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갈등, 그 구조를 다시 묻다
아니면 며느리의 문제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둘이 안 맞아서 생기는 문제일까요?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졌습니다.
또다시 고부갈등의 가해자가 ‘악덕 시어머니’로 단순하게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면 맞는 현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은 그렇게 명백히 ‘악한 시어머니’가 존재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우리 집은 괜찮지 않을까?”
“우리 엄마는 안 그런 편인데…”
하지만, 정말 괜찮은 걸까요?
고부갈등은 누군가 나빠서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착하고 예의 바른 사람들 사이에서 더 자주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차라리 노골적인 인물들이라면
서로 감정을 표출하고 갈등의 경계를 분명히 긋기라도 하거든요.
하지만 정작 힘든 건
겉으론 평온해 보이는 음성적 갈등입니다.
예를 들어, 김치나 반찬을 싸들고 오시는 시어머니.
보기엔 좋은 마음이지만,
그건 어쩌면 역할 혼동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남편 입장에서는
“뭐 그런 걸로 그래?” “좀 넘어가면 안 돼?” 싶은 일입니다.
일하랴 바쁘고,
감정 싸움은 귀찮고,
무엇보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난 어머니도 좋고, 아내도 좋은데
둘은 왜 그리 서로 마뜩치 않고,
내 아내는 왜 그렇게도 내 좋은 어머니를 불편해하는지
영 모르겠으니까요.
아마도 아내가 좀 예민한 거 같기도,
내 어머니가 좀 귀찮게 구는 거 같기도 할 뿐이죠.
하지만 아닙니다.
이 갈등의 중심에는 바로 ‘한 명의 남편’이 있습니다.
그 문제는 단지 김치나 사소한 문제들 때문이 아니라,
역할 경계가 뒤섞인 구조 때문입니다.
남편이 ‘중립’이라는 이름 아래 빠져 있는 동안,
모두가 상처받고 있습니다.
아내는 서럽고 억울하고,
시어머니는 괘씸해하고 분노하며,
남편은 피곤하고 짜증 납니다.
그러다 보면
정작 아무도 중심에 서지 못한 채
‘고부갈등’이라는 단어만 이상하게 남아버립니다.
정말 이것이 단지 여자들끼리의 감정 싸움일까요?
아니면 관계 구조 안에서 감당해온 짐일까요?
혹은, 사회 전체가 만들어 낸 무의식적 대물림일까요?
그 질문을, 이제는 남편들이 스스로에게 해봐야 합니다.
억울한 며느리, 무의식적인 시어머니, 침묵하던 아버지들,
그리고 지금 등 터지는 남편들까지.
우리는 어느 하나 완전한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닙니다.
단지, 익숙했던 틀 속에 있었을 뿐입니다.
그 틀은
‘모성애는 위대하다’
‘착한 아들은 효도해야 한다’
‘며느리는 감내해야 한다’
라는 내면화된 역할 기대였을지도 모릅니다.
고부갈등은 단순한 가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문제 안에는 엄청난 사회적, 심리학 이론들이 숨어 있습니다.
정서적 미분화
역할 혼동
모성 신화
착한 아들, 희생하는 며느리
정신적 간통과 나르시시즘
편애를 통한 인간 도구화
등 수많은 심리적・사회문화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의 남편이며, 누구의 아들인가?
남편이란 무엇이고, 아들이란 무엇인가?
그것들의 역할들은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그 경계는 어디까지여야 하는가?
어떻게 잘못된 이름 아래 혼동되어왔고,
서로의 역할과 영역을 침범하는가?
이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입니다.
이 질문에 정답은 없겠지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 선택이 바로
불필요한 죄책감과 책임을 내려놓고,
건강한 관계로 다시 설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내 현재 가정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고부갈등은 누구 한 명이 나빠서 생기는 갈등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탓하지 않으면서,
함께 구조를 들여다보는 일이 이제는 필요합니다.
이 매거진은
바로 그 구조 속에 조용히 끼어 있었던 그들을 위해 시작합니다.
#고부갈등심리학
#중간에낀남자들
#두여자사이
#가족의경계
#남편심리
#시댁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