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기생충이면 좋으련만

기생충(Parasite, 2019, Joon-ho Bong)

by 강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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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미 충분한 이야기들이 나온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느꼈던 찜찜하고 불쾌한 기분도 어느 정도 그 이야기들로 설명이 가능하다. 악의가 있든 없든 가난에 대한 대상화가 느껴진다는 점, 어찌 보면 희망을 얘기하는 듯 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너무나 닫힌 절망적인 결말이라는 점, 초기 제목이 '데칼코마니'였다는 것을 고려할 때 결국 우리는 모두 기생충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점 등등.




내가 느낀 불편함은 네 명의 가족 구성원(특히 기우(최우식))이 누군가(아마도 민혁(박서준))를 끊임없이 모방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결국 그 거짓 아이덴티티의 말로는 전형적으로 비극이라는 점 또한. 민혁의 대체 인력으로 다혜(정지소, 현승민)의 집에 들어간 것이었기에 기우에게는 어찌 보면 변명 거리가 있는 셈이지만, 어쨌든 그래서 그들은 모두 어느 정도는 사실이면서, 어느 정도는 사실이 아닌 '숙련된 프리미엄 인력'의 모양새를 갖추고 박사장(이선균)의 집에 입성하게 된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이 가족의 사기극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너무나 순탄하게, 그러나 삐걱삐걱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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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기우, 기정(박소담) 남매와 충숙(장혜진), 기택(송강호) 부부를 구분지을 필요가 있겠다. 기우와 기정은 비록 신분은 속였지만 비어있던 자리에 들어간 것이고 충숙과 기택은 원래 있던 사람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일텐데, 이것은 윤리적으로도 그렇지만 물리적으로도 상당히 큰 차이다. 그들이 밀어낸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언제든 다시 귀환할 수 있기에 그렇다. 특히 문광(이정은)은 윤기사(박근록)와는 달리 기우나 기정에게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았음에도 충숙의 자리를 위해 밀려나게 된다(물론 윤기사 마저도 기우 가족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끼친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문광은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아주 합리적인 방법으로(집의 진짜 주인인 다송(정형준)의 도움을 받는다는 점에서). 영화를 2차 관람하고 나니 다송이가 지하실의 비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광에게 중요한 정보들을 알려준 점, 비가 쏟아지는데도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했다는 점 등을 떠올려 보았을 때 그렇다. 하지만 그보단 남편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갖게 된 다송에게 죄책감을 가진 문광이 각별한 친절을 베풀었고 그래서 둘의 관계가 친밀해졌을 것이라 추측하는 것이 더 개연성 있지 않나 하는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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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의 (재)등장 이후로 영화는 초중반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폭우가 쏟아져 다송이 가족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영화의 장르는 거의 호러/스릴러에 가까워지게 되는데, 특히 그 직전에 일어나는 문광 부부와의 대면은 기우 가족의 민낯을 보여주는 치명적인 계기가 된다. 문광과 충숙의 대화는 그들이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자신의 계급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인데, 문광은 자신(지하)과 충숙 가족(반지하)을 묶어 '불우이웃'이라 칭하지만 충숙은 문광의 그러한 호칭에 아주 격렬하게 반발한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이쯤에서 처음 영화를 보고 들었던 의문들을 정리해보자면, 1>초반부에 피자시대 점장이 언급한 1/4의 불량은 누구(무엇)인가, 2>왜 (항상) 똑똑하고 유능한 딸이 희생될 수밖에 없는가, 3>인물들의 대사에서 느껴지는 부자연스러움은 무엇을 의도한 것인가, 4>결국 '기생충'은 누구(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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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두 번째 보면서 제일 강하게 느낀 것은 인물들이 도치된 문장을 자주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박사장("(연교에게)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윤기사?")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서술어를 먼저, 주어나 목적어를 나중에 말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듣고 있다 보면 묘하게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든다. 무슨 이유 때문에 이런 식의 대사가 많은 것인지 계속 고민해봤지만 명확한 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추측하건대, 술어는 어떤 인물에게 일어날 혹은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라면 주어나 목적어는 그 사건을 감당해야 할 주체를 지시하는 것일텐데, 결국 이 모든 사건이 일어날 것은 필연적이되 누구에게 일어날 지는 알 수 없다(즉,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4의 불량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기택이다, 가족들 중 가장 뛰어난 기정이다로 의견이 갈리는 것 같은데 전자의 의견이 더 타당하지 않나 싶다. 가족 사기극을 펼치는 동안에도 윤기사의 안부를 걱정한다든지, 기정의 죽음 또한 기택의 충동적인 행동에서 비롯된 측면이 없지 않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기택은 하위 계급에 속해있지만 이를 온전히 인정하지 못하며, 자신보다 못한(것으로 추측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동정하는 동시에 상위 계급에 대해 강한 열등감을 가진, 전형적으로 복합적인 인물이다. 그렇기에 기택은 이 복합성으로 말미암아 가족 중 여성 인물들에게 지속적인 구박을 받는다(기택을 '바퀴벌레'에 비유하는 충숙과 다른 사람 말고 '나'를 신경써달라는 기정을 떠올려보자). 이러한 면모를 보았을 때 기택은 인물들 중 가장 '기생충'에 가까운 인물인 것처럼 보인다.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려는 의지나 계획조차 없는 무능력한 가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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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를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딜레마다. 기택의 무기력과 체념은 치킨집, 대왕 카스테라, 대리 기사 등을 거치며 학습된 것이기에 그렇다. 그동안 그가 세웠던 '계획'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좌절되었을 것임을 우리는 쉽게 추측할 수 있고,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어쩌면 가장 상위 계급에 어울리는 기정이 희생된 이유는 그래봤자 기정에게 가까운 것은 신분 상승보다는 죽음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기정이 아니라 기우가 살아야 했던 이유는 역시 문을 연 사람이 닫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기우는 문을 닫을 힘이 있는가?



기생충의 사전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다른 동물체에 붙어서 양분을 빨아 먹고 사는 벌레.

2.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남에게 덧붙어서 살아가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기우 가족은 다송 가족의 부에 덧붙어서 살아가는 기생충이다. 그러나 그들이 노력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은 너무 노력했다. 비록 신분이나 경력을 속이기는 했지만,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얻으려 한 행동을 단순히 '남에게 덧붙어서 살아'간 것으로 치환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다송 가족(을 비롯한 상위 계급)은 어떤가. 박사장 스스로 이야기하듯 그들 또한 가정부가 없으면 며칠만에 '냄새나는' 사람이 될 것이며, 결말부의 난투극에서도 파티에 모인 사람들 중 주체적인 행동을 보이는 인물은 충숙과 기택(덧붙이자면 다혜)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이처럼 사용자들은 자신이 돈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노동 계급에게 기생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기우가 스스로 문을 닫을 힘이 없는 것처럼, 우리 또한 이 상황을 극복할 계획이나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심지어 상황의 심각성이나 자신의 계급성조차도 제대로 인식/인정하지 못한다. 결국 이렇게 우리는 모양새가 다를뿐 서로의 것을 최대한 노력 없이 얻으려고 하는 기생충이다. 아니, 차라리 기생충이면 좋으련만, 인간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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