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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신나게 놀 준비가 되었어?

내 안에서 다시 깨어난 개구쟁이

by 파랑새의숲
창조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시 아이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독일 철학자)


나는 내 삶에서 가장 결핍된 두 가지가 무엇이었는지 알았다.
바로 호기심과 모험심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삶에서 생기를 잃은 채 오래 살아왔다.
매일의 과제와 역할은 넘쳐났지만,
그 속에서 웃음과 설렘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 생기의 원천은 어디였을까.
아마도 내 어린 시절,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작은 일에도 뛰어들며 놀던 그때가 아니었을까.


영혼에는 세 가지 변신이 있다.
먼저 낙타가 되고, 그 낙타가 사자가 되며,
마침내 사자는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온갖 역할의 짐과 과제를 등에 지고,
사막을 묵묵히 지나가는 낙타처럼
탈진한 채로 이 여행에 도착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호의와 다정한 손길이
조금씩 나를 다시 빚어내고 있었다.

세상이라는 신이, 존재를 조각해내듯이

나는 그간 내가 덮어쓰고 있던 거죽들을 벗겨내고

다시 내 안에 있는 모습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상에 대한 신뢰가 서서히 회복되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세상은, 사실 정말 신나는 놀이터인지도 몰라.


블필요한 의심에서 벗어나고,

나의 감각을 온전히 신뢰하며
지금 무언가를 해야만 인정받는다는 압박에서도 자유로워지자

삶은 그저 즐겁게 뛰어놀고,
마음껏 웃어도 되는 어떤 놀이터처럼 느껴졌다.

해야 할 것도, 보고 싶은 것도, 신기한 것도 끝없이 많은 세상.

마치 아이에서 청소년으로 막 자라나며
호기심과 모험심이 온몸에서 피어오르던,

내가 오래전에 잃어버린 그 과거의 나를
비로소 다시 만난 듯했다.


올림포스로 향하는 길


마치 내 가슴 속 불길을 확인이라도 하고 싶었던 듯,
나는 몇천 년 동안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는
터키 올림포스 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전해주었다는 그 신화속의 산, 올림포스.


그곳엔 여전히 불이 살아 숨 쉰다고 했다.

한밤의 산길.
구불구불 이어진 도로 위를 기사 아저씨와 나, 단둘이 달렸다.
웅장한 산세가 창밖으로 스쳐가는데, 문득 겁이 났다.


“여기 어딘가에 나를 내려 묻어버린다면, 아무도 모르겠지…”


별별 상상이 스쳤지만, 나는 이제껏처럼 믿기로 했다.
다행히 내 의심이 무색하게

아저씨는 말없이 펜션촌에 나를 조용히 내려주고 떠났다.
별일 없이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펜션 주인 아포는 다소 까칠하게 물었다.


지금 한국은 북한이랑 전쟁 위기라던데, 넌 한가롭게 여행이나 다니네?


그 무렵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천안함 사건 뉴스를 본 모양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괜히 주눅 들고, 불필요한 변명부터 늘어놓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달랐다.
여행길에서 수없이 주고받은 호의 덕분에,
이제는 까칠한 태도 속에도

결국 사람의 선의가 숨어 있음을 믿을 수 있게 되었는지

나는 웃으며 가볍게 맞받아쳤다.


넌 투르크 족인가 봐? 전쟁에 민감한거 보니..
아직도 우리나라처럼 너희 나라도 동쪽에서 싸움이 계속된다며? 터키족과 투르크족의 갈등과 전쟁에 대해 여행하다 들었어”


순간, 그의 얼굴에 놀라움과 함께 묘한 반가움이 스쳤다.

