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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든 토마토 모종 그리고 우리 아이들

by 파랑새의숲

요즘 아이들의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내 아이들이 어리기도 하고, 학원을 보내느니 내가 가르치고 싶어 시작하게 된 일이기도 하고.

내 사교육비를 줄이는 이점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시간, 생기, 노력을 낭비하지 않고 최소한의 해야 할 것들로만 공부 시간을 채우고 자유시간을 더 제공하기 위함도 있었다.


말하자면 내 아이들이 다른 학원에서 멍 하니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배우느라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꼴을 보기 싫었다고 하면 가장 솔직할까. 해야 할 것은 단기간에 집중해서 끝내고 나머지 시간이 자유롭길 바랐다. 마당에서 풀도 뜯고,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공원에서 뛰고, 희희낙락 거리는 시간이 많길 바랐다.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 아이들이 점점 더 커가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나라는 엄마들이 이상하게 아이들이 희희낙락 낄낄대며 집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 것을 두 눈뜨고 보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상담할 때면 아이들을 최대한 ‘압박해 주세요’ ‘숙제 더 많이 내주세요’ ‘집에서 한가하게 내내 놀아요’ ‘공부 더 하게 해 주세요’ ‘평가해 주세요’라는 부탁을 받을 때마다 난감하면서도 씁쓸한 것이 사실이다. 초등학생이라 그 정도면 충분해요..라고 과하게 공부를 시키지 않는 내 교육철학도 어떤 면에서는 맘에 들지 않아 하시는 분들도 많다.


학교 끝나고 학원에 와 앉아 있자니 배가 고프다고 축 쳐져있는 아이들을 보면, 과연 지금 내가 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리키는 게 맞는 건지 회의가 들 때도 있다. 밥이나 간식부터 챙기고 싶은 건 내가 세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일까..



고등학교도 아닌 초등, 중등 학생들이 벌써부터 집에서 저녁 먹고 잠잘 때까지 공부하고 숙제해야 시간을 잘 쓰는 것이라고 느껴야 한다면, 그 아이들의 미래도 아마 그럴 것이다. 시간이 남고 쓸데없는 시간들이 많아야 뭘 할지 고민이라도 할 수 있는 법. 앞으로도 편안히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게으르다’라고 느끼며 끊임없이 자신을 쉬지 못하고 무언가를 하도록 채찍질하는 것을 ‘부지런하다’라고 착각하게 되지는 않을까 우려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해야 할 것으로 꽉 차 있다면,
하고 싶은 것을 채울 수가 없다.
하고 싶은 것조차 모르게 될 수도 있고.



하루 종일 학교에서 이래저래 뭔가를 배운 아이들이 집에 가서 뒹굴 뒹굴 노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 아이들은 어디서 ‘쉼’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을까? 아침 7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수업을 듣고 저녁에 학원에 와서 또 집중하라 다그치기가 미안할진대, 문득 시든 토마토 모종을 보면서 혹여 우리 세대 아이들의 현재 모습이 이렇지는 않은지..


이틀 동안 비가 와서 실내에 들여놓았더니 시든 토마토 모종에게 흙을 밟게 해 주고 바람을 쐬게 해 주고 물과 거름을 듬뿍 주고 반나절 후에 돌아보니 신기하게도 그 새 꼿꼿하게 다시 고개를 들었다. 반응이 빠른 것이 마치 우리 아이들 같다.


우리는 언제 우리의 아이들에게
‘쉼’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교육은 그걸 해낼 수 있을까.

아니, 한국 사회는 , 나는 그걸 해낼 수 있을까.

내 교육과 양육의 목표를 아이들이 스스로 ‘생기’ 있게 살도록 하는 것으로 다시 한번 다잡아 본다.


#교육 #시든토마토모종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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