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문화 · 남아선호 · 남성중심사회 · 골든차일드
왜 우리 어머니(시어머니)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실까요?
정말 몰라서 그러시는 걸까요?
아닐 겁니다.
직접적으로 말은 안 해도, 눈빛과 말투,
분위기로 우리 모두 압니다. 직감이죠.
며느리가 껄끄럽고, 피하고 싶어 한다는 걸요.
그런데도, 그 행동을 멈추지 못합니다.
오히려 나를 껄끄러워한다고
괘씸해하거나 서운해 하시는 경우도 있죠.
왜일까요?
그 이유는 단순한 성격이나 고집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녀들의 말과 행동 너머에는
한 시대, 한 문화가
여성에게 부여한 자리와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시어머니 세대는 대부분 유교문화가 깊게 뿌리내린
한국 사회에서 자라났습니다.
그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효’, 그리고 ‘가부장적 위계질서’였습니다.
그 체계 속에서 여성은
다음과 같은 역할 서열 속에서 살아왔죠.
딸 → 며느리 → 아내 → 어머니 → 시어머니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의 소속’으로 규정되었고,
존재가 아니라, 역할로만 인정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사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딸은 물 떠온 종지에 불과하고,
진짜 금은 아들을 낳아야 집안에 들어온다.”
또 슬프게도 대놓고 이런 말도 있지요.
첫 딸은 살림 밑천이다.
딸로 태어난 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결혼해서도 ‘남편의 아들’을 낳지 않으면
한 여성으로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남아선호 사상입니다.
단순한 선호가 아니라,
여성의 존재 자체를 아들을 통해 완성해야 한다는
사회 구조적 관점이었습니다.
그 시대 여자들은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따라갈 수도,
무엇을 원하는지 말할 자유도 없었습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포기했고,
남동생을 위해 희생했고,
좋은 며느리가 되기 위해 인격을 접었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단 하나의 무대는
결혼, 그리고 아들을 잘 키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단지 자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회로부터 받은 유일한 인정,
그리고 “나는 괜찮은 여자로 살아왔다”는 증명서였을 겁니다
‘골든차일드(Golden Child)’란, 심리학 용어에요.
스케이프 고트(scape goat) 희생양 이라는 말과 대비되어
가족 안에서 부모의 기대와 감정적 욕망이 집중된 아이를 뜻합니다. 일명 ‘엄친아’ 입니다.
겉보기에는 가장 사랑받고 대우받는 잘난 자랑스러운 자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모의 인정욕구, 보상심리, 감정적 결핍을 자신의 삶을 통해 대신 채우며 감정의 대리자 역할을 힘들게 떠맡고 있는 안타까운 존재입니다.
부모의 인생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 내야 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가 어렵습니다.
이 아이는 무엇보다 무의식적으로
자기 감정보다 부모의 기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기 자신이 아닌 부모가 원하는 삶을 대신 살아가게 됩니다.
부모의 욕망을 실현하는 ‘대리 실현자’ 로서요.
그 아들은 바로 그런 존재였습니다.
존재의 증명서이자,
사회적 보상의 상징이자,
무엇보다 어머니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유일한 존재, 바로 정서적 배우자였습니다.
남편에게 살뜰히 보살핌 받지 못했던 감정,
그 누구에게 말하지 못했던 외로움과 억울함,
그 모든 것을 아들을 통해 위로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아들에게 자신의 전부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결혼을 했습니다.
이제 아들의 아내인 그 젊은 여자가
그의 인생 1순위가 될 것 같습니다.
그녀는 꺼내어 말할 수 없지만, 혹은 스스로도 모르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렇게 외칩니다.
“내가 키웠고,
내가 여기까지 오게 했고,
내가 없었다면 이 남자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나는 필요 없는 사람이 된 거야?”
이 감정은 단순한 질투가 아닙니다.
존재 자체가 무력화되는 깊은 허무함입니다.
자신의 삶이 모두 무효화되는 듯한,
지워지는 느낌이지요.
그녀가 며느리에게 김치를 싸서 보내고,
아들의 아내의 살림을 평가하고,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 아들의 안부를 묻는 건
중심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몸부림입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압니다.
