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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Nov 24. 2023

모르면 전문가한테 물어보면 되지.

 -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마. 


아니, 나한테 자꾸 묻지 말고 전문가를 찾아가라고. 매점가서 음료수 좀 사서. 


내 나이 만 23세. 파트 내 가장 어린 신입직원. 별다른 사회생활 경험 없이 대학교를 스트레이트로 졸업하고 입사한 첫 직장에서 나는 그 팀의 파트장, 나이가 40이 막 넘으신 가장 연장자를 내 사수로 만났다. 


외국계 반도체 계열 회사로 조금 독특한 업무를 하는 팀이었는데, 해외 기업들을 상대하는 일이라 일의 연속성과 내용파악이 무척 중요했다. 일명 '히스토리'다. 그래서 팀내 사람들은 보통 사수가 신입직원을 옆에 끼고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가며 감시 하에 일을 서서히 배우게 했다. 고객에게 실수하지 않도록. 


그런데 내가 만난 사수는 내게 경력있는 사람들도 하기 여려운 여러개의 짜잘짜잘한 기업들을 맡겨놓고 제대로 가르쳐주질 않았다. 내가 알려달라고 찾아가면 싱글싱글 사람 좋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할 뿐.


아 나는 잘 모르니까, 전문가 찾아가세요~ 저기 음료수 몇 개 사들고 엔지니어 팀하고 구매팀하고 쭉 함 돌으라고


한껏 열 받았다. 나는 까칠해졌다.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뛰어다니고, 메시지도 생뚱맞은데 날려서 여기저기 혼나고, 보다못한 옆 선배들이 조금씩 코칭해주는 상황에서 무슨 갓난아기 젖 동냥하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지 짜증이 이빠이 났다. 


아니, 그것도 몰라요? 
사수한테 뭐 배웠어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너무 자존심이 상했고, 그래도 영어좀 한다고 들어간 일명 해외업무관련 팀인데 그들이 쓰는 단어는 내가 아는 그 뜻이 아닌 반도체 전문 용어로 다른 뜻으로 쓰이는 지라 알아들을 수도 없고. 내 사수에게 화풀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좀 버릇없이 굴었다. 아버지 뻘인 그 분께 가끔 짜증도 내고 말걸면 차갑게 틱틱댔다.

어느 날은 이런 일도 있었다. 전임자와 전에 다 작업한 거라고 좀 물어보라고 상대하고 있던 작은 기업한테 핀잔을 듣고는 내 사수인 파트장에게 메일로 물어봤다. 대답은 "이건 이제 xx 담당 기업이에요. 자꾸 가지고 오지 말고 이제 알아서 하세요." 라는 메시지가 왔다. 한껏 열받은 나는 그 메일에다 대고 혼자 컴퓨터 자판이 부서지듯 팍팍 화풀이를 했다. 


지가 파트장이고 나이 먹었음 다야?? 선임이면 선임답게, 사수면 사수답게 가르칠 건 가르쳐야될 거 아냐. 짜증나게 히스토리는 지가 다 가지고 있으면서 !!!!!! 


그렇게 분노로 타닥대다가 모르고 엔터를 눌러 메일을 전송해버렸다................................................. 


그리고 윗층에서 해외에서 방금 비행기 타고 온 고객을 만나고 있던 내 사수가 뛰어내려왔다. 그리고는 화를 내긴 커녕 내 파티션 앞에서 또 싱글싱글 사람 좋은 표정으로 다른 사람들이 물어봐주길 바라면서 이야기하셨다. 


내가 당신 마음을 이제 다 알았다고. 아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이제 내가 다 알았다고 ~ 이제 다 ~~ 


나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들은 척도 안하고 일하는 척 했고, 내 주변 선배들과 직원들도 엄청 바쁜 시간이라 관심을 두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난 그렇게 그 파트장님 밑에서 퇴사할 때까지 만 4년을 일했다. 


팀 대표 직원을 추천해 달라고 할 때마다 나를 추천해서 회사 달력 모델도 시키고, 파트 대표 인터뷰 글도 썼다. 회사 it프로그램 업데이트 중간 조율자도 그 어린 나를 시켰다. 그때마다 아놔 나 지금 너무 바쁜데 지금 이런 거 할시간 어딨어??? 라고 욕하면서 원망했다. 그러고는 술자리마다 사람 좋은 얼굴로 싱글거리며 술잔을 들고 쫓아와서는, 


아, 내가 신입사원 땜에 진짜 스트레스 받기는 처음 인거야.. 엄~ 청 스트레스를 주는 거야~ 

라며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나 제외한 주변 사람들을 웃겼다. 비교적 싸늘한 태도의 나를 두고. 


그리고 희한하게 그 4년 동안, 파트장으로서 파트원 평가할 때마다 고과 A 를 주셨다. 처음에는 엿먹으라는 건가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나를 귀여워하고 예뻐했던 거였구나.. 깨닫게 되었다. 어리디 어린 까칠하고 틱틱대는 어린 직원한테 그런 모욕을(?) 을 당하고도 계속 농담하고 챙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그 분은 내게 다른 지저분한 사심도 없었다. (나이많은 상사의 댓가를 바라고 베푸는 부적절한 친절... 같은 거 말이다.) 그냥 깨끗했다. 나를 자기 방식대로 굴려서 나가서 다른 사람에게 일을 배우게 하고, 대신 일을 잘 하고 있나 감시는 했다. 그리고 일하는 거에 비해 고생값을 얹어 높은 고과를 부여했다.


그가 나를 그런 방식으로 다룬 건, 일하는 컨텐츠를 주입하는 것보다도 '원하는 걸 얻어내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 걸 나중에 알게되었다. 물론 그 동전의 뒷면은 '귀찮타 제발 좀 알아서 해라. 미안하다 옛다 고과A' 였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보기에 그는 내 옆에서 우당탕탕 여기저기 부딪히면서 일하는 과정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중대한 실수 때는 꼭 와서 코칭했었다. 


그건 다 알지 않아도 돼요~ 전문가한테 찾아가서 물어보면 되지. 음료수 좀 사들고 가서 먼저 얼굴 안면 좀 익히라고.


인사팀 출신이었던 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이것이었다. 모르는 걸 아는 사람에게 물을 줄 아는 능력. 그가 내게 가르치고 싶었던 건, "지식 그 자체보다, 지식을 얻는 방식이었다".


도움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똑똑해야 받을 수 있고, 요청할 수 있다. 모든 걸 내가 다 알아야하고, 최대한 남의 도움 받지 않고 척척 해내는 척척박사가 독립적이고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내 생각은 점차 바뀌었다. 머리에 든 지식의 양보다도 의존해서 사는 게 더 현명할 때가 많다고. 진짜 독립적인 사람은 남의 도움받지 않고 혼자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못하는 건 정확히 알고 잘하는 사람에게 (그가 누구든) 도움의 손길을 요청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한계를 그토록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뭔가를 얻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걸 얻는 방식이 어떠한가이다. 


#사수와부사수

#신입사원의추억

#진정한독립

#혼자다하려고하지마

#모르는건물어보면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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