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이 몰랐던, 며느리의 감정들
아내가 자신의 어머니 때문에 힘든 기색이라도 보이면,
남편들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가 김치 좀 가져다주는 게 뭐 어때서?”
“전화 한 통에 그렇게 예민할 일이야?”
“우리 엄마, 그냥 우리 도와주려는 건데 왜 그렇게 불편해해?”
표면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이 솟아납니다.
그건 단지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특히 아내가 불편해하고 있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내가 특히 예민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콕 집어 말하기 힘든
어떤 불쾌감을 느끼고 있는 거지요.
그리고 그 불쾌감은 많은 경우 정당합니다.
당신의 아내는 이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녀는 지금 ‘도구화되고 있다’고 느끼는 겁니다.
그건 작은 일 같지만,
결혼이라는 관계에서 반복적으로 쌓일 경우
감정적 침식으로 이어집니다.
이해하기 힘들다면 아래 예시들을
남편 입장에서 상상해 볼까요?
당신이 회사에서 상사 눈치 보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게다가 안그래도 또라이 상사 땜에 짜증이 엄청 나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어렵게 받은 전화,
장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돈 부족하지? 내가 좀 부쳐줄게.
우리 딸 좀 잘 먹이고, 옷도 사 입혀.
애 꼴이 그게 뭐니.
내가 귀하게 키운 딸인데
네가 돈을 못 벌어서 애가 그 지경이잖아.”
기분이 어떤가요?
고마운가요?
아니면 무능하다는 평가를 들은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하나요?
당신의 아내도 똑같습니다.
월급, 돈, 재력 =밥상, 반찬, 살림으로 매개체만 다를 뿐이죠.
시어머니가 김치를 싸오는 행위는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아내 입장에서는,
“내가 살림을 잘 못해서 어머니가 나서서 채워주는구나.”
“나는 어떻게 해도 충분하지 못하구나.”
"나를 이 남자의 아내로 인정하지 않으시는구나"
라는 식의 ‘역할 평가’와 ‘기능 간섭’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같은 구조로 한 번 더 상상해볼까요?
시어머니가 남편의 속옷을 사다 주며, 살림을 직접 챙기고, 세탁까지 해주는 상황을 떠올려보세요.
이번엔 당신의 장인이, 당신 아내의 속옷을 직접 사오시며
당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딸, 잠자리에서 예쁜 속옷 입혀야지. 이런 스타일이 어울리겠네.”
“그나저나 사위 네가 돈 많이 벌어 우리 딸 옷도 좀 사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 먹여.
혹시나 돈 부족하면 내가 돈 보탤게.”
겉보기엔 사랑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당신의 사적 영역을 넘는 간섭입니다.
당신을 가장으로, 내 딸의 남편으로
존중하지 않겠다는 무의식적 메시지일 수 있습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도와주는’ 행동 같지만,
내면에선 반복적인 침범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자주 전화를 걸어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 아들은 요즘 바쁘대?”
“애는 누가 보니?”
“니 남편(내 아들) 요즘 살 좀 빠졌더라.”
이건 ‘며느리’의 안부가 아니라,
아들과 손주의 소식을 듣기 위한 ‘중간 연락선’입니다.
상상해 봅시다.
당신에게 누가 매번 전화해서
“네 친구 누구 누구 요즘 잘 지내냐?”
“그 부부는 요즘 어때?”
“걔는 주식 이번에 뭘 샀대? 집은 샀대? ”
라고 매번 남의 안부를 묻는다면 어떨까요?
당신 삶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연결책으로 당신을 대한다면?
그 친구의 전화가 기다려질까요?
아니면, 피하고 싶어질까요? 절교하고 싶지 않을까요?
아내에게도 그 전화는
‘나에 대한 관심’을 품은 대화가 아닌 ‘감정 노동’입니다.
반갑기보다 피로하고,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방적인 의무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마치 휴일에 받아야만 하는 상사의 전화처럼요
회사에 이런 팀장이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평소엔 당신에게 무심하고, 별 관심도 없어요.
심지어 뭘 잘못하면 쌀쌀맞게 대합니다.
그런데 상무나 본부장만 오면, 갑자기 당신을 치켜세웁니다.
“얘 진짜 일 잘해요.”
“제가 진짜 많이 아낍니다.”
하지만 당신은 압니다.
그 말은 나를 정말 좋아하는 진심이 아니라,
‘윗사람 앞에서의 본인이 좋은 상사라는 연출’이라는 걸요.
당신의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어머니가 남들 앞에서는 친절하고 좋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당신 앞에서는 며느리 걱정을 애틋하게 하시지요.
하지만 실제로 며느리가 느끼는 것은 은근히 지적하고,
비교하고, 통제하려 든다는 것일 수 있어요.
진정한 애정이 없는 간섭은 이렇게 다른 느낌입니다.
더 괴로운 건—
그 따뜻함이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아들 앞에서 며느리를 걱정하는 척, 며느리를 생각하는 사람처럼 연출된다는 점입니다. 남편은 모르지요.
아내 입장에서는, 그 모순이 더 아프게 다가옵니다.
겉으론 “생각해주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으론 감정적 거리를 두고 ‘역할’을 점검하며
실제 생활을 ‘통제’하려는 그 손길.
그 모든 행동은, 진짜 도움이 아니라
사랑을 가장한 감정적 침범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사랑한 사람은 김치를 잘 받아야 하는 사람도,
나의 어머니의 전화를 잘 받아야 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녀는 당신과 함께 가정을 꾸리기로 선택한 존재입니다.
그녀의 불편한 감정을 사소하게 넘기지 마세요.
그건 단순한 여자들 감정싸움이 아니라,
아내로서의 역할 경계와 구조의 문제입니다.
극단적인 예로 들어볼까요?
당신 부부의 침실에 누군가 갑자기 들어와
“여긴 내 자리야”라고 말하며,
부부 사이에 베개를 놓고 눕는다면—
남편 기분이 어떨까요?
그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라
장인어른이라면요?
바로 그거예요.
여자에게는, 그런 감정입니다.
남편과 나 사이에 내 역할과 겹치는 다른 누군가가 들어와
나를 통제하려고 하는 느낌이요.
아내가 불편해하는 것은 ‘행동’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숨어 있는 ‘의미’입니다.
그녀는 기능이 아닌, 존재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당신과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누군가가 들어와
자신을 맘대로 통제하는 걸 허락하고 싶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당신의 '아내' 가 되고 싶은데,
누군가 그 역할을 계속 방해합니다.
누군가가 자꾸만 나서서 너는 당신의 아내가 아니라고,
너보다는 내가 더 낫다고 이야기하며 끼어듭니다.
그럴 때 아내의 기분이 어떨까요?
사소해 보이는 일들 속에 깃든 무시와
도구화의 그림자를 당신이 이해하기 시작할 때,
고부갈등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왜 어머니는 그런 행동을 반복하실까요?
어머니도 사람입니다.
며느리가 불편해하고 싫어한다는 것,
다 알고 계십니다.
아무리 좋은 척을 해도,
그 미묘한 눈치와 감정의 기류를 모르실 리 없죠.
그런데도 왜 그러실까요?
그 질문에서부터,
고부갈등의 진짜 구조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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