그는 자신의 역사를 이해받은 데 대한 보답이었는지

금세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나와 친근한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짧은 대화였지만,나는 배웠다.
사람의 까칠한 겉모습 뒤에도,
사실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호의가 숨어 있다는 것을.
그 믿음을 놓지 않을 때,
낯선 세계는 한결 더 따뜻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꺼지지 않는 불, 내 마음 속 키메라


올림포스 산을 오르자, 수천 년 동안 꺼지지 않은 불꽃이
바위 틈 여기저기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가스 냄새가 진동하는 산 정상,
검은 바위 사이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불길.

나는 문득 인간을 사랑했던 프로메테우스를 떠올렸다.

신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건네주고,
그 대가로 매일 간을 파먹히는 형벌을 받았던 존재.


“그는 왜 그렇게까지 사람을 사랑했을까?”


그 질문은 내 마음에도 작은 불씨를 남겼다.
누군가를 위해 불을 건네는 행위,
그것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따뜻한 용기일지도 모른다.


키메라의 불 앞에서 나는 깨달았다.
내 안에도 꺼지지 않는 무언가가 살아 있다는 것을.

호기심일지도,
모험심일지도,
사람에 대한 호의일지도,
아니면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일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그것은 내 생명을 지탱하는 불씨,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나만의 불이었다.

그것이 내 안에도 분명 있었다.


존재의 생기, 개구쟁이


올림포스에서 패러글라이딩의 도시 페티예로 가는 길,
나는 이제까지와 다른 경험들을 체험해보길 원했다.

그래서 육로 대신 택한 길, 요트 크루즈.


3박 4일 동안 지중해 위에 떠서,
마음에 들면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하고,
섬에 정박하면 산책을 하고,
밤에는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잠드는 여행.


버스비와 숙박비를 합친 정도의 가성비 있는 값으로,
내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유와 해방의 항해였다.


작아 보이던 배 안은 의외로 넓었고,
거실은 아늑했으며, 내 방은 하얀 시트가 깔린 깔끔한 공간이었다.

에메랄드빛에서 코발트빛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지중해는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설레게 했다.


함께한 동행들은 대부분 이방인, 외국인들이었다.
수영을 잘하는 캐리라는 여성과 남편은

퐁당퐁당 연이어 신나게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영국 더블린에서 온 커플도 책을 읽다 과감하게

바닷속으로 점프해 들어갔다.
나는 처음엔 배 위에 걸터앉아 머뭇거렸다.


그러다 결국, 그들의 웃음소리에 이끌렸다.


괜찮아! 너도 뛰어들어봐! 지중해가 얼마나 시원하다고


그들의 재촉에 , 나도 과감히 뛰어들었다.

점프! 세상 속으로, 바다 속으로.



난생처음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에서 수영을 했다.
처음엔 두려움에 몸이 굳었지만,
곧 물살에 몸을 맡기며 천천히 헤엄쳤다.

그제야 비로소 자유가 밀려왔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안 돼, 위험해”라는 당위 속에
스스로를 가두며 살아왔다는 것을.

깊은 바다에 뛰어든 순간,
나는 내 안의 감옥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있었다.


어린 시절과 다시 연결되는 순간


꺼지지 않는 불씨가 있었다면,
이제는 그것을 세상 속으로 던져 넣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 순간 나는, 아이처럼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나와 다시 만나는 듯했다.

파도 위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떠 있을 때,
나는 개구쟁이 같던 옛 나를 다시 떠올렸다.

천방지축이던 아이가,
언젠가부터는 착한 딸, 성실한 커리어우먼이라는

무거운 가면을 쓰고 살아왔다.
낙타처럼 짐을 짊어진 채 사막을 건너려 애쓰던 지난 세월.

그 모든 것에서 멀어져,

나는 드디어 아이의 맑은 웃음을 되찾고 있었다.


세상은, 사실 신나는 놀이터였다.


그제야 알았다.
삶의 본질은 애써 짊어지고 가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뛰어드는 순간에 있다는 것을.


이제, 여행은 더 이상 ‘도피’가 아니었다.
그건 내 안에 있던 잃어버린 아이와 다시 만나는 길이었고,
세상을 믿고, 나를 믿는 연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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