며느리가 싫어한다는 것,
자신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
자신이 없어도,
김치나 반찬들을 굳이 그리 안 싸줘도
그들은 잘 살 수 있다는 걸 은연중에 무의식적으로 압니다.
그래서 더 두렵습니다.
그래서 더 멈추지 못합니다.
그 모든 행동은
딸로서 받지 못한 사랑,
아내로서 채워지지 않았던 감정,
그 공허한 자리에서 어떻게든 인정받고 싶은 내면의 흔적입니다.
그녀는 아들을 놓지 못하고,
아들은 어머니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며
‘중립’을 지킨다고 믿지만,
사실은 여전히 어머니의 감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어머니의 아들’일 아이일 뿐입니다.
아내가 불편해해도,
어머니가 마음 상하면 더 아프고,
그 감정을 대신 짊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도 어머니의 감정 세계 안에 있는 ‘골든차일드'이기 때문입니다. 그 트로피를 쉽게 내려놓지 못합니다.
자랑스러운 아들로서 자신의 삶을 부모에게 증명해보이고 싶거든요.
부모에게 들어왔듯, 사회에서 말하듯,
그것이 아들인 자신의 도리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어린 아들은,
자신의 삶 전체로 어머니의 삶을 증명함으로써,
아직 어머니의 인정을 저버리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시어머니의 한 여자로서의 삶,
그 결핍과 외로움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해도—
이제 막 독립을 시작한 부부가
그 인생을 위로하고 보상하는 데
자신의 삶을 쏟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서로의 삶을,
서로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순간
진정한 관계의 고통이 시작됩니다.
그것만큼 서로를 착취하는 관계는 없습니다.
마치, 한 몸처럼 엉켜 자라는 쌍둥이 나무처럼
서로의 몸에 깊게 뿌리를 박은 채,
자유롭지 못하고,
관계를 갉아먹는 삶.
이것은 연결이 아니라 의존이며,
관계가 아니라 구속입니다.
하지만, 그 뿌리를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이 문제를 감정이 아닌 구조로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이제
결혼과 함께 독립해야 하는 시대,
각각의 세대로 분리되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참기 어렵고,
남편의 입장에서는 곤란한 이 <고부갈등> 이라는 상황을
건강하게 마주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녀들을 정죄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행동을 구조의 산물로 인식하는 일입니다.
그때부터
고부갈등은 단순한 감정싸움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 권력과 존재감의 이야기로
재구성될 수 있습니다.
중심에 있는 한 남자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어,
아내의 손을 잡고 부부로서 우뚝 설 때
비로소 고부갈등 문제는 풀리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시어머니는 더 이상 아들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삶과 오롯이 마주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녀 자신의 삶 안에서 성취감과 의미를 되찾는 여정은
늦었지만 그제야 비로소 시작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고리를 지금 내 세대에서 끊지 않으면,
아내는 또다시 남편을 시어머니께 양보하고
시어머니와 같은 ‘정서적 과부’가 됩니다.
남편이 되지 못한 아들의 곁에서 감정적으로 고립된 아내는,
결국 그 공허함을 또다시 우리 아이에게로 넘기게 됩니다.
그 아이는 또다시 골든차일드가 될 확률이 큽니다.
아픔은 그렇게, 우리가 적극적으로 의식하지 않는다면
말없이 또 대물림됩니다.
‘시집살이 당해본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면 더 한다’
그 슬픈 옛말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겠지요.
아마도 그 대물림은 이전 세대보다 더 은밀하고,
더 강력한 뿌리로 우리 아이들을 향해
조용히 더 무섭게 뻗어나갈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뿌리 건강한 부부로 우뚝 서야 하는 이유.
그건 단지 지금의 고부갈등을 넘어서기 위함만이 아닙니다.
건강하지 않은 대물림을 멈추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또 다른 골든차일드가 되어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살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그 골든차일드였던 남편들은 힘들지 않았을까요?
아니요. 아마도 무지하게 힘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왜 그는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중립’이 최선이라고 믿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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