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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제이 Mar 22. 2021

전업작가=공무원

전업작가가 되면 나라에서 돈을 줍니다

 예술은 돈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면

 나는 예중이나 예고로 진학하고 싶다는 고집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초등학교 땐 고등학교를 예고로 가면 된다는 핑계로 예중 대신 일반중에 진학했고, 중학생 땐 예고 가기엔 성적이 아깝다는 이유로 미술을 또 미뤘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내 성적이라는 한도 내에서 비벼 볼 수 있는 제일 높은 학교, 높은 과에 지원하느라 바빴다.

 그 과정에서 예술에는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가 아니었다면, 나는 굳이 미루지 않고 미술을 선택했을 것이다.

돈만 많으면 나도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야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이어진 고민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로또에 당첨되면 마음껏 그림을 그리겠다던 꿈은 어느새 세계여행으로 바뀌었고, 더 나이를 먹자 빌딩을 사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원을 마련하여 평생 여행하겠다는 방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로또 인생 첫 당첨 기념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그냥 뭐든 잘했던 것 같다. 잘난 척이 아니라 그냥 매사에 열심히였다. 가르쳐 준 대로만 열심히 하면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고, 칭찬에 기뻤다. 그러니 다시 생각해보면, 그림을 '잘' 그렸을 뿐 천재적인 소질이 있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열심히 체제에 편승하여 좋은 대학 나와 공무원급의 무난하고 명예로운(?) 직장생활을 하다가 '남들 다 하는' 결혼까지, 완벽한 모범생의 표본이었는데, 

 어쩌다 도로 돈 안 되는 글쓰기의 길로 접어들었는지.


 글쓰기'도' 돈이 안 된다.

 고용정보원에서 매년 돌리는 직업별 소득 순위 리스트에서 시인과 소설가는 언제나 꼴찌 신세를 면치 못한다. 그나마 직업만족도는 높은 축에 속한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아니면 예술의 길은 원래 과거나 지금이나 천대받고 배고프기가 기본이라던가.

 근데 중국에서는 돈이 된다.

 화가도 돈이 되고 예술가는 명예로우며 작가는 더더욱 안정적인 직업이다.

지난 천하제일천에서. 웬 꽃미남 앞에서 기념사진인가 했더니 북송 시기 여성 문인으로 유명했던 이청조였다. 

 잘 몰랐을 땐 중국이 워낙 예술인을 지식층으로서 존중하는 역사가 깊어서인 줄 알았다. 흰 종이에 먹으로 휙휙 난을 쳐내고 유려한 문체로 시를 적어 내려가는 고고한 학자의 이미지가 강해서 현대 작가들의 목에까지 힘이 들어간 줄 알았다. 

 북경대에서 중국어를 배울 때, 마지막 학기 담임의 배우자가 화가라고 했다. 바로 옆 인민대의 화가라고 해서 속으로 인민대 미대 교수인가 보다 생각했다. 화가라니 멋지다는 학생들의 반응에 별 거 아니라는 선생님의 반응이 그저 흔한 겸손이겠거니 싶었다.

 SNS에는 종종 남편의 전시 관련 소식이 올라왔다. 인터뷰 기사도 아주 가끔 올라왔다. 느릿느릿 읽어보는데, 아무리 봐도 그는 교수가 아니었다. 학생들을 가르치기는 하는데 대학원생이면 몰라도 정식 강사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이 비싼 베이징 시내에 집을 두고 산다고? 그림 몇 점 팔아서?


 그가 '전업화가'였다는 사실은 거의 1년 가까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지난의 산동박물관에서. 상설전시관의 유물이 엄청 유명하다. 때때로 현대회화전도 열린다.

 중국의 전업작가는 '선언'이 아닌 일종의 제도다.

 문단이던 뭐던 어떻게든 등단을 하고 협회의 회원이 되어 '전업작가'가 되면 나라에서 돈이 나온다. 상여금이라던가 지원금 수준이 아니라 정말 돈이 쏟아진다. 심지어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아도 정부가 작가의 안녕을 보장한다. 

 무한경쟁의 시장자본주의를 선도하나 싶다가도 이럴 땐 꽤나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게 '중국특색사회주의'라서 문제지만. 

