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무너진 마음과 몸

제발, 나의 몸을 보살펴줘

by 실루엣

그렇게, 몸이 먼저 무너졌다

마음은 어떻게든 억누르고 속일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정직한 물리적 세계인 몸은, 속일 수 없었다.


아파도 이렇게 아플 수 있을까.
하반신을 조금만 움직여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허리는커녕, 내 몸은 내 뜻대로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내일 아침, 일어날 수나 있을까.
아직 어린 아이 셋은 또 어떻게 하지?

‘이제 부모 도움 없이 혼자 키우겠다’고 다짐했는데,
또다시 친정과 시댁에 손을 벌려야 하나…

몸보다, 마음이 더 괴로웠다.


생각해보면, 그 무렵 나는 이미 무너져 있었다.
결혼하고 아이 셋을 줄줄이 낳고 기르며,
몸은 지쳐 있었고, 정신은 피폐해져 있었다.

결혼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것들만 함께 나누는,
핑크빛 연애의 연장선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간섭과 책임의 연속이었다.

결혼 후 더 심해진 양가의 간섭,
쉴 틈 없는 어린 아이 셋의 육아.
남편과의 달콤한 시간은 사라지고,
남은 건 책임과 의무뿐이었다.

그리고 뒤로 밀려난 내 삶, 내 이름, 내 경력.
나는 그저 ‘누구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익명화되어 갔다.


그 모든 무게는 결국,
‘망가진 몸’이라는 방식으로 터져 나왔다.

그때는 몰랐다.

몸이 마음을 대신해 말할 수 있다는 걸.
그저 허리가 끊어지게 아픈 줄만 알았다.
아이를 낳고 돌보느라 생긴, 흔한 통증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시기 나는 심리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그래서 의심하게 되었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혹시 이 아픔이 단지 몸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어렴풋한 감각이 생길 무렵,

한 권의 유명한 심리학 책을 만났다.
바로 베셀 반 데어 콜크(Bessel van der Kolk)의

<몸은 기억한다>라는 책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저자는
“트라우마는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몸에 각인되어 신체와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이 책은 트라우마를 심리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몸과 뇌에 남긴 흔적까지 다루어야 한다는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의 통합적 치유의 관점을 제시하여,
아직까지 현대 PTSD 치료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특히 치료 과정에서 ‘요가’를 활용해,
몸을 움직이는 것을 통해 회복의 가능성을 실험했고,
실제 환자들이 회복해 가는 모습을 기록했다.


또 하나, 내가 알게 된 심리학 개념이 있다.
바로 ‘전환장애’.

느껴지지 못한 감정, 혹은 억눌린 감정이
몸을 통해 증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시신경엔 이상이 없는데도 시력을 잃거나,
근육엔 문제가 없는데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그런 실제 사례가 도처에 존재했다.


나는 내게 물었다.
혹시, 이 허리도
그동안 말하지 못한 내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건 아닐까?

그 의심은 조용히 내 안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나는 복대를 두르고 이를 악물고 집안일을 했다.
힘겹게 병원에 다니며,
아직 너무 어려 내 사정을 전혀 봐주지 않는
아이 셋을 겨우 돌보면서도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물리치료를 마치고 병원 문을 나서던 순간,
눈에 들어온 간판 하나. 요가 센터.

그 순간, 내 안에서 선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몸을 보살펴줘.”


무언가에 이끌리듯, 나는 그곳에 들어갔다.
요가를 다시 시작했다.

예전엔 지루하고 재미없는 운동이라 여겼지만,
그때의 나는 달라져 있었다.



요가는 단순한 몸의 움직임이 아니라,
내 마음과 몸의 상태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침묵과 움직임 속에서의 나 자신과의 대화’였다.

내 회복의 시작은,
바로 ‘나의 몸을 돌보는 일’이었다.

나의 마음은 그 몸을 돌본 후에나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한참 후에 알았다.


더 강해지기보다,
내 몸이 지금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나를 회복의 길로 이끌었다.

그렇게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하니,
이미 오래전부터 내 몸은, 마음과 함께 울고 있었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회복하는 것.
그것이 진짜 회복의 첫걸음이었다.


#지친여자들

#독박육아

#몸은기억한다

#몸과마음

#몸과마음의연결

#요가로회복하기

#육아소진

#엄마의자기돌봄

#요가일기

#느린회복

#지친엄마를위한글

#감정회복

#자기돌봄

#여자와회복

#몸이말하는시간

#현실육아

#나를돌보는법

#브런치북

#일상에세이

#슬로우라이프

#몸의기억






작가의 이전글#02 몸이 말하기 시작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