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오 가족여행
"티제이 그러고보니 의외로 시부모님이랑 여행 진짜 많이 다니네?"
"ㅇㅇ 일본도 다녀오고 이탈리아도 다녀오고, 중국도 몇 번 오셨지. 나 의외로 완전 효부잖아"
"미쳤닼ㅋㅋㅋㅋㅋ티제이 효부비 내려줘야겠넼ㅋㅋㅋㅋㅋㅋ"
"와 훌륭한 며느리상, 완전 나한테 딱이네 딱"
속초에 다녀 온 다다음주였다.
"내가 우리 아들이랑 아들냄 며느리랑 같이 속초 갔다왔다고 자랑했다. 그랬더니~ 시부모님이랑 같이 놀러갔냐고, 요즘 며느리같지 않다고 아주 부러워하더라고"
"아유 제가 감사합니다"
"여보, 애들도 애들이지만, 세상에 우리 같은 시부모도 없어요. 아니 세상에 보면 이상한 시어머니가 얼마나 많은데. 내 주변에도 보면, 분명 좋은 사람인데, 며느리하고는 어떻게 안 되는 사람도 있어. 그게 다 기싸움 하려고 해서 그런거라니까. 며느리도 막 그렇게 나쁜 애는 아냐. 근데, 아무튼 이상한 사람이 아닌데도 그렇다니까. 우리 같은 시부모가 어딨다고"
"맞아요 저야 엄청 감사하죠"
나를 낳고 기른 친부모하고도 틈 날 때 마다 투닥투닥인데, 배우자의 부모라고 해서 유난히 더 잘 지낼 자신은 아무래도 없었다. 신랑이 자기 가족들 내에서 차지하는 입지가, 내가 우리 가족들에게 행사하는 영향력보다 크지 않아 보이는 부분도 염려스러웠다. 그의 집안에서는 아직도 아버지의 목소리가 제일 컸고, 아버님이 어머님을 사랑하고 존중하기는 하지만 자식들은 영원히 자식일 것만 같아서.
우리집에서는 온갖 관심과 지원이 쏟아지는 첫째로 자라 자존심 세고 때로는 뻔뻔한 큰 딸인 나 홀로 제일 당당한데 말이다.
시가와의 관계는 걱정했던 것 보다는 무탈하게 풀려갔다. 배우자의 부모님보다도 내 부모가 더 걱정이었다. 시댁에 가면 아침상을 차려드려라, 친정에 자주 오면 어르신들이 싫어하신다는 소리를 계속 해대는 우리집 누군가가 더 문제였다.
아빠, 내가 아들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나 남자로 태어났으면 결혼도 못 했겠어 아주. 무슨 딸 키운 게 죄인이야? 왜 말을 그렇게 해?
며느리 생활도 안 해본 아저씨의 입에서 흔히 나오는 걱정을 가장한 참견이 매우 거슬렸다. 할 말은 똑부러지게 해야 한다고 배우고 자랐으므로, 사람 가리지 않고 할 말은 모조리 뱉어내는 나라서, 내가 그런 성격인 걸 아버지도 아는 게 참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어르신들께는 그렇게 눈 똥그랗게 뜨고 대들지 말라며 일단락을 지었지만, 그 집 부모는 처음 부터 이런 소리를 하지 않으시니 쓸 데 없는 걱정이다.
티제이는 참지 않는다.
첫째가 이렇게 기고만장하다.
그렇게 날고 긴다는 첫째도,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스킬이 늘어 이제는 따박따박 말대꾸는 좀 줄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는 못 하겠고, 그저 두 귀로 듣되 입 밖으로 내지는 않게 되었다. 나의 부모와도 그렇고, 그의 부모 앞에서는 더더욱 입을 열지 않는다. 솔직히 내 부모야 어쩔 수 없는 내 편이니 좀 조심성이 덜 하기는 하다.
문제는 신랑도 첫째라는 점이다.
