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범이와 관식이는 한 끝 차이>
내 남편은 영범이었다. 세련되고 다정한 마마보이였다.
그리고 지금은 한 아들에서 벗어나 자기가 꾸린 가정의 가장이며 나의 남편인 관식이로 변모 중이다.
나는 마음고생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평온한 결혼생활을 누리고 있고, 그 어느 때보다 남편이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시어머니 문제로 고생할 때는 꼴도 보기 싫고 반품하고 싶더니 그게 언제 적이냐 싶게 남편 태도에 따라 다시 사랑은 부드럽게 돌아온다. 사랑이 아예 떠났던 것이 아니라 그동안 사무치게 서운했던 것이었기 때문일까.
영범이와 관식이는 연애 때는 잘 분간이 안 간다.
결혼해서 살아보며 시어머니의 존재가 그들 사이에 제대로 등판해 봐야 그 남자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들 둘이 다른 점은 시어머니, 즉 자기 어머니와 자기 여자가 부딪힐 때 취하는 자세뿐이다. 그것이 마마보이와 진정한 가장을 가르는 유일한 척도일지도. 즉, 시어머니가 부부 관계 사이에 끼지 않는다면 영범이와 관식이는 차이가 그다지 많지 않은 캐릭터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많은 영범이들은 관식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남자들이다.
난 고부갈등, 가슴앓이로 10년 넘게 영범이 같은 남편과 살았다. 그러나 내 시어머니가 그리 악독했다는 뜻이 아니다. 내 시어머니는 인품이 아주 부드럽고 훌륭하신 분이다. 그러나 고부갈등은 어머니의 인품이 일으키는 점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지 못하고 있다. 모든 고부갈등은 시어머니가 악독하거나 며느리가 참을성이 부족하거나, 여자들의 문제로 그려지는 것이 참 못마땅하다.
고부갈등은 시어머니나 며느리의 인품 문제가 아니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다
훌륭한 인격을 가진 두 여자도 얼마든지 고부갈등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잘못된 구조를 가진 이 몹쓸 전통을 대물림한다면 말이다.
이 글은 고부갈등으로 고생하는 여자들을 위한 글이 아니다.
고부갈등이 있는 집, 혹은 그 때문에 가운데에서 등이 터지고 속이 썩는 힘든 남자들에게 쓰는 글이다.
악독 시어머니 밑에서 고생하는 금명이 가 아닌 영범이를 위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영범이 엄마를 위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관심이 있으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손 놓고 여자들 문제라며 뒷짐 지고 있어도 머리 아플 남자들을 위한 글이다.
그 서막을 시작해볼까 한다.
이 글을 가슴 아픈 여자들, 금명이 들 만 읽지 않기를 바라며.
연재를 시작해 볼까.
#고부갈등 #마마보이 #남자로성장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