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뭐보지' 리스트 TOP 3
부부의 저녁시간.
원래는 각자의 이런저런 하루 이야기를 하느라 굳이 영상을 틀어놓지 않아도 상관없었는데, 재택근무가 몇 달이 되어가다 보니 서로 나눌 이야기가 점점 동이 나기 시작했다. 화젯거리가 생겨도 애써 퇴근 후 저녁식사 때까지 아껴 둘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자기 전 침대에 둘이 같이 누워 영화 한 편 보던 루틴이 밥 시간대로 앞당겨졌다. 자연히 주로 보는 프로그램도 밥에 어울리는 장르로 바뀔 수밖에.
코로나와 함께 시작된 넷플릭스 식탁을 탈탈 털어 '밥 먹을 때 뭐보지' TOP 3을 골라보았다. 밥상머리에서 부부가 조잘조잘 교집합을 찾아본 결과
1) 식욕이나 비위를 거스를만한 요소가 없으며
2) 간단한 지식정보를 배울 수 있으면 더 좋고
3) 설거지하기 싫어질 정도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 않을 것
조건을 만족하는 넷플릭스 밥동무 리스트를 선정해보았다.
3위. 경쾌하게 소개하는 세련된 미식의 세계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 은 '필'이 세계 방방곡곡의 미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영어 잘하는 현지인의 안내에 따라 관광객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요리들을 맛보는데, 시즌3에서는 서울도 다녀갔다. 현재는 시즌4까지 나왔고, 아마 코로나 때문에 후속 편은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다.
필은 음식을 아구아구 복스럽게 먹는 편은 아니다. 음식을 소개하는 기준도 조금 편협한 느낌이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 몬트리올에서는 포르투갈과 아이티 음식을 먹고 아시아에서는 주로 시장을 다닌다. 한국 서울까지 와서 뭘 소개하는지를 보면 너무 뻔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필이 워낙 언변이 좋고 현지의 모든 면모에 감탄하므로, 밥상머리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미소를 지을 수 있다. 넷플릭스의 또 다른 오리지널 음식 다큐인 '셰프 시리즈'보다 가벼운 느낌이다. 상영시간도 인트로, 아웃트로를 건너뛰면 30여 분 내외라 밥시간에 딱 맞는다.
무엇보다 해외여행 길이 막힌 요즘, 아니, 여행은 무슨 동네 식당 가기도 조심스러운 요즘 같은 때에 이보다 더 좋은 대리만족이 없다.
[필이 좋은~]을 보면서 우리 부부는 매일 같이 여행 계획을 세운다.
코로나만 끝나면, 코로나만...
2위. 오늘 저녁 중국음식을 배달시켰다면 [풍미 원산지]
[풍미 원산지]는 간쑤, 윈난, 그리고 차오산 세 지역의 미식문화를 소개하는데, 이 세 지역은 중국인에게도 낯선 동네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난징과 같은 중심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외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리게 본 흔하디 흔한 중식 다큐와는 차별성이 있다. 그렇다고 개구리(?)나 곤충(!) 같은 정말 낯선 식재료를 들먹이지는 않으므로 안심해도 된다.
[풍미 원산지]는 앞, 뒤로 건너뛰기를 하고 나면 실제 상영시간은 딱 10분밖에 안 되는 짧은 영상 모음에 가깝다. 보통은 두세 편을 이어서 보면 밥맛 돋우기에 딱이다. 다만 '중국문화의 다양성'을 중화로 포장하는 중국 다큐 특유의 문법이 거슬린다면 유의하는 편이 좋다.
음식을 먹는 장면보다는 식재료를 준비하고 조리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식재료 준비는 밭에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덕분에 드넓은 초원이나 고원지대의 한가로운 풍경, 소박한 시골 마을의 끝자락도 감상할 수 있다. 음식으로만 가득 찬 화면, 수다스럽게 꽉 찬 오디오가 부담스럽다면 [풍미 원산지]가 밥친구로 적절하다.
