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엄브렐러 아카데미] 감상 포인트
[엑스맨]의 키티, [인셉션]의 아리아드네는 물론 [주노], [위핏] 등 주연 맡은 영화도 한 둘이 아닌 우리의 배우가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로 돌아왔다. 뉴스를 본 남편이 중얼거렸다.
엘리엇 페이지는 그럼 이제 뭘 연기해? 남자 역이야 여자 역이야?
음, 다른 건 몰라도 캐릭터 걱정은 절대 안 해도 돼. 연기력이 어디 가겠니.
지금 당장에만 해도 바냐도 있는걸.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미국의 대표적인 만화사인 '다크호스 코믹스'에서 출판한 동명의 슈퍼히어로물을 원작으로 하는 판타지 드라마다. 판타지이기는 한데, 시즌1까지는 작중 배경이 '현재'라 마냥 허황되지만은 않다. 심지어 1989년에 태어나 2019년까지 성장하는 30년 동안의 과정은 밀레니얼 세대가 거친 과정 그대로다.
부모 세대에 비하면 평범하기만 한, 혹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세대.
뛰어난 능력이 있어도 부모의 그림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고구마 답답이들.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하루하루가 한 화, 한 화씩 누적된다. 잘해보려는 노력이 오히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까지. 넘버 1부터 넘버 7까지 각 캐릭터의 콤플렉스는 밀레니얼이 품고 있는 콤플렉스를 떠올리게 한다.
넘버 7인 바냐 하그브리스는 제일 꼬여버렸지만 또 한편으로는 제일 멀쩡한 캐릭터기도 하다.
7명 모두 억압된 성장과정을 거쳤다. 그중에서도 바냐가 제일 고생한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7명 중 제일 '덜' 혼란스러운 사람을 고르라면 당연 바냐 하그브리스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없고, 의지박약이나 약물중독도 아니고, 충동적이지도 않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을 무시하지도, 경우 없게 행동하지도 않는다.
바냐는 작지만 강한 캐릭터다.
어쩌면, 엘리엇 페이지라는 배우를 똑 닮았는지도 모른다.
엘리엇 페이지는 이미 2014년에 커밍아웃을 한 바 있다. 스스로가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페미니스트로 활동도 하고, 군사독재 반대운동에도 참여하는 채식주의자다. 말하자면 힘든 길만 골라가는 편에 가깝다.
그 와중에 작품 활동도 꾸준해서, 엄청난 필모그래피와 수상이력까지 빵빵하다. 어디서 이런 체력이 나올까, 요가가 비결인가.
엘리엇 페이지가 맡은 바냐라는 캐릭터는 어느 한 가지 속성으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약하지만 강렬하다. 강하지만 강제하지는 않는다. 불신과 부당한 대우 앞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전개할 법도 하건만, 끝까지 사람을 믿는다. 밑도 끝도 없는 신뢰나 인내와는 다르다.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알 뿐이다.
남자를 좋아하는지 여자를 좋아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반토막 마네킹에 집착하는 파이브에 비하면 바냐의 사랑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바냐도 시즌1까지는 약간 헤매는 구석이 있다. 근데 나머지 캐릭터들이 더 갈팡질팡 하는 꼴을 보고 있으면 바냐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엘리엇 페이지의 성적 정체성도 마찬가지다. 뭘 좋아하고 뭐라고 불리고 스스로를 뭐라고 정의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엄브렐라 아카데미]의 '종말의 날'을 초래하는 원인은 따로 있다.
오해와 의심, 편견, 그리고 나만이 옳다는 아집과 오만이 아포칼립스의 기초다. 드라마 속 세계에만 해당되는 건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