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허리로 내려앉던 순간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친구였다.
결혼하고 아이 셋을 낳은 뒤로 정신없이 살면서,
그 친구와 연락이 끊긴 지도 꽤 오래였다.
어느 틈엔가 나는 사회에서 멀어져 있었고,
그 친구는 ‘학원 원장’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문자는 밤 10시에 도착했다.
‘웬일이지?’ 하며 반가운 마음으로 열었지만,
내용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OO군이 영면에 들었습니다.
내일 발인입니다. OO병원 XX호실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혹시 잘못 온 문자인가? 의심했지만,
이름 석 자는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분명했다.
더 이상한 건,
바로 그날 아침 나는 이웃들과
정말 오랜만에 그 친구 이야기를 나눴다는 점이다.
대학교 시절, 전봇대에 과외 전단지를 함께 붙이던 이야기.
명문대에 다니던 그 친구가,
여자 선생님을 찾는 전화가 오면 나를 연결해주던 시절.
그렇게 서로 협업하듯 지내던 젊은 날의 기억을
무심히 꺼낸 바로 그날 밤,
그의 핸드폰으로 발송된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부고 문자를 받았다.
무조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고등학교 동창들과 황급히 연락해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동창회 같은 장례식장에서
서로 근황을 나누고 앉아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때부터 내 허리는 점점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앉아 있다 보니 목덜미까지 뻣뻣해졌고,
단순한 피로나 담이 아닌,
몸 전체가 굳어가는 느낌이라
더 이상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나 이제 가야겠다. 지금 허리가 너무 아파…”
그날은 모든 것이 충격이었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
묘하게 어색한 동창회 같은 장례식장의 분위기.
그리고 얼마 전 새로 시작된,
‘전업주부’라는 나의 현재 사회적 위치.
며칠 전, 나는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았다.
10년 넘게 다닌 회사에 공식적으로 퇴사 처리를 마쳤고,
그 순간, 마음 한 켠은 홀가분했다.
출근 스트레스, 인간관계, 끝없는 보고서와 경쟁.
이제는 거기서 벗어났다고.
게다가 육아와 병행하느라 회사, 집 양쪽 눈치를 보지 않아도된다고
이제는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아이 셋을 오롯이 내가 보살필 수 있겠다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예전 친구들의 “요즘은 뭐 해? 아직도 그 회사 다녀?”라는 인사에
나는 대답할 말을 잃었다.
누구도 무례하지 않았지만,
그 질문 하나로 나는
내 삶에서 ‘사라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엄마”, “아내”, “집에 있는 사람”이라는 호칭은 있었지만,
이제 사회에서 ‘나’라는 지위는
영영 사라지고 없는 느낌이었다.
그날 밤, 간신히 운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허리를 펴는 것조차 불가능했고,
상체를 일으키려는 시도마다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황급히 응급실로 실려 갔고,
아이 셋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남편은 “갑자기 도대체 왜 그러지?”라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진심으로 무서웠다.
이대로 내 몸을 영영 쓸 수 없게 되는 건 아닐까.
하반신 마비, 식물인간, 병상에서의 삶…
온갖 생각이 밀려왔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단순한 허리 통증이 아니었다.
그건,
반복되었던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몸의 망가짐,
혼자 감당해야 했던 육아와 고립감,
한국에서 결혼의 현실과 부모님들로부터의 독립투쟁,
그리고 나로부터 멀어진 시간들이
몸에 쌓여 터져 나온 순간이었다.
그날 밤, 나는 완전히 무너진 내 몸과 맞닥뜨렸다.
움직일 수 없다는 공포와 함께,
그동안 꾹꾹 눌러 참아왔던 내 마음까지
함께 무너져 내렸다.
남에게 들킬까,
내가 알아차릴까 두려워 억눌러왔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자,
내 몸은 마치 온몸으로 울며 절규하는 아이 같았다.
고통은 허리에서 시작되었지만,
사실은 마음 깊숙이 쌓여 있던
슬픔, 분노, 외로움,
그리고 말할 수 없던 무력감이
몸을 통해 폭발하고 있었다.
내 마음을 억누르며 계속 모른 체 하자,
몸이 나를 기어코 멈춰세웠다.
그 순간이 바로,
내 몸과 다시 마주한 첫날이었다.
거기서부터 나는 내 몸과,
그리고 그 몸과 연결된 내 마음을 찬찬히 돌아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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