1위. 밥상머리 소울메이트 [타코 연대기]
[타코 연대기]는 상영시간도 적절하고 영상미도 뛰어나다. 지나치게 가볍지도, 부담스럽게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타코를 맛깔나게 먹고, 셰프들의 얼굴은 빛난다. 모든 재료는 자연에서 온다. 조리과정도 엄청 다양하다. 먹방에서 자연다큐, 세계여행까지, 보고 싶은 건 [타고 연대기]에서 다 볼 수 있다.
[타코 연대기]는 사람이 내레이션을 하지 않고 '타코'가 말을 한다. 타코의 이미지에 따라 매 번 달라지는 성우의 톤도 매력적이다. 스페니쉬의 억양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간단한 역사와 변화무쌍한 모습을 소개한다. 이란, 시리아에서 일본에 이르기까지 상상도 못 한 유래와 역사가 있다. 우리는 많이 들어 본 적 없었던 멕시코 혁명도 언급된다.
우리 부부가 유난히 좋아라 하는 대목은 타코를 향한 열정적인 찬양이다. 눅눅한 타코는 죽음과 같다던가, 관에 들어가듯 지하에 파묻혔다가 불꽃과 함께 되살아난다던가 하는 남미 특유의 감성이 마냥 신선하기 때문이다. 과장이 심하기는 하지만 천상천하 유아독존 느낌은 아니라 오히려 시적 허용이 즐겁게 다가온다.
굳이 단점을 꼽아야 한다면, 타코를 먹으러 가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먹신이 깃든 자를 배우자로 두었다면 타코벨로는 타협이 안 된다는 치명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토르티야 사다가 집에서 해 먹은 적도 있는데, 갖은 향신료와 함께 직화로 구운 느낌까지는 따라잡을 수가 없으므로 아무래도 나가야만 한다.
게다가 맥주는 필수라 다이어터라면 절대로 보지 말아야 할 순위로도 [타코 연대기]는 1등이다.
세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다양성과 변화를 긍정한다는 사실이다.
중식을 소재로 하는 [풍미 원산지]도 의외로 중국 식문화의 다원성을 인정한다. 아마씨는 중동에서 유래했고 백합은 고원지대에 자리 잡은 지 100여 년 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채로운 중식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는 점은 중화의 자랑거리지만, 오리지널리티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텍사스식 멕시코 음식'을 뜻하는 텍스맥스를 소개하는 [타코 연대기]도, 세계 각국의 세련된 퓨전 레스토랑을 소개하는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억지스러움에 소화불량 올 걱정 없이 볼 수 있고, 배워가는 부분도 적지 않다.
반대로, 식문화에서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왜 근본 없는 집착인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있다.
덤으로 소개하는 [이탈리안 키친: 음식의 이민사]
피자배달이 아니더라도 파스타와 샐러드를 차린 날이라면, 2017년작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 [이탈리안 키친: 음식의 이민사]를 틀어보자.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아니지만 넷플릭스가 아니면 딱히 접하기 쉽지 않다.
영상은 흑백 화면에서부터 시작한다. 파스타에 와인이라고 하면 세련된 식탁이라는 생각부터 드는데, 웬걸, 가난뱅이들이 등장한다.
영상을 보다 보면 한국인으로서 피식하게 되는 장면이 종종 있다. 서양사람들은 날고기, 날생선을 못 먹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유럽, 특히 이탈리아는 '날 것'을 즐기기로 유명하다. 굴이나 소고기뿐만 아니라 문어를 비롯한 각종 해산물을 생으로 먹는 것을 자랑하고는 한다. 신선하기도 신선하거니와 원재료의 맛을 그대로 즐길 줄 안다는 것이다.
자랑의 이면에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진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오만도 깔려 있다. 나아가 한 마디 더 보태는 것이다. "'스시'같은 거죠. 훨씬 더 오래되었지만요. 수 천 년 전 부터 우리는 '스시'를 먹었어요"라고. 근거가 있던 없든 간에 역사성에서 자부심을 찾으려는 모습이 뭔가 익숙하다.
하지만 남의 모습이니까 웃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