일부가 될 수 없음을, 매 순간 겉돌 수 밖에 없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특수한 혜택임에도 분명하다.
빈부격차가 큰 중국에서 아름다운 기억만을 남기고 싶다면, 성수기는 무조건 피해야 한다. 어느 깡시골에서 날 잡고 놀러 온 듯한 한 무리의 사람들은 진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도시 사람들만큼 잘 씻지 않아 냄새가 날 수도 있고, 우리는 '상식'이라던가 '매너'라고 여기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이는 중국인들에게도 마찬가지라, 차별과 갈등을 두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것 처럼 보인다. 가난과 무식의 상징 같은 '농민공'과 구별되고 싶은 마음, 그러나 노동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국가, 인민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배웠음에도 눈 앞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 등이 뒤얽혀 거대한 소음을 이룬다.
지표로 보는 중국의 경제력은 어마어마한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요소들이 눈에 띈다. 소수민족을 둘러 싼 정책과 갈등도 그렇다. 대외적으로는 서로 다른 민족이 모여 다채로운 문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중국이지만, 동화되지 않는다면 살아가기가 어렵다. '다름' 없이 통일되어버리면 편하기는 한데, 그러면 또 중국만의 '특색'을 주장하기가 어려우니 소수민족의 '소수성'을 유지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첩첩산중의 구이린에는 옛부터 다양한 소수민족이 많이 살았다. 중국 정부는 그들에게 가옥을 지어주고, 지정된 주거지역에서 살 경우 지원금을 제공한다. 일각에서는 소수민족 지원정책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하지만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지배권을 행사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시설에서 거주하는 소수민족들은 자신들의 삶을 전시하고 전통공연 따위를 벌려 돈을 번다. 먹고 살기 위해 나의 정체성을 팔아야 한다는 건 썩 좋기만 할 것 같지는 않아서, '소수'를 떠나려는 젊은이들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그렇게 대도시로 떠난 젊은이들은 '농민공'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얻는다.
중국의 추석 중추절은 우리 둘이 놀고, 한국의 추석과 겹치는 국경절은 가족과 함께 보냈다. 국경절에는 여행과 관련 된 모든 게 비싸서 한국행 항공편도 그렇게 싸지는 않았지만, 중국에 있었다면 더 많은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어느 해에는 베이징에 남은 적도 있었는데, 유령도시 그 자체였다. 문 연 곳도 없고, 놀 것도 없어서 집에서 게임기 붙들고 간신히 버텼다.
비슷한 경험을 19년과 20년 겨울, 코로나로 인해 겪고,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도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은 나라지만, 중국은 한국이 겪는 문제를 대륙의 사이즈로 뻥튀기해서 겪고 있는 듯 하다. 색다른 경험과 사유를 안겨 준 나라지만 다시 가서 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비단 중국 뿐이 아니라 어디나 살다보면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기 마련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