그 역시 자신만만하고, 그럴싸한 실패를 겪어 본 일이 없으며, 남자로 자랐기에 더더욱 세상 무서운 줄 모른다. 구김 없이 찬란한 그의 낯빛을 사랑하지만, 순진무구함으로 무장한 면전에 '넌씨눈'을 외치고 싶은 마음이 울컥울컥 올라올 때가 있다.
아 왜 그렇게 어머님, 아버님과 번갈아가며 불화를 일으키는지 진짜.
일본 여행을 가서도 그랬다. 비도 오고 티제이는 춥다고 말도 못하고 떨고 있는데 1시간 넘게 기다려서 우동을 먹어야 하다니, 짜증! 을 부렸다가 아버님께 엄청 혼났다. 신랑이.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어머님이 아프시다는데 빈 말이라도 보살펴드리겠다고는 하지 못할 망정 눈치없이 엄마 힘들면 처갓집에 가 있겠다고 해서 혼났다. 탈탈 털렸다.
생각해보면 결혼하기 전에도 몇 번 그랬다. 심지어 결혼식을 준비하던 중에 뭣땀시 양가 가족들이 모두 모일 일이 있었는데, 그 날도 모임 바로 직전에 크게 혼나는 바람에 아주 죽을 쑬 뻔 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시부모님은 정말 '완벽한' 어른이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도 않고 정서적으로도 매우 안정적인 분들이셔서 자식들을 향한 애정과는 별개로 지나치게 의지하지 않으려 노력하시는 분들이다. 두 분이서 드라이브도 자주 나가시고 꾸준히 운동도 하는 등 자기관리까지 놓치지 않는 희대의 인간상인데,
내 남편은 왜 자꾸 이런 분들의 성미를 긁는 건지, 재주도 좋다 싶다.
내가 내 부모 앞에서 허술한 만큼, 그도 그의 부모 앞에서 허술하다. 다만 이 사람의 허술함은 종종 선을 넘어서 문제다. 어른들도 다 사람인데, 그리고 그도 이미 어른인데, 나의 배우자는 어째 아직도 해서는 안 될 농담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했는지.
우리 부부 둘 만 여행을 떠날 땐, 아무리 짐이 무겁고 아무리 더워도 그렇게 큰 '사고'를 치지는 않는다. 다만 가족여행을, 특히 그의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떠날 때면 가끔 '사고'가 발생한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난감함에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위경련을 받아들이고는 한다. 결국은 나 때문인 걸 아니까.
나의 부모님과 함께 가는 여행에서 남편이 힘들어 한 적, 혹은 나를 힘들게 한 적은 없다. 그런데 시가와 함께 갈 때, 신랑은 유난히 더 예민해진다. 그건 실은 낯선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야 하는 나를 향한 신경임을, 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피곤해도 말도 못 하고 입가만 살짝 올리고 있는 나를 보면서 남편은 조바심에 몸둘바를 모르다가, 버럭 말실수를 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만 들어가서 쉬자, 라던가, 그건 무리다, 라던가, 다만 곱게 말을 못 해서 어른들의 심기를 거스르고야 만다. 그러니까, 어른들이 아무리 좋은 분들이라 해도 별 처럼 붙은 '시'자 앞에 아무리 "편하게 해, 편하게 해" 해 봤자 비리비리 맥을 못 추는 일병의 마음가짐을, 나름대로 너무 잘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부부의 부모동반 가족여행은 앞으로도 자주 있을 예정이다. 나는 나의 부모님을 모시고 가고 싶다. 부모님이 나에게 해줬던 만큼에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이나마 즐거운 기억을 더욱 많이 만들어 드리고 싶다.
나만큼, 그도 그의 부모님과 함께 가고 싶을 거라 생각한다. 혹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 부부는 공평해야 하므로 내 부모님과 간 만큼 그의 부모님과도 가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다. 벌써 양가 부모님을 모두 합치면 10번 가까이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이젠 그도 스킬이 더욱 늘어 예전처럼 큰 '사고' 치지 않고 무탈한 여행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사고를 치던 안 치던, 나를 생각해주는 그대의 마음은 여전히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