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음속에 인생 책과 영화를 하나씩은 품고 산다. 그리고 나 또한 그래왔고. 그러나 내 경우를 돌이켜보면 내 인생을 통틀어 단 한 권의 책과 단 한 편의 영화를 꼽을 수 있다기보다는, 그 시절 시절마다 나의 영혼에 울림을 주었던 책과 영화가 세트로 달라졌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인생 마디마디마다 어떤 이야기들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는지를 돌이켜 보면, 참 그 당시에 어떤 상태에 머물고 있던 ‘나’라는 사람을 잘 반영하고 있구나 싶다.
뭔가 역동적이면서도 가슴속에 남 모를 분노를 채워 살던 시기였던 10대와 20대에는 영화 <레옹>과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에 빠져 있었다. 원수는 다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하며 세상에 대한 분노심으로 가득한 맹랑한 어린 소녀의 이야기인 영화 <레옹>. 지인에게 선물 받은 난을 돌보다가, 그것에 마음을 쓰는 것조차 집착이라 깨달으신 노스님의 이야기를 담은 <무소유>. 서로 닮은 구석이 전혀 없는 그 둘의 이야기가 모순처럼 뒤얽혀 나의 인생 책과 영화로 꼽히던 시기. 딱 나의 젊은 시절을 반영하는 인생 책과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나는 표출되지 않는 조용하지만 격동적인 분노를 가슴에 품고,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찾으며 나를 위로해 줄 정신적인 ‘어른’을 간절히 찾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영화를 통해 내 해소되지 않고 잠들어 있는 내면의 분노를 대신 느끼며 , 책을 통해 그 분노를 가라앉히는 일종의 자가치유를 반복하던 시절, 그렇게 그 당시 그 책과 그 영화는 내 인생을 가득 채우며 그 시절 인생 영화와 책으로 기억된다.
그러다 20대에 들어섰던 어느 날, 무심히 기대 없이 봤던 <굿 윌 헌팅>이라는 한 소년의 이야기가 마음속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의 아픔으로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한 소년의 성장 이야기가 아프게 마음을 찌르며 내 마음속 한편을 비집고 들어와 자리 잡았다. 묘하게 끌리는 데는 항상 그 이유가 있는 법, 나중에 돌아보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당시 내가 이 영화에 마음이 끌린 점도 그것이 일면 나의 어떤 면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 속 그 소년이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인생 멘토를 만나면서 진정한 위로를 받는 이야기에서 내가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로 표현할 줄을 몰라 거칠게 반응하는 한 소년과, 아프지만 참아가며 그 소년의 진정한 모습을 이끌어내는 정신적 스승이자 유일한 친구의 이야기가 볼 때마다 위로가 되곤 하여 매번 힘이 들 때마다 편안히 꺼내보는 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이 시절 나의 인생 책은 딱 한 권으로 꼬집을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심리학 이론이었는데, 바로 심리학자 칼 융의 <분석 심리학>이었다. 그의 심리학 이론은 나의 약한 부분인 내면조차 ‘그림자’로 인식하게 하고 나를 통합적인 인간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나’라는 인간 전체를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달 표면에 해가 비치면 그 반대편에 반드시 그늘진 부분이 있다는 것, 우리의 인격 또한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구분 지어질 뿐, 사람들 대부분은 거의 비슷하게 온전하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나와 다른 이들을 드러난 형상만으로 가 아니라 ‘온전한 전체’로 이해하는 데 큰 위로가 되는 사상이었다.
30대는 내가 ‘독립’을 추구하고 힘겹게 이뤄내던 시기였다.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았으나, 나는 진정으로 내가 ‘어른’ 이 되었다고 느끼지 못했다. 아직 친정 부모 밑에 종속되어 있다고 느꼈고, 시댁의 관리를 받고 있다고 느꼈다. 남편 손을 잡고 우뚝 선 어른이 되어 나의 아이들을 길러내면서 더더욱 성숙하고 성장해 가는 것이 결혼의 의미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친정, 시댁 식구들 밑에 종속되어 조종되고 컨트롤되고 있는 주체적이지 못한 부모가 되기에 아직은 미성숙한 ‘아직 누군가의 딸이자 아들’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독립을 꿈꾸었으나 아직 자신은 없었던 그 시기에 만났던 인생영화가 바로 일본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였다. 잔잔한 영화가 내 마음을 잡아끄는 데가 있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 남자가 꼭 내 모습 같기도 해서였는가보다. 아이에게는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전부라는 교훈도 그리고 무엇이 인간을 어른으로 성장하게 하는가에 대한 훌륭한 관점도 가지고 있는 영화였다.
