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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Jan 01. 2024

나의 엄마보다 어른이 된다는 것.

(feat. 모성신화)

엄마는 다 겪어 봤어. 그러니 다 알아.
요즘 젊은이들은 진짜 너무 잘 몰라.
그러니 내가 보내준 거 꼭 봐야 해. 꼭 봐라.

하루에 유튜브 링크를 몇 개씩 보내시는 엄마의 다급한 전화였다. 나는 '네' 하고 공손하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 이럴 때마다 마음이 불편한 건 정말 숨길 수가 없었다.


나는 독특한 엄마 밑에서 자랐다.

희한하게 나이가 들어도 자라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의 '영원한 소녀' 같은 어머니였다.

그도 그럴 것이 , 그녀는 어린 시절 힘든 일이 많았었는데 문제는 그런 소녀 같은 어머니 밑에서 크자니 내가 너무 빨리 커버렸다는 것에 있었다.


항상 '내 나이를 잊고' 엄마를 보살피려 했고,

'내 나이를 잊고' 엄마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점에 대해 엄마에게 사과를 했으며,

'내 나이를 잊고' 엄마에게 계속해서 애정과 인정을 공급하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이 잘못된 지도 한참 동안 몰랐었으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는지 다행히 나는 심리학에 비교적 빨리 눈을 뜨고 공부를 시작했다. 거기서 뭔가 이상했던 나의 증상을 알아냈으니, 그건 바로


'부모화된 아이'였다.

나의 상처받은 내면을 돌볼 틈도 없이, 나는 내 어머니의 상처받은 내면아이와 현생의 삶을 감당해야 했다. 그렇게 내 나이와는 상관없이 ' 내 어머니의 엄마'처럼, 그녀를 보살피는 일에 질렸을 무렵 나는 독립선언을 했고 힘들게 독립을 쟁취했다.


하지만, 그것에 끝이라고 있을까? 혈연, 가족 관계는 그만큼 질기다.

독립을 해도 독립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고, 그저 거리 조절 단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도, 그나마 운이 좋다면.


어제 산행을 하는데, 같이 산을 오르던 언니가 말했다.

어릴 때는 엄마가 뭐도 하지 마라 이것도 하지 마라 저것도 안된다 난리 법석 이어서 제대로 해본 게 없잖니?


그런데, 지금은 내가 엄마보다 더 어른이 된 것 같아.
그래서 그런 잔소리는 '네' 하고 이제 흘려버려.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언제부터 나의 엄마보다 어른이 되었을까 하고.

어른이란 개념에 따라 논쟁이 달라지겠지만, 아무에게도 기댈 곳이 없이 홀로 서야 하는 지점이라고 본다면 꽤 오래 전인 듯하다.


진정한 모성애란, 원래 아이가 연약할 때만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아이가 독립성을 갖춘 후에는, 모성애라는 것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 후에는 독립적인 '두 인간'으로 만나고 접촉하지 못하면 서로에 대한 '기생'이 될 뿐, 죽을 때까지 엄마와 자식 간의 관계가 지속된다고 보지 않는다. 나는 그렇다.


그저, 엄마보다 더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자신의 엄마들과 보다 독립적으로 관계 맺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자신의 자식들이 나보다 더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부모들이 많아져서, 자신의 자식들과 보다 독립적인 '인간관계'로 관계 맺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2024년 새해 소원으로 빌어본다.


#모성애

#어른

#부모보다어른

#새해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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