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면접 , 인터뷰
나는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하면서 '나'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글쓰기를 하고 면접을 다니면서 그 경험들을 통해 값진 것들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탈락해서 불합격의 고배를 마신 적도 많지만, 그 모든 과정이 내겐 배움의 과정이었다. 그 과정을 간략히 소개한다.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앞두고 필요할 누군가를 위해.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빨리 취업을 해야했다. 독립을 빨리 원했으므로.
그 당시의 '나'에 대해 조금 떠올려보면, 사람많은 곳에 모여서 왁자지껄 즐기는 타입이 아니었다. 누군가 내 경계를 밟는 것도 싫어하고, 간섭과 관심 따위 받느니 그냥 혼자 있을래 주의였으며, 같이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면서 장단 맞추느니 차라리 혼자 밥 먹는게 편해서 핑계대고 혼자 있는 적도 많았다. 열댓명 모여서 의견을 모아 발표해야하는 조별 발표 딱 질색이고, 하하호호 모여서 노는 게 시시했다. 지금이야 그랬던 모습에 '독립적인 예술가타입' 이라는 멋진 말을 붙여주겠지만, 그 때는 그닥 안 친한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아이였다. 물론 지금도 그런 면이 남아 있지만, 지금보다 더.
즉, 나는 단체 생활에 그닥 적합하지 않은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중간한 어문계, 그것도 적성에 죽어라 안맞는 중국학과에 수능 점수 맞춰 대충 들어가 어영부영 다녔으니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프리랜서도 안되고, 빨리 독립하려면 어떻게든 아무 기업체에라도 '고용' 되어야 했다. 게다가 전공분야도 안살리기로 작정했으니 어쩐다..
서류전형 자기소개서부터 내 발목을 잡았다. 어릴때부터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나는, '자신에 대해 소개하세요' 라는 문장에 적잖이 당황해서 도대체 나를 어디서부터 소개해야 하는지, 그들이 정한 주제와 700자 또는 1000자 이내에 나를 어떻게 구겨 넣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처음에는 일단 글자수를 대충 채우는 것이 목표였다.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넣었다. 당연히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 다음엔, 내가 가면 일 좀 잘 할 수 있을 거 같은, 원하는 기업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그들이 원한다는 인재상을 보고 거기에 끼워맞췄다. 그들이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나를 한껏 그들이 바란다는 인재상과 비슷하도록 끼워맞췄다. 좀 이름있는 큰 회사들이었던 거 같다. 역시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취업이 생각보다 녹록치는 않구나.. 란 생각이 들 때쯤, 나는 진짜로 '나'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동안 연습한 대충 글쓰기 틀 안에 '지금의 나' 를 담아내보기로 했다. 원칙은 간단했다.
거짓을 말하지 말 것.
가지지 못한 장점을 부각시키지 말 것.
나는 '그저 이렇습니다' 를 이야기할 것.
어차피 채용할지 말지 결정은 기업 인사팀에서 할 것이었다. 그들은 사람 보는데 귀신이므로 그들의 일과 문화에 맞는 사람들을 골라 채용할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나는 이렇다. 너네 기업에 맞는지 좀 봐줄래? " 였다. 나는 그 기업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하므로. 그렇게 나는 자기소개서를 반복해서 쓰면서 나에 대한 이해를 넓혀 나갔다.
그 후론 결과가 꽤 좋았다. 그런데 면접에 가서 보면 내가 생각하는 기업 문화와는 달라서 고민에 빠지는 일이 생겼는데, 정작 내가 들어가도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은 경우들이 있었다. 그래서 합격 후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설명을 들었을 때, 그건 내게 맞지 않는 것 같다 당돌하게 현장에서 거절한 적도 있다. 지금 내 코가 석자인데도.
한 금융회사에 면접을 봤을 때 일이었다. 금융회사에서 웬일로 영어 인터뷰만 보길래 웬일인가 했다. 두 번째 면접에서 채용 확정을 하면서 다음주부터 당장 출근하라고 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외국인 상사와 한국인 부장 사이의 통역" 이라고 알려주는데, 네이티브가 아니라 철저한 국내파 영어실력을 가진 나는 좀 망설이다 대답했다.
