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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백

말이 없는 관계

by 파랑새의숲

나는 언젠가부터였나 혼자 자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띠동갑의 오빠가 있었으나 내 사춘기가 시작하려던 즈음 어느 날 객사했고, 그 이후로는 나이 드신 부모님과 함께 살았으나 무척 불편했다.


물론 거의 모든 어미가 그렇듯 그 어미는 정상이 거의 아닌 시간을 보냈고. 그런 면에서 <폭싹 속았수다>는 내겐 거의 판타지다. 보통의 부모들은 그런 평온한 시간들을 나머지 자식들을 위해 내어주지 못할 정도로 망가지는 게 다반수다.


13살 정도, 사춘기 때부터 정말 혼자 자라 서였을까,

요즘은 혼자 있는 것이 너무 편해져서 가끔 두려울 지경이다.

그 이전까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 시니컬함을 갖추고 있었더라도 사람을 좋아하고, 내게 오는 사람들을 따스하게 맞이하고 붙들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거 같은데 요즘은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혼자가 편하다.


보고 싶은 사람도,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도,

하고 싶은 어떤 욕망도 크게 있지 않다.


물론, 만나면 누구보다 수다스럽게 세속적인 대화들을 해나갈 자신은 있지만, 그것이 그다지 재미있지 않고 어떤 때는 힘들고 고통스럽다.


지금은 그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을 보살피고

더 이상 나의 기분이 나쁘지 않게 나 자신을 돌보고 있는 중.


맞다. 가장 키 워드 중 하나가


나의 기분이 더 이상 외부의 환경에 의해 나빠지지 않게.

내 기분이 나쁜 일들을 나를 위해서 지속하지 않도록.

그거였다.


40 중반 인생, 이제까지 기분 나쁜 일들을 너무 많이 참아왔는지, 더 이상은 나 자신을 기분 나쁘게 하고 싶지가 않아서.

내 주변의 최소한의 ‘말’을 하는 환경들과 접촉하고 있다.

즉, ‘말’이 필요 없는 관계들만 만들고 있다.


사회성이 없는 편이 아니라, 마음이 닫힌 편이 아니라 마음을 먹으면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성격임에도 요즈음은 굳게 닫고 있다.


왜 그럴까 생각하다가..

‘말’ 이 필요 없는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역설적으로 말들에 상처받아왔기 때문일 터였다.


무심코 뱉는 독.

재미 삼아 던지는 표창.

의미 없는 립서비스.

마음 없는 정성.


상처받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생각했지만, 문득 돌아보니 그 모든 상처들은 ‘말’에서 비롯되었다. 그 말들은 죽지 않고 내 주변을 맴돌며 내가 약해질 때마다 나를 찔러댔다.


귀찮고 상대하기 싫은 감정으로 나타났지만, 결국 내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는 건 내가 에너지가 바닥날 만큼 상처받았다는 뜻이다.


나는 그 누구와도 그런 에너지를 쓰고 싶지가 않은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휴식일까? 상처일까?

매번 갸우뚱 하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그래서 ‘말’을 하지 않는 고양이들과 , 식물들을 사랑하게 되었나 보다.


#말 #상처 #회복 #치유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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