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죽은 오빠는 소녀에게 가장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부모님과는 달리, 오빠와의 기억은 유독 따스하고 자신을 감싸는 추억들이 많았지만, 이상하게 오빠는 아빠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오빠는 유독 아빠를 싫어하고 불편해했다. 엄마와 아빠가 뭔가에 대해 말다툼을 하면서 심하게 싸우는 날이면, 덩치 큰 고등학생 오빠가 엄마 대신 엄마 입장을 대변해 아빠와 싸웠다.
아빠 그만 좀 하시라고요! 아빠가 그러니까 엄마가 그렇게 힘든 거라고요! 그러니 이제 제발 좀 그만하시라고요!
엄마는 오빠의 등 뒤에서 거보라며 애들이 보기에도 당신이 잘못된 거라고 외쳤다. 그리고는 엄마는 가끔 아빠가 오빠만큼만 이해심 있고 다정하면 아빠와 싸울 일이 없겠다면서 아빠가 오빠만큼 자신에게 잘 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 자주 아쉬워했다.
그리고 그 착하고 든든한 아들은, 바쁜 아빠 대신 어린 막내 동생의 다정한 아버지가 되어주었다. 같이 글자를 읽고, 같이 만화책을 보고, 같이 약수터에 갔다. 바쁜 엄마 아빠 대신, 일곱 살 여동생과 자기 고등학생 친구들을 데리고 놀이동산에 갔다. 일곱 살 여자아이가 자신의 가방에서 소중하게 꺼내 주는 사탕을 그 남자 고등학생들은 기쁨에 환호하며 받아 들었고, 일곱 살 우리들을 귀여워하고 고마워했다. 그렇게 일곱 살 여동생은 고등학생 오빠와 오빠 친구들을 따라서 세상 구경을 다녔다.
장난도 짓궂게 잘 쳐서 어린 여동생을 놀려먹었지만, 깜짝 놀라게 해 놓고 엉엉 우는 자그마한 동생을 꼭 껴안고 미안해 오빠가 재밌어서 라며 달래주기도 하고, 단 둘이 있는 날이면 이불속에서 꼭 껴안아 주면서 얼굴을 부비부비 해주는 아빠 같기도 엄마품 같기도 한 다정한 오빠였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엄마한테 혼나는 날이면, 오빠는 나를 앉혀놓고 회초리를 바닥에 위협적으로 내리치고 있는 엄마 앞을 유머스럽게 쓱 지나갔다. 그러면 잔뜩 화를 내고 있던 엄마가 오빠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고, 그 소녀는 평소보다 덜 맞았다.
그리고 또 엄마에게 잔뜩 혼나서 책상에 앉아 시무룩해져 책상에 앉아 있으면, <보물섬> 만화책이 쓱 내 뒤에서 툭툭 나를 건드렸다. 싱글싱글 웃으며 이리 오라는 손짓에 오빠 방에 들어가 재밌는 만화책을 처음 접했다.
또한 , 우리 집에서 유일한 내 편이었는데, 뭔가 나를 애답지 않게 키우는 것 같은 모습이 보이면 나 대신 엄마에게 화를 내곤 했다. 어느 날, 새벽에 깨서 할 일이 없어서 조용히 문제집을 풀고 있던 날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이었다. 오빠가 깨서 화장실을 다녀오더니 그런 나를 보고서는 아침이 되자마자 엄마에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
엄마! 아 진짜 애 이렇게 키우지 말라고!
초등학교 3학년이 일어나서 새벽에 문제집을 풀고 있어, 이게 뭐 하는 거야??
재밌어서 푸는 건데.. 할 게 없어서.. 란 그 소녀의 말에 오빠는 다시 엄마를 쏘아보며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3학년이 공부밖에 재밌는 게 없다는 게 말이 돼?? 놀아야지! 쟤 나이에는 신나게 노는 게 재밌어야지!
아니, 애가 그게 젤 재밌다는데 어쩌니 ~라는 엄마 말을 듣고서는 오빠는 아 정말 너무나도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방문을 쾅 닫고 다시 들어가 버렸다. 그 새벽 그 소녀는 그렇게 화를 내는 오빠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후에 깨달았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공부가 제일 재밌는 것이 조금 이상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을. 친구들과 깔깔대며 뛰노는 것이 더 재밌어야 했을 나이라는 것을.