그건, 제가 조금 자신이 없는데요. 저보다 더 잘하시는 분을 채용하셔야 할 것 같아요... 통역은 미세한 뉘앙스가 중요한데 제가 그것까지는 잘 할 자신이 없어서요..
그들은 당황했다. 기껏 채용한다 기쁜 소식을 면전에서 알려주는데 싫다니. 그 정도 실력이면 충분하노라, 면접 우리가 봤는데 그 정도면 된다. 라고 말하며 설득했다. 그런데 나는 정말 자신이 없었다. 내 영어는 철저한 국내파 영어였고, 외국인 상사의 뉘앙스를 캐치할만큼 세련되고 수준높은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높은 직책의 본사에서 파견된 외국인과 영어 못해서 안그래도 불안한 한국인 남자 부장 사이의 포지션에 어리디 어리며, 네이티브도 아닌, 직장 경력도 없고, 대충 토익점수만 높은 여자아이인 나를 채용하려는 의도가 새삼 의심스러웠다. 덩치 큰 고래 둘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어 얻어터지는 나를 상상하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급해도 여긴 아닌 거 같아.
또 다른 한 기업에서의 면접 때 일이다. 면접관이 주르륵 거대한 책상에 저 멀리 앉아있고, 지원자들은 쪼르륵 줄서서 들어가 불편하디 불편한 의자 네 개에 걸터앉았다. 면접 장소 세팅만 봐도 기업이 자기보다 낮은 직위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그 안의 문화가 어떤지 알 수 있다. 이 기업은 경직된 수직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만약 상사가 계속 복사시키고, 커피 타오라 하고, 그런 잡일만 시킨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나와 같이 앉아 있던 나머지 네 명이 차례로 대답했다. 신입이니 배우는 자세로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상사 일을 진심으로 도와주고 일을 배우려고 노력하겠다고 했다. 원래 바닥부터 배워야 크게 크는 거라고 당연하다는 대답도 나왔다. 같은 팀으로서 막내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이라는 대답도 나왔다. 나는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답변이 확고해졌다.
상사가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하겠지만, 속으로 짜증은 날 거 같습니다.
면접보는 사람들 중 나 혼자 여자였고, 군대 문화를 겪지 않은 것도 나 혼자였다. 그리고 아마 그 다섯 명 중 나만 그런 일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게 내 진심이자 그 당시의 내 모습이었다.
까칠하지만 정답이긴 하네.. 흠..
당황해서 고개 숙인 면접관들 중 한 분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회사는 처음엔 나를 떨어뜨렸고, 후에 내가 다른 회사가 붙었을 즈음, 합격자가 대거 이탈했는지 더 좋은 조건으로 연락이 왔다. 하지만 그 회사는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가지 않았으며, 나중에 그곳이 정말 재떨이가 날아다닐 정도의 어마어마한 군대문화를 지닌 곳이란 걸 알았다. 내가 그 좋은 조건을 받아들여 들어갔어도 어차피 금방 도망치듯 나왔을 것이었다.
또 한군데는 명품 브랜드 외국계 회사였다.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한 뭐시기 브랜드 회사는 나를 앉혀놓고 여기 다른 지원자는 '하버드대' 를 졸업했다며 대놓고 내 기부터 죽였다. 그리고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연봉은 이 이상은 주기 힘들다 면전에서 나를 그 숫자에 끼워맞추는 결례를 범했다. 명품회사면 뭐해, 사람을 물건보다 못하게 다루네. 라며 불쾌한 느낌에 2차 면접에 오라는 걸 가지도 않았다.
내가 자기 표현이 이토록 강했다는 걸 어필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면접자가 지원자들을 세심하게 살피고 시험하듯이, 지원자도 면접에서 그 일자리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알아내는 방향으로 면접을 이용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싶다. 채용해주길 바라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나는 어떤 상황에서는 특히 잘 못 견디는지 내가 잘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자신이 없는 곳은 피하고 싶었다. 서로 오해해서 그들이 원하지 않는 사람을 채용하고, 나도 나와 맞지 않는 기업에 들어가 서로 고생하는 일을 처음부터 막고 싶었을 뿐이다.
