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녀의 이야기 - 남겨진 아이, 그리고 엄마.

by 실루엣


여느 때처럼, 친구가 놀러온 어느 날이었다 . 그 소녀는 발랄한 탓에 친구가 많다. 그 소녀보다 13살이 많아 회사에 다니고 있던 오빠는 회식이 끝난 후, 어디로 간건지 회사 출근도 안하고 일주일째 집에 안오고 있어 빈방이다.


철없는 11살 소녀는 오빠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일주일동안 생각했다. 앗싸, 집에 방이 두개뿐이라 안방, 오빠방으로 주고 그 소녀는 당시 자기방이 없던 터라 오빠가 없는 것에 신이 났다. 오빠가 미처 걷고 가지 못한 잠자리도 유독 아늑해보이고 탐이 나서, 거기에 누웠다가 일어났다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일주일째 하고 있는 중이다. 오빠가 어디 놀러갔길래 일주일째 연락이 안되는지 모르지만 거기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다 커서 안방에 엄마 아빠 사이에 더부살이하자니 너무 불편해서 내 방 갖고 싶은데, 이 방을 내가 쓰게.


집에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누구시냐는 물음에 '경찰' 이라고만 짧게 대답하고 엄청 뭔가를 미안해 하시면서 집 안으로 들어오셨다. 엄청나게 비싸보이는 탱탱한 과일이 든 꽃바구니를 들고 어떤 모르는 아저씨가 찾아와서 친구와 함께 오빠방에서 뒹굴거리던 내가 문을 열어드렸다. 아저씨는 머슥하게 과일바구니를 식탁에 올려놓고 엄마와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한참 얘기하시길래 내 친구와 그 과일바구니 구경을 하며 희희덕대며 놀았다. 그리고 아저씨가 멋적게 안방문을 열고 나가신 후, 엄마가 이부자리에 헤엄을 치며 울부짖었다.



오빠가 죽었대!!! 으아앜 !!
경찰 아저씨가 오빠 죽은 사진을 들고 왔어 이게 뭐야 오빠가 죽었대~~ 아아앜

오빠 나이 24세, 내 나이 11세. 그 날 이후로 남은 가족에게 꿈같은 지옥이 시작되었다. 자식을 잃은 어미는 정신이 오락가락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부짖다 화를 냈다 절망했다 소리쳤다를 반복했다. 학교가는 어린 딸의 머리를 곱게 땋아주다가도 갑자기 너 같은 건 학교 갈 필요가 없다며 손수 땋은 머리를 마구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머리가 헝클어져 학교 가길 포기하고 구석에 앉아있는 딸을 보며 또 속상해서 왜 학교를 안가고 그러고 있냐며 엄마가 미안하다며 껴안고 울부짖었다. 그렇게 집에 남은 두 여자는 지옥에 남겨져 서로를 물어뜯으며 발버둥쳤다.


주위의 온 시선과 보살핌은 아들 잃은 어머니에게 가 있는 듯 했다. 예쁘다 귀엽다 잘하네~ 라는 칭찬이나 고작 듣던 어린 막둥이었던 그 소녀는, 지옥에 들어선 그날부터 갑자기 결이 다른 말들을 들어야 했다. 찾아오는 모든 친척 가족들은 깊은 슬픔에 잠긴 엄마를 위로하고 달래고 집에 돌아가며 그 소녀에게 한 마디씩 했다.


-네가 이제 오빠대신 이 집 가장이나 마찬가지다.

-네가 엄마를 잘 보살펴드려야 한다.

-니가 오빠몫까지 엄마한테 더 잘 해야한다.

-이제 자식은 너 하나뿐이니, 엄마 속 썩이지 말아라

-엄마 말씀 잘 들어라, 엄마 가슴이 지금 찢어질거다

-니가 엄마를 옆에서 잘 이해해 드려라.


모두가 그 소녀를 먼저 간 오빠의 대용품으로 볼 뿐, 하나뿐인 자기편을 잃은 그 소녀의 마음에 대해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 소녀는 자기는 슬퍼해야되는 게 아닌가보다 라고 생각해버리고, 슬픔을 가슴 깊이 묻었다. 대신 감정이 점점 무뎌진 채 , 무덤덤하고 무기력해졌다. 까불까불 하던 그 소녀는 갑자기 말이 없어지고 조용해졌다.


사춘기가 되자 엄마를 견디기가 힘들어졌다. 시도때도 없이 열어제껴지는 방문에, 밤낮으로 울부짖고 화를 내며 소리쳐서 잠을 잘 수가 없는 통에, 난 잘못한 거 같지 않은데 자꾸 너 때문이라며 드러누워서 밤새 힘들게 사과를 해야 하고 싹싹 빌고 달래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슬슬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엄마에게 맞붙기 시작했다.


내 방 어지러운 게 스트레스면 엄마가 내 방문을 열지 말라고! 난 닫아놓잖아! 여긴 내 영역이야, 내 방에서만이라도 좀 쉬자! 여기 내 방, 내 공간에 좀 들어오지 말라고!!!!


엄마만 힘들어? 나도 힘들어! 제발 좀 들들들들 그만 볶으라고!
새벽에 그만 좀 울고! 잠 좀 자자고!!!


