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째 아이 친구인 엄마이자, 만나면 그냥 조금 마음이 편한 나랑 진동 주파수가 맞는 사람이 있다. 꽤 오랜 시간 함께 했고, 그 당시 엄마들 모임은 서로 만나면 잘난 척 하기 보다는 서로 남들한테 못하는 이야기들을 하는 조금 요상하게 순수한 사람 다섯으로 이뤄져 있다. 아파트 같은 라인에 다섯 남자 아이가 살다 보니 어떻게 친해진 건데, 그 인연이 꽤 오래도록, 내가 두 번의 이사로 멀어졌음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 중 한 명이 명리학을 공부한다. 나는 사주 팔자에는 관심이 없는 실존주의자이지만, 언젠가부터 막연하게 그런 느낌은 받아왔다.
내가 사는 삶의 무대와 조건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다.
혹시, 내가 이 생에서 이뤄야 할 과업 같은 게 있나?
왜냐하면, 내 삶은 정말로 무언가의 간섭, 누군가의 보살핌과 호의를 가장한 간섭으로부터 치열하게 벗어나 나의 공간과 나의 삶, '누군가의 간섭'에서 벗어난 내 삶을 찾는 투쟁에 가까운 '독립'을 추구하는 삶이라는 걸 막연하게 느껴왔던 터. 나도 다른 엄마들과 함께 나와 내 가족들의 사주를 보기 위해 생년월일시 까지 넘겼다.
그 친구 엄마가 내게 나의 사주를 설명해주러 왔다. 수다 떠느라고 내 사주 이야기는 잘 못했지만, 너무 맞아떨어져서 이거 진짜 맞는 삶의 조건들인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편관' 이 강한 '신강'한 사주라고 한다.
편관이 강하다는 것은, 나를 옭아매는 것들이 평생 너무 많아 내 삶을 내 뜻대로 살기가 힘들다는 것인데, 만약 신약하다면 조현병이 많이 온다고 한다. 편관-신약 한 사주가 조현병 앓는 사람들에게 많다고.
갑자기 조현병 이야기를 들으니, 예전 정신분석 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 정신분석가는 내 말을 몇개월째 듣고 있다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이상하네요. 환경으로만 보면 oo씨는 조현병이 왔어도 충분하고 이미 오고도 남을 상황인데, 어찌 이렇게 멀쩡하죠? 궁금하네요..
내 경우는 조현병이 오기 전에 내가 그 환경을 버리겠다고 뿌리치고 뛰쳐나온 것이었다. 남들은 감히 버리기 힘든 '엄마와 아빠', 부모님을. 그것도 다른 자식은 죽고 없고, 어린 외동딸 하나 붙잡고 있는 그들을 내가 버리고 독립하겠다고 뛰쳐나온 것조차 사주가 신강해서라고 한다. 흠..
평생 돈을 쫒지 않고, 정신적인 만족을 추구하며, '돈' 이야기 자체를 너무너무 싫어한다는 것까지 사주에 나와있다 했다. 돈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을 경멸할 정도로 싫어한다고. 그래서 화려한 것을 추구하고, 남에게 보이는 것을 좋아하고, 돈을 좋아하고, 무엇보다 자신을 '악세서리' 로 여기며 자기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올 것을 강요하는 사람들과는 절대 어울릴 수 없는, 그 안에서 숨막힘을 느끼며 피폐해져가는 사주라 했다.
신강하고 능력이 있으며 정신적인 것을 추구해서, 곁에 있는 사람에겐 그저 한 가지 원할 거라고.
내가 알아서 다 할께.
내 옆에서 응원하고 지지만 좀 해줄래?
좀 놀라운데?? 내 마음과 너무 비슷해서,.?
그래서 어떤 사람에 따라서는 , 복이 없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고.
남에게 의지하려 하지 않고 뭐든 혼자 다 하려 하고, 뭔가를 받으면 불편해하고 꼭 갚으려 드니.
돈을 벌자고 맘을 먹으면 얼마든 벌 수 있을 것이나, 그걸 쫓지 않을 거라 했다.
돈을 쫓아야 한다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굉장히 따르고 피폐해지는 사주이니,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돈을 위해 일할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도록 해야 한다고.
그리고, 순수해서 처음에는 있는 그대로 믿다가, 충분한 증거가 더이상 반박할 수 없을 정도까지 쌓이면
그 때, 돌아선다 했다. 그 넘치는 증거들로 어쩔 줄 몰라하면서 마지막에 아, 그랬었구나.. 라고 느끼며 돌아선다고.
맞다. 구구절절.
그게 사주에 다 나와있다고?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리곤 말했다. 내년부터 바빠질 거고, 돈을 벌 것 같은데.. 내게 돈을 번다는 이야기는 마음이 불편해진다는 이야기라고. 재가 쌓이면 쌓일 수록, 내 편관을 강하게 한다고.
뭔 말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만, 내가 난생 처음 내 독립을 위해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사실이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꼭!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돈을 벌으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이 피폐해진다고. 재를 쫓는 사람들은 뭘 해도 돈만 벌리면 즐겁고 나아지지만, 내 경우 그렇지 않다 했다.
그 말을 듣고, 떠올랐다. 내가 형님의 그 말에 그토록 서운하고 실망했던 이유를. 내가 요가와 심리학을 좋아하니, 자격증도 따고 그쪽으로 일을 해볼까 생각중이라 하니 형님께서 말씀하셨다.
oo야, 돈 되는 거 해라. 공인 중개사 어떠니?
아니면 공부방 해라, 애들 코묻은 돈 무섭다.
일단, 뭐가 되었든 일단 돈 되는 거 해라. 왜 안하니? 공부도 잘했으면서?
난... 공인중개사 별로고, 애들 공부방도 사실 별로다. 내 애들 보는 것도 너무 힘들다. 돈 되는 거 보다는 내 영혼을 성장시키는 것, 그러면서도 뭔가 다른 사람을 돕고 그 댓가로 받는 돈을 원한다. 내가 관심두는 요가나 심리학 등을 응원하기보다는 한심하게 여기며, 제발 '돈 되는 거 하라' 는 말이 그리 서운하고 실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미안하지만,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너무 싫지만 '돈 되는 거' 하면서 , 그리 살고 싶지 않다.
어쩔 수 없이 당신들은 그리 살고 있다하면 난 할 말이 없지만,
난 그리 벌어도 그 돈의 가치를 따지기 전에 내 정신이 먼저 무너질 것 같다.
내가 아직 순진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세상물정 몰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다.
이 세상의 화려하고 반짝이는 것들이, 그들의 영혼이 담기지 않은 채 남에게 그저 잘 보이고 싶은 욕망에 불과하다면, 그저 화려하고 대단한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면 아무 쓸모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비슷하게 초라하고, 아프고, 외로운 존재들이고
그 깊이가 깊을 수록, 더욱 더 그러할수록 화려하고 반짝이는 것에 이끌린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뭐 어쨌든, 삶의 무대와 조건들은 명리학에 의하면 사주팔자로 정의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다.
선택의 문제가.
삶의 무대가 아무리 사주팔자를 통해 정해져 있다 한들, 그것은 기회와 환경이라는 무대일 뿐, 우리는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고 난 그리 믿고 싶다.
#사주팔자
#명리학
#선택
#그와중에도선택할수있다고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