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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Nov 24. 2023

그 잘생겼던 스페인 청년

 - 스페인, 산티아고 길  여행기 

유럽에 홀로 여행하는 4개월 동안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혼자인 여자를 유혹(?) 하려 접근하는 이들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그 천진난만했던(?) 태도가 그들로 하여금 나쁜 맘을 먹지 못하게 했던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나는 그들을 마구잡이로 거부하지 않고 같이 얘기했고, 같이 놀았고, 어떤 성적인 싸인을 보내오면 그때는 "네가 매력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난 한국에 남자친구가 있다"고 미안하다 부드럽게 거절했었다. (그땐 남친이 없었지만 지금의 신랑이 맘속에 있었으므로) 그래도 네 남자친구가 여기 없지 않냐고 하면, 내 마음속에 있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안될 것 같다 미안하다 거절했었다. (그러면 신기하게 포기하더라). 


유럽에 머문지 4개월쯤 되던 어느날, 산티아고 순례중의 일이었다. 산티아고에서는 대부분이 순례자들이라 그런지 다른 곳과 달리 그렇게 찝쩍(?) 대는 사람들이 없었다. 하루 30킬로씩 걸어서 다리를 절뚝 절뚝 절며 만나면 서로를 보고 "너도 순례자야?" 라며 얼굴에 웃음을 띄던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는 그날도 30킬로을 배낭을 지고 걸어와 한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다. 그곳은 주인이 상주하지 않아 11시에 문을 닫는다고 씌여 있었다. 한 레스토랑에서 저녁과 와인을 먹고 웃으며 사람들과 떠들다보니 11시 반쯤. 급하게 왔지만 알베르게 문은 닫겼고 아무리 문을 두들겨도 주인장은 퇴근한 상태. 


문 두드리다 난 포기하고 근처 펍(?) 이었나? 한 가게에 그냥 들어가 앉았다. 맥주 한 캔을 시켜놓고 오늘밤 어쩌지 . 여기도 문 닫으면 그냥 길에서 자야겠네 라며 포기한 채 앉아있었다. 


한 멋진 스페인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올라, 세뇨리따 뭐 이런 내가 아는 유일한 스페인어가 들리는 걸로 봐서 그는 내가 모르는 스페인어를 쓰고 있었다. 젊고 잘생긴 건장한 청년이 달콤한 표정으로 뭐라 얘기하는데, 난 스페인어를 모르겠지만, 자꾸 우리 가서 같이 자자는 것이었다. 몸짓 발짓으로 같이 가서 자자고 하길래, 난 미안하지만 싫다고 계속 부드럽게 거절했다. 그 남자는 너무너무 아쉬워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나한테 계속 얘기했다. 


그 펍 주인도, 그 사람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흥미로운 눈빛으로 우리 둘을 쳐다보았다. 간간히 그 남자는 구경하는 사람들과 무슨 얘기도 하면서 그렇게 나와 그 남자를 둘러싸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참다 못한 그 펍 주인은 내게 "이 남자가 같이 가서 자자는데~ "라며 천천히 바디랭귀지로 내게 또 설명했지만 난 싫었다. 그래서 고개를 흔들어보였다. 


그렇게 한 30분쯤 그 남자가 찝쩍댔을까. 참 포기도 안한다 .. 끈질기네 ... 나 갈데 없는 거 아는 거 아니야 라며 불안하면서도 짜증이 슬슬 날 즈음이었다. 무시하고 바를 향해 앉은 채 , 계속 맥주를 홀짝 거리는데 영어가 들려왔다. 조금 전 새로 들어온 듯한 그 남자는 내게 영어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아 오늘 단체로들 왜 이래... 라며 짜증나서 "네, 무슨 일이죠?" 라고 물으니, 


아, 이 청년이 아가씨 데려가고 싶다는데요, 알베르게 문닫겨서 아가씨가 아까 문 두드리는 걸 듣고 어디갔나 찾으러 나왔대요. 호텔 문 열어두고 왔다는군요. 같은 방 묵는 사람이라고 같이 가자는데요. 


하아.................

어떻게 해... 이 망신을..... ㅠ  



그렇게 난 조용히 그 잘생기고 멋진 청년을 따라 알베르게로 무사히 들어가 내 침대에서 멋쩍지만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아마 코도 곤 것 같아;;;;)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보니 그 청년 일행은 아침 새벽부터 길을 떠나고 없었다. 


갑자기 그 날, 그 청년이 떠오르네..... 


#그렇게민폐끼치고다녔다

#나일본인이라고할걸

#좀된청년님아고맙다

#나라면그렇게차분하게오랫동안기다렸을까

#나도누군가에게도움이필요해보일땐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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