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짜 감정에 관하여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내 내면에서 어느 날 들었던 심리학 강좌가 존 메이슨, 더 록의 노장 베테랑의 목소리로 소환되었다. 그가 조곤 조곤 내 머리속에서 심리학 중 중서중심치료 이론과 '가짜 감정' 에 대해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다.
정서중심치료 Emotion Focused Therapy 의 창시자 Greenburg 는 우리의 감정을 일차적 정서와 이차적 정서, 그리고 도구적 정서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정서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감정이라고 다 같은 감정은 아니고, 잘 살펴보아야 할 나쁜 감정 Bad Feelings 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먼저 일차적 정서란, 우리가 어떤 자극에 대해 응당 그렇게 느껴야 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리면 슬프고, 내 물건을 빼앗기면 화가 나고, 누군가 나를 위협하면 두렵고,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차갑게 대하면 슬픕니다. 이러한 자연스런 감정은 본래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는 적응적 일차적 정서 라고 분류합니다. 이는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는 나의 진짜 감정입니다.
부적응적 일차적 정서도 있습니다. 자신을 보호해야 할 부모나 보호자가 학대나 방임을 한 경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작은 일에도 크게 혼나거나,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을 때 부모가 모욕이나 창피를 주거나 그렇게 느끼지 말아야 한다고 계속 다그침을 당한 경우에는 추후에도 유사하거나 다른 상황에서도 크게 혼날까 움츠러들어 자기 표현을 잘 하지 못한다거나 감정표현에 서툴러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잘못 도식화된 패턴에 의해 느끼는 두려움과 수치심을 부적응적 일차적 감정이라 하고, 나쁜 감정 Bad feelings 라고 지칭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차적 정서 는 이러한 일차적 정서를 숨기려는 목적에서 무의식적으로 발달시킨 가짜 감정입니다. 예를 들어, 실제로는 내가 두려웠는데 '두려워해서는 안돼, 나약한 거야' 라는 고정관념을 지닌 사람들은 두렵다고 말하기 대신에 화를 내거나 격한 분노를 표현하기 쉽습니다. 운전중에 갑자기 누군가 끼어들어 크게 놀랐을 때 격하게 화를 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내가 다칠까봐 심히 염려스럽고 두려웠던 일차적 감정이 숨어있고 그 두려움을 나약하다는 이유로 표현할 수 없어 '화' 라는 감정으로 대체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헤어지자는 연인에게 심하게 격노하는 경우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은 혼자 남겨지는 것이 너무 두렵고, 상대가 나를 떠난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는 진짜 감정을 분노로 덮는 것이죠. 이처럼 실제로는 너무나 두려운데 화를 심하게 낸다거나, 화가 났는데 두려움으로 대체한다거나, 슬픈데 화로 대체한다거나, 화가 났는데 무기력해진다거나 하는 예들로 진짜 감정을 가짜 감정으로 대체하는 예는 수없이 많습니다. 이러한 이차적 정서가 위험한 이유는 부적응적이거나 파괴적인 행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소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도구적 정서란,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용되거나,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학습되어 습관적으로 작용하는 정서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동정을 사고자 눈물을 흘리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는 경우, 다른 사람들을 내 마음대로 하기 위해 불같이 화를 내는 경우가 이런 도구적 정서에 해당합니다. 이런 경우도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감정이 일어나는 것일 수 있으므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진짜가 아닌 타인을 움직이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도구적인 가짜 감정임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가짜 감정들은 어떻게 알아챌 수 있을까요?
그린버그에 따르면 이러한 나쁜 감정들에는 세가지 특징 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반응이 지나치다는 것입니다. 사소한 일인데 심하게 화를 낸다던지, 그리 슬픈일이 아닌데 펑펑 운다던지 하는 식으로 반응이 지나칠 때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두번째, 반복됩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항상 어떤 반응이 반복된다면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세번째, 오래 지속됩니다. 자극이 사라졌는데도 감정 반응이 계속 지속되는 경우로, 한 번 화가 나면 하루종일 그 화가 지속된다던지, 슬픈 일은 다 지나갔는데 계속 눈물이 나고 슬픈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 경우 등입니다.
이차 정서, 가짜감정, 도구적 감정 모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정신적인 성장도 일으킬 수 없습니다. 타인과의 진정한 교류도 불가능하게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일차적 정서입니다.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슬픔' 이라는 일차적 정서가, '화' 라는 이차적 정서에 의해 가려졌을 때의 심리적 상황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영화가 <인사이드 아웃> 입니다. 여기서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긍정적인 '기쁨' 이나 힘이 센 '화' 가 아니라, 본래 상황에 자연스러운 일차정서인 '슬픔' 이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본래 사건에 자연스럽게 일어났던 그 일차 정서를 찾아내어 충분히 느끼는 일입니다. 물론, 방해가 어마어마합니다. 그래도 조금 수월한 방법 중 하나는, 내가 현재 몇 살이건 지금 내 나이와 체면을 모두 내려놓고, 지금 내가 세 살 어린아이라고 가정해 보는 겁니다. 우리는 그 나이에 내 감정에 가장 솔직했으니까요.
심리학 시간에 들었던 강의 내용이 내 머릿속에서 다시 소환되며 내가 느낀 분노가 나의 진짜 '슬픔'을 가리기 위한 가짜감정임을 다시 한 번 알렸다. 가짜 감정을 알아차렸다면, 그리고 그 덮개를 걷어낸 내 진짜 속살의 부드러운 감정, 슬픔과 마주했다면 이제 다음 차례는 '변화' 였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내가 현재 느끼는 내 감정에 '머무르기로' 결정할 때 , 그렇게 도망치지 않고 직시할 때 일어나는 어떤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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