항상 성공했던 건 아니었다. 내가 이직을 결정해 다녔던 회사에서 받은 질문은 이랬다.
야근이 계속 반복된다면, 어떻게 하실 거에요? 혹시 굉장히 까칠하고 힘든 사람들은 많이 대해 봤어요?
그리고 그 회사 들어가서야 알았다. 그곳은 모두가 같이 야근하는 분위기란 걸. 까칠한 사람들이 모여 이룬 회사라는 걸. 이미 나를 채용한 사람이 면접 때 질문을 통해 힌트를 다 줬었다는 걸.
질문은 질문하는 사람을 가장 잘 드러낸다
질문은 질문자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를 준다. 어떤 질문을 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무엇에 관심있는지를 가장 잘 알 수 있듯이, 기업이나 채용자의 질문도 마찬가지로 그 기업에서 무엇을 중요시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직장을 때려치고 유럽으로 갈 때,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를 한사코 만류하며 말했었다. 다시 돌아와서는 재취업하기 힘들 거라고. 한국은 경력이 단절된 사람을 안 좋게 본다고. 특히 삼십 먹은 여자는 언제든 또 때려치고 떠날 것이므로 공백을 만들면 불리하다고. 게다가 난 이미 한 번 이직했던 전력까지 있었으니.
4개월 동안 여행하면서 세상 넓게 실컷 봤겠네요~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유럽에서 돌아온 후, 다른 면접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를 채용했던 모 회사 상무의 면접 질문은 이랬다. 전 회사는 좋은 회사인데 왜 박차고 나갔냐는, 이 회사도 또 금방 때려칠지 우리가 널 어떻게 믿냐는 다른 면접관의 질문에 심지어 내 맘을 읽은 듯이 내 대신 대답을 해주시면서.
자신 있었겠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을테지.
그리고 그렇게 그녀의 팀에 채용되어 그 상무가 내게 맡긴 일은 꽤 잘 맞았었다. 분석하고 분류하기 재밌어하고 누가 안시켜도 혼자 일 잘하는 내게 딱 맞았다. 어떤 다른 사람들은 나를 '너무 개인적'이라 부정적으로 볼 때, 그녀는 내게 'she's so independent, self motivated' 라며 높은 고과를 부여했다.
결국 면접이란, '일자리' 라는 주제로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야기하는 자리다.
면접이란, 주제가 '일자리' 일 뿐, 다른 만남들과 그닥 다르지 않다. 서로 만나서 원하는 걸 이야기하고 살아온 이야기를 묻고 대답하는 자리인만큼 지원자가 비굴해질 필요는 없다. 이상한 질문을 받으면 이상한 곳이라 생각하면 된다. 떨어졌다면,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그들이 현재 필요로 하는 것이 내가 현재 발현시키고 있는 자원들과 다른 것이라 그럴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항상 좋은 것만을 원하지는 않는다.)
채용자들도 지원자들을 면접하고 고른다지만, 지원자들도 채용자들을 '면접' 하는 그런 시간이 되길. '지금의 나'를 당당히 있는 그대로 드러내 어필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자신감이다. 기업들과 채용자들이 그렇게 원한다는 그 자신감은 이미 내게 있는 걸 활용하는 그 능력이다.
자기소개서는 글로 나를 요약해 표현해보는 좋은 연습이 되며, 면접은 내가 불리한 상황에서도 사람들과 진심을 나누며 나를 드러내는 방법을 연습하는 좋은 자리가 될 수 있다. 돈 주고도 못하는 실전 경험으로 생각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떨지 않고 나를 드러내는 연습을 맘껏 해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이 떨어져볼수록, 면접을 많이 해볼수록 이 때 쌓인 내공은 후에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자신감은 이미 내게 있는 걸 활용하는 그 능력이다. 누구 맘에 들기 위해 노력하지 말고, 단지 나를 표현하는데 집중하자.
그들이 나를 선택했다면 그걸로 좋은 일이고, 선택하지 않았다면 맞지 않는 것이다. 좋은 실전 경험 한 번 더 했다 생각하자.
+물론 요즘엔 일자리가 전보다 많이 줄어서 걱정이라지만.... 누군가의 면접 전에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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