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사회, 기준은 어디 있는가 – 가짜뉴스 시대의 민주주의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다.
2018년 기준, 15세 이상 성인의 약 98.8%가 글을 읽고 쓸 수 있다.
이는 세계 평균(86.3%)을 훨씬 웃도는 수치이며,
OECD 최상위권에 속한다.
7년 전 수치이니, 지금은 더 높아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현대 교육의 성과만은 아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말로 싸우고 글로 저항해 온 민족이었다.
1443년, 세종은 백성을 위한 문자, 훈민정음을 창제했고
배우기 쉬워 대중친화적인 그 문자는 빠르게 퍼져
입이 막히면 손으로 말하는 상소의 시대를 열었다.
조선은 민란과 상소의 나라였다.
백성은 글로 진정서를 쓰고,
유생은 임금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심지어 신분제가 공고했던 시절에도
왕은 백성의 글 앞에 골머리를 앓았다.
하지만 글로도 통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몸으로 싸웠다.
특히 19세기,
임술민란(1862) 단 한 해 동안 전국 70여 군현에서
700건이 넘는 민란과 진정이 동시에 일어났다.
홍경래의 난, 동학농민운동처럼
지역을 넘어 전국을 흔든 저항도 적지 않았다.
그 민란들은 단순한 폭동이 아니었다.
세금과 수탈, 부패에 맞선
삶의 절규이자, 말로는 닿지 않던 외침이었다.
글은 종이 위의 저항이었고,
민란은 몸으로 쓴 문장이었다.
그 둘 모두,
이 땅의 분노와 용기를 기록한 역사였다.
지금 우리는 계엄령조차 생중계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말과 정보가 넘친다.
유튜브, 실시간 댓글, 커뮤니티, 뉴스 속보.
누구나 마이크를 들 수 있고,
누구나 편집자가 될 수 있는 시대.
말할 수 있는 권리는 넓어졌지만,
무엇을 기준 삼아 말할 것인지는 모호해졌다.
기술은 민주주의를 앞당겼지만,
기준 없는 말의 홍수는 민주주의를 혼탁하게 만든다.
감정은 빠르게 퍼지고,
자극적인 정보가 진실보다 멀리 간다.
"그냥 내 생각이야."
"느낌이 그래."
"카톡에서 봤어."
"누가 제보했다던데."
책임 없는 말들이
사람을 해치고, 사회를 뒤흔든다.
우리는 지금 ‘말 많은 사회’에 살고 있지만,
그 말들이 어디를 향하는지,
무엇을 기반으로 하는지
스스로 묻지 않는다.
사실 위에 서지 않은 말은,
공존이 아니라 혼란을 만든다.
민주주의는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말의 기준을 갖는 체제다.
모두가 제멋대로 말할 수 있는 시대일수록,
우리에겐 정견(正見),
바르게 보는 힘이 더 절실해진다.
말은 감정에서 출발하지만,
방향은 사실이 잡아준다.
우리가 지금 되찾아야 할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정확한 사실에 기반한 세계가 아닐까.
책임 없는 ‘카더라’가 난무하고,
사실을 전달해야 할 언론들마저
각자의 ‘신념과 가치’를 앞세우는 지금.
우리는 상소의 나라에서
계엄 생중계의 나라로 건너왔다.
말의 방식은 바뀌었지만,
말의 힘은 여전히 우리 안에 있다.
다음 발걸음을 내딛기 전에,
우리는 중요한 질문 하나를 다시 던져야 한다.
“사실을 전달하는 힘,
우리는 지금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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