이렇게 한 마디라도 대들면 그날 나는 몹쓸년에 망할자식이 되었다. 감히 세상에서 다 키운 큰 아들을 잃은 불쌍한 엄마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천하의 불효자식이 되었다. 엄마는 충격으로 드러누워 며칠을 대성통곡을 했다. 아들 다 키워 저세상 먼저 보내고 남은 딸이 불쌍한 어미를 저리 대한다고 난리를 쳤다. 가슴이 부서져서 살 수가 없겠노라고 통곡했다. 밤새도록 울며 흐느끼는 소리에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니 오빠는 안 그랬는데... 니 오빠는 엄마한테 안그랬는데... 내가 세상을 다 잃었어


그 소녀는 흐느끼는 엄마의 절규를 듣다가, 내일 난 학교 가야되는데.. 라는 생각을 무심하게 한다. 문득 책장 안에 들어있는 비싼 양주를 꺼내 한 잔씩 따라 마셨다. 그러면 독한 술기운에 곯아떨어져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엄마가 소리를 얼마나 질러대든지간에 그나마 잠을 좀 잘 수 있었다. 밤 샌 것보다는 개운하네. 그렇게 소녀는 엄마가 새벽에 난리 칠때마다 책장안의 양주를 따라 마시고 깊은 잠에 들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13살 그 소녀는, 돈도 벌어다주고 엄마가 힘들때는 마음도 위로해주고 아빠랑 싸우면 엄마편을 들며 대신 아빠에게 대들어주던, 엄마의 희망같던 그 오빠의 빈자리는 메꿀 수가 없었다. 그 소녀는 먼저 죽은 유령이 된 오빠와 계속 비교당하는, 오빠가 여동생 낳아달라고 해서 낳았던 쓸모없는 자식이 된 느낌을 받았다. 아침이면 '내가 왜 또 눈을 떴냐. 그냥 죽었으면 좋겠는데 너 때문에 내가 죽지도 못하고' 라며 울부짖는 엄마를 보며 자신을 어떤 짐짝같은 존재로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맞서기를 포기했다. 자신의 영역을 완전히 침범당하며 살았다. 방문은 매일 엄마가 원할 때는 아침이고 저녁이고 새벽이고 활짝 열어젖혀졌다. 화를 쏟아부으면 받아냈고, 사과를 하면 또 그런가보다 했다. 그 집에 그 소녀가 안전히 머물 공간은 한켠도 없었다. 포기한채 침범당하며 그저 무기력하게 잠을 잤다. 집에 있는 날은 거의 하루종일. 자식 잃은 너무나도 힘든 어머니를 위해서. 아니, 힘이 없는 그 소녀 자신을 위해서. 그래도 자신에게 너무 다정했던 옛날의 엄마를 추억하며, 언젠가는 다시 그 때로 돌아오겠지란 희망을 어렴풋이 가지고.


학교에선 계속 졸았다. 벼락치기로 성적은 좋았고, 선생님이 넌 왜이렇게 수업시간에 정신못차리고 잠만 자냐고 해서 '어제밤에 공부를 좀 해서요' 라고 대답했다. '어제 엄마가 소리지르고 난리쳐서 잠을 못잤어요' 라고 감히 말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소녀는 밤에 따로 고액과외를 받는 아이로 선생님들 사이에 소문이 나 버려 피곤해졌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편히 잘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너무 피곤했다.


수학시간에 방정식을 풀고 남은 시간에, 사람이 80살까지 산다면... 엄마 나이가 지금 50이니까


80-50=30....
앞으로 30년을 더 이러고 살아야되네..


라고 엄마 수명으로 계산을 했다. 그 소녀는 그 30년 이후에는 자다가 깨어나지 않아도 되게 아예 푹 잠들어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그 방정식을 계속 끄적거렸다.


물론 그 자식잃은 어미는 제정신이 들면 딸의 머리를 안쓰럽게 쓰다듬기도 하고, 맛있는 빵을 사다주기도 하고, 예쁜 옷을 사주기도 하고, 같이 나들이를 다니기도 했다. 당신이 그래도 귀엽고 어린 딸인 네가 있어서 이렇게 힘들지만 버티며 살아야지 라고 울면서 정말 다행이라고 고백도 여러번. 하지만, 그 소녀는 알았다. 어떻게 해도 자신의 존재는 엄마의 깊은 슬픔에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예전 엄마품에 안겨서 가슴을 조물락거리면서 수다떨다 잠이 들던 귀여운 막내딸은 오빠와 함께 죽었다. 엄마와 딸의 관계는 오빠의 죽음으로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그렇게 둘 사이엔 어떤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그만해! 나한테 화풀이하지마.
그리고 내 영역 침범하지마.
계속 이런식으로 날 대하면, 난 떠날거야


이렇게 그 소녀는 자기 자신의 편을 스스로 들어주는 방법을 서른 살이 넘어서야 배웠다. 엄마처럼 되기 싫다고, 뱃속에 둘째를 임신한 채 울면서 찾아갔던 상담 선생님에게. 그리고 진짜 살아있는 엄마에게는 말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 소녀 안에 살아숨쉬는 인격인 내면의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녀는 엄마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당신은 누구에요? 엄마 말고 당신이요.
저한테는 엄마가 어땠냐 말고, 당신이 어땠는지가 더 중요해요.



난생 처음 받아보는, 엄마의 슬픔이 아닌 그 소녀의 슬픔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과 함께 처음으로 엄마가 아닌 자기 자신을 감정을 마주 보게 된 그 소녀의 길고도 험난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iScreen Shoter - Safari - 231128115051.jpg


#그소녀의이야기


keyword
이전 04화정서중심치료 Emotion Focused Thera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