그리고 그 결코 쉽지 않은 부모들로부터의 독립을 감행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아프고 외롭지만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선택하는데 용기를 불어넣은 책이 이승욱 정신분석가의 <포기하는 용기>라는 책이다. 부모 아래에 안락하게 누군가의 ‘자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안전하고 편안할지 모르지만, 나는 불편하고 더 힘들더라도 더 이상 누군가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책임지기 위해서 부모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 부모님과의 갈등이 시작되었었다. 우리 부모님에게도, 나에게도 때늦은 사춘기 시절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힘겨워서 그냥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고, 그냥 남들 다 그렇게 사는데 나도 그렇게 대충 살자는 마음이 들 때도 많았다. 그런 나를 단단하게 잘 붙들어주었던 책이자 문구가 <포기하는 용기>였다. 우리는 무언가를 행하는 것에만 ‘용기’라는 단어를 붙이기가 쉽다. 하지만, 내가 가진 어떤 것을 포기하는 것,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도 엄청나게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가장 궁극적으로는 내가 미숙하지만 온전한 한 인간으로 독립하는 것에 가장 큰 용기가 필요함을 내게 일깨워 준 그 시절 내 인생 책이다. 그리고 내 두 발로 우뚝 서서, 나의 아이들을 키워내고 내게 필요한 선택을 스스로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조금이나마 성장했다고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리며 흐뭇해한다.
영화 <어바웃 타임> , 책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
아이 셋을 키우느라 눈코뜰 새가 없이 보내고, 그 와중에 친정 부모님과 시댁으로부터도 독립을 꾀하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피폐해져 있을 때즈음이었다. 내 인생은 뭐지? 나는 왜 살고 있지?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가득 메워와 너무 힘들었다. 코로나까지 겹쳐 아이 셋과 아파트에 꼼짝없이 갇혀 지내던 시절 나는 피할 수 없는 그 질문들 때문에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절실하게 ‘혼자’ 있고 싶어 갔던 템플 스테이에서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제목에서 벌써 내 이번 마디의 생을 장식할 인생 책이 될 것임을 알아차렸다. 바로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라는 원제 스님의 책이다. 그날 밤, 단출한 숙소 방안에 놓여있던 그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내 삶이 정체되었던 이유는, 내가 끊임없이 내 삶에 질문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는 왜 여기 있고 살고 있는 것인지 질문하느라 내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요가를 할 때 행복한 이유는, 그 질문들로부터 잠시나마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질문을 내려놓고 내 몸의 감각에 충실해지는 그 시간, ‘질문하는 나’로부터 벗어나 ‘삶을 사는 나’로 옮겨갈 수 있는 그 능력을 기르는 것이 요가라는 것을. 그리고 원제 스님은 그것을 수행의 목적이자 결과라고 책에서 말씀하시고 계셨다. 질문을 멈추고 현재에 충실한 것, 그것이 수련과 수행의 목적이자 최종 결과라고 말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포스터를 접했을 때, 처음엔 연애 이야기인 줄 잘못 알아서 내내 볼 마음이 들지 않았다. 개봉한 지 꽤 후에 큰 기대 없이 영화를 틀었는데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는 내 새로운 인생 영화가 되었던 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는 지금 내가 지향하고 바라고 있는 요가적인 삶과 무척이나 같은 맥락을 유지하고 있다. 시간을 되돌려 다시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주인공이 마지막에 이제는 더 이상 시간 여행을 하지 않게 된 이야기를 들려줄 때, 마음속에서 너무 큰 감동이 일었다. 우리는 모두 시간 여행자라는 대사와 함께 평온하게 흐르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순간들, 평소에 보지 못했던 사소한 것들을 느끼고 그것들에 감사하며 일상에 매 순간 충실한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이 영화는 지금까지 내 마음속의 인생 영화로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요가를 좋아하는 이유와 굉장히 닮아있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문득문득 내 마음속에서 떠올라 삶을 즐기지 못하고 있는 여러 순간들의 나를 다시 현재로 이끌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