지난(제남)에서. 엽전 사이로 동전을 통과시키면 사방에서 분수가 뿜어져 나온다.

 인민을 위한 중국, 낮은 자들을 챙기는 사회주의, 보편복지는 놓치지 않고 있어서 제도만 보면 여느 유럽 국가 못지않다. 무상교육, 노후복지, 공공의료시스템 등은 어쩌면 한국보다도 훨씬 '선진적'이다. 그래서 중국의 의사는 프랑스의 의사처럼 박봉의 공무직이다. 

 예술가들을 향한 지원도 사회주의적이다. 눈에 보이는 생산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직업일지라도 귀천은 없다. 생활 걱정 없이 예술활동에 매진할 수 있어야만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하다. 적어도 전업작가제도의 명분만큼은 그러하다. 

 실상은 나라가 앞장서서 돈으로 예술가들을 쥐락펴락 하는 모습에 가깝달까. 

안양시의 은허에서. 갑골에 마음에 안 드는 점괘가 나오면 그 샤먼을 죽였다고 했지 아마.

 공산당의 정신에 반하는 글을 쓰는 자는 전업작가 대신 금서 작가 타이틀을 획득하게 된다.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아도 넉넉하게 사는구나 싶었더니, 실은 '잘 못 된' 작품을 내기보다는 가만히 있으라는 압박에 가까웠다. 

 재정적 지원이 끊기면 물론 어렵기야 하겠지만 
조금 가난하더라도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중국에서는 통하기 어려운 위로다.

 일단 집이 없다.

 공식적으로 중국의 모든 집은 국가 소유고 사람들은 거주권을 국가에게서 빌릴 뿐이다. 집을 사고파는 행위는 집이 아닌 거주권을 사고파는 의미라, 공산당의 미움을 사 거주권을 박탈당하면 아무리 돈이 많아봤자 말 그대로 갈 곳이 없어진다. 물론 돈이 정말 많아서 사람을 매수하면 또 모르겠지만, 시진핑의 대대적인 부정부패 척결 정책 이후로는 위험한 일이다. 

 작품 활동 자체가 어렵다.

 공산당원이 한 명 이상 반드시 소속되어 있는 국립, 도립, 시립, 공립의 그 어떤 시설에서도 작업을 하거나 전시를 할 수 없다. 비싼 외국계 갤러리라면 어느 정도 가능하기는 하다. 베이징의 798 예술구가 성장하게 된 계기가 바로 외국계 갤러리 UCCA 현대미술센터였다. 지금은 798 마저도 '문화예술특구'로 공식 지정되면서 관리감독의 시스템에 편입된 셈이다. 

 출판도 마찬가지다.

 '금서'를 쓴 작가뿐만 아니라 출판사와 관련 인물들 모두 영업정지 처분을 당할 수 있다. 덕분에 '붉은 정신'에 어긋나는 글은 국가의 눈가에 이르기도 전에 저 아랫단계에서부터 미리미리 검열당한다. 인터넷도 적극적으로 검열당하는 마당에 출판이야 가당찮은 얘기다. 


 '공동생산'의 공산주의를 외칠 땐 생산을 하지 않는 백면서생은 타도의 대상이었는데 '중국특색사회주의' 속에서는 전폭적인 지원 대상이라는 사실에 헛웃음이 난다. 기본소득처럼 전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혜택이라면 또 모르지만, 예술가에게만, 그것도 사상에 부합하는 활동을 하거나 혹은 사상에 반하는 활동을 하지 않는 자에게 제공하는 너그러운 혜택이라니.


 주어진 시스템에 반항하지 않고
    통찰력과 자유를 반납한 대가로
안온한 생활을 영위하는 자들을 비난하기엔


     나도 글로 돈 벌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돈이 되지 않는 글은 가치를 품지 못하는 글 같아서, 아니, 돈을 벌지 못하는 내가 무가치한 존재인 것 같아서, 불안해서 그렇다. 그래서 요즘은 서울시 돈을 받고 한 두 편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이것 참 몇 만 원 되지도 않는 돈도 돈이라고 또 신경이 꽤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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