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면 아이 vs. 내면 어른 간의 대화를 통한 자기치유
하나의 심리 상담 케이스를 베테랑(?) 교수님과 여러명의 수련생들이 같이 의논하고 토론하며 교수님께 적절한 지도를 받는 자리를 집단 수퍼비전이라 한다. (물론 이는 내담자의 동의하에, 사람을 특정할 수 있는 개인정보는 모두 삭제하거나 변경한 채, 삶의 내용만 가지고 진행된다)
무척 복잡하고 어려운 과거를 가진 내담자의 케이스가 집단 수퍼비전에서 논의되던 중, 우리 초심 상담자들이 모두 멘붕에 빠졌다. 내담자의 성장과정이 너무 열악해서 보살핌은 커녕 학대가 실제로 많았고, 내담자도 그 '결핍'을 상담을 통해 채우고 싶다고 한껏 기대를 밝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담자 그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는지 모호하게 그 무언가의 '결핍' 이란 단어만 정신없이 반복해서 말했기에 우리는 대체 그가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일까 단체로 멘붕에 빠졌다. 상담에서는 그가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어린시절 부모님의 전폭적인 사랑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대체 그 결핍이 무엇이며 짧은 상담을 통해 어떻게 메꾸겠다는 건가.... 다들 너무 어렵다며 뭘 어떻게 해야하지 물음표를 머리속 백만개씩 띄우고 앉아있었다. 무조건적 공감? 긍정적 지지? 뭐 이런 관념적인 개념만 떠올리면서 ..
진짜 모르겠어서 침묵을 깨고 질문을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결핍을 상담에서 채우고 싶다는 건지.. 그걸 상담에서 어떻게 채워줄 수 있는지.. 감이 잘 안 오는데요..
그러자 눈빛이 날카롭고 선명하신 지도 교수님이 그 특유의 에너지를 눈빛에 가득 담아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질문하셨다.
-우리는 어떤 때 내 삶에 뭔가 결핍되었다고 느끼죠?
바라는 걸 얻지 못했을 때요.
-이 사람은 살면서 뭘 바랬던 거 같아요?
무조건적인 사랑이요.
-우리는 상대로부터 뭘 받을 때 무조건적으로 사랑받는다고 느끼죠?
이해와 공감이요..?
-이해와 공감은 뭘 통해 얻을 수 있죠?
대화요..
그녀가 거봐라, 너도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15초 만에 그녀는 내게서 정답을 얻어냈다.. 나는 대답을 하고도 얼떨떨했다.
그리곤 그 내담자의 상담자를 보며 말씀하셨다.
이 사람과, 대화하세요. 잘 듣고 궁금한 건 질문하세요. 이해가 가는 지점에서는 내가 이해한 내용이 맞는지 대화를 통해 내담자에게 꼭 확인 받으세요. 이해가 안가고 궁금한 지점에서 또 부드럽게 질문하세요. 명심할 건, 답은 상담자가 아니라 내담자가 가지고 있어요. 자기 맘대로 이해했다 생각하고 넘어가지 말고, 꼭 자신이 이해한 내용이 맞는지 내담자에게 확인 받으세요. 이 사람에겐, 그렇게 대화하는 게 결핍을 채우는 방법이에요. '우리 손잡고 같이 함 이이야기해 볼까요'가 상담 목표에요.
그렇게, 나는 나 자신과 대화를 다시 시도해야 할 시간임을 느꼈다.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고, 나 자신에게 물었다.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야?
보통 이런 질문이 따라붙는 행동과 감정 뒤에는 항상, 트라우마가 등 뒤에 바짝 붙어 있다. 그리고 그 강한 정서는 가장되고 포장된 것으로, 진짜 본심인 1차정서를 가리는 방어기제로 사용되고 있는 '2차정서' 일 확률이 높다. (2차 정서의 특징은, 반응이 지나치다, 오래 지속된다, 반복된다는 세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최근 나는 오랜만에 '화' 에 강렬하게 휩싸였다. 그냥 덮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 그 화가 지나가도록 보내버릴까 하다가, 아니, 정서의 크기가 지나치고, 오래 지속되고, 이제껏 계속 반복되어 왔던 것 같기에 2차 감정인 것 같아 그대로 견디며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내 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화' 를 느끼며 있다 보니, 내면에서 슬슬 여러가지 말을 걸어왔다. 그것은 예전에는 꿈으로 오더니, 요즘은 '갑자기 무언가 내게 떠오르는' 기억이나 상황 또는 대화들, 또는 어떤 형상으로 내게 온다.
문득 떠오른 예전 상담 교수님과의 내담자와의 '대화'에 관한 내용은 지금 다시 내 안의 상처받은 아이, 총을 든 레옹의 마틸다와 내가 다시금 대화해야함을 상기시켰고, 뜬금없이 떠오른 한 영화의 베테랑 노장 캐릭터는 내가 내 안의 그 상처받아 분노한 아이를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내가 내 안에서 캐내야 할 필요한 특질들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렇게, 또다시 나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내 안의 내면 아이를 달래줄, 새로운 내면 어른의 캐릭터가 내 안으로 찾아왔다.
총을 든 철 없는 소녀, 마틸다 같은 내 내면아이.
차분하게 여유를 잃지 않는 엄청난 내공의 내면 어른.
특이한 점은 둘 다 킬러 캐릭터라는 점이다. 죽이고 싶으나 죽일 능력이 없는 어린 여자아이와, 죽일 수 있는 능력은 충분하나, 그러고 싶지 않은 노련한 킬러. 그들이 제거하는 대상과 대상을 제거하는 시점, 적을 제거하는 목적, 그 처리 숙련도가 아주 다르다.
그렇게, 대화해야 할 내 안의 목소리들이 세팅되었다.
어떤 사건에 의해 강하게 드러난 감정이 진짜 감정을 가리기 위한 2차 감정이라 느껴지면, 내가 하는 질문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혹시 예전에 느꼈던 상황이 있었는가? 다른 상대, 다른 무대에서.
그렇다, 역시. 지금과 아주 비슷한 '불타는 화'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아주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굉장히 자주, 절망스럽게. 끝내 해소되지 않아 내 안에 고스란히 남은 불씨로 살아있다. 부드러운 바람에도 크게 되살아날 수 있는 그런 숨은 불씨.
역시나 나는 현재에 일어난 사건에 반응하고 있다기보다는 예전 나의 역사와 트라우마에 온 몸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화' 로 덮어버린 나의 진짜 감정은 초라하고 약한 내 모습을 감당해야 하겠지만, 버틸 수 있는 한 마주해야 할 그것은 '절망적인 깊은 슬픔'이다.
사실 나는 화가 크게 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너무 에리게 아픈 것이었다.
<이미지 출처: 영화 레옹, 더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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