아마도, 같은 처지였던 오빠는 알았을 것이다. 그 소녀가 그 자신을 위해 공부하고 있는 게 아니었음을. 그녀는 '자랑스러운 공부 잘하는 우리 막내'로 엄마 삶의 자랑거리가 되어 엄마에게 칭찬받고 사랑받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기에 그렇게 했음을, 그 과정을 스스로 똑같이 겪었던 오빠는 짐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찾아올 불행도 같이.
누구보다 든든한 백을 가진 것처럼 그 소녀의 등 뒤에 서 있던 큰 오빠는, 자기 친구들 모임에도 그 조그마한 여동생을 곧잘 데리고 다녔다. 조잘조잘 정신없는 까불이를. 그리고 아빠처럼 나를 보호했다. 그래서 오빠 친구들까지도 내게 훈훈한 기억들을 많이 남겼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오빠의 베프가 나를 롯데리아에 있는 오빠한테 가자며 꼬시던 장면이다.
oo아, 오빠가 저기 롯데리아로 오래~~~
고집이 꽤 세던 나는, 지금 외출 신발이 아닌 슬리퍼를 신고 있어서 갈 수 없다. 는 확고한 입장이었고, 오빠의 베프는 나를 설득하다 설득하다 허리를 붙잡고 하늘을 보며 말했다.
쪼그만 게 진짜 똥고집이네. 야.. 내 친구 힘들겠다 야 너 키우느라고.
그렇게 심지어 자신이 가장 좋아했을 엄마에게 맞서서까지도, 친구들을 동원해서도 동생을 보살피고 놀이공원까지 엄마 아빠 대신 데리고 다녔던 그 오빠는, 소녀에게 굉장히 커 보이는 존재였다. 엄마이자 아빠였다.
그렇게 항상 밝고 쾌활했던 오빠가 약한 모습을 보였던 때가 딱 한 번 있었다. 소녀가 기억하는 가장 기운 없던 오빠의 모습이었다. 가난한 우리 집안의 가장처럼 회사에서 버는 돈으로 우리 아파트 융자금을 갚고 있었는데, 생활비와 융자금 등 자신의 월급 중 많은 부분을 보태오던 오빠는, 웬일인지 어느 날 그리 읊조렸다.
엄마, 난 결혼 못 할거 같아.
돈이 없어서....
고등학교 때 자기 여자친구라며 집에 엄마 앞에도 당당하게 매일 데려올 정도로 연애에 적극적이었던 오빠였다. 좋아하는 여자가 있음 되는 거지 돈하고 결혼이 무슨 상관이야? 뭐 암튼 걱정 마. 내가 나중에 2500억 가진 사람하고 결혼할 거니까 신혼 때 많이 떼줄게~라고 어린 소녀가 진지하게 말했다. 모두가 피식 웃어넘겼다.
그렇게 오빠가 스물넷에 죽었을 때, 젊은 시절 충분히 누리지도 못하고 안타깝게 져버린 꽃처럼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가난한 생활에 살림에 보태느라 자기가 원하는 걸 마음껏 해볼 수도 없었던 그는, 직장에서 받은 첫 월급으로 큰맘 먹고 샀던 영화음악 엘피디 세트를 시간이 날 때마다 매일 기분 좋게 닦으며 애지중지했다. 오빠 유품을 정리해 불에 태울 때에도, 아무도 그 엘피디 세트에 손대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 소녀가 자기만 몰랐던, 가족의 숨겨져 왔던 중요한 비밀을 처음 알게 된 서른 즈음 어느 날, 소녀는 과거의 그 상황에 놓여있을 오빠를 상상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 복잡다단한 환경 속에서 힘겹게 버티던 오빠는 현실을 버리고 무의식적으로 이 세상 태어나기 전 자궁 속에서의 편안한 상태로의 회귀를 꿈꿨던 것이었을 수도 있음을. 여러 가지 문제가 여기저기 얽혀 있던 상황에서 편안한 휴식처를 어디에서도 찾지 못하고 지내던 오빠는 그날따라 회사 회식이 끝난 늦은 밤, 술에 많이 취한 채 , 회사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헤어지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전혀 엉뚱한 다른 곳으로 갔다.
그리고 한강에서 일주일 뒤 발견되었다.
익사였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이미지, 키다리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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