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살면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다소 무명시절 외에는 아이돌이나 스타를 딱히 깊게 오래 좋아해본 적이 없는 것 같지만, 어떤 영화 캐릭터들을 일정 시간동안 꽤 집착(?) 처럼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마치 그들이 현재 내 삶에 살아 숨쉬는 것처럼.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떤 영화 캐릭터들이 좋아지고 자꾸만 생각날 때는 그들이 내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든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문제를 진짜로 해결하고 있던 모습을 동경하거나 나와 동일시 하고 싶을 때였다. 즉, 그 사랑했던 캐릭터들이 당시 그 시절의 내가 닮고 싶은 어떤 '특질' 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특질에 사로잡혀 그 캐릭터들을 너무도 사랑했었고.
이런 캐릭터로의 동일화는 어느 순간 나를 어딘가에 기댈 수 있게 하고,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고, 그들은 내게 그 일정 기간 동안 가장 친한 친구 같은 하나의 '형상' 이었다. 그들은 내가 처한 현재 상황에 따라 이런 저런 모습으로 내게 말을 걸어오며, 내게 내 안의 잠자고 있는 어떤 특성을 활성화시키고 개발할 것을 요구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틸다, 영화 <레옹>
-세상을 부시고 싶었던 12살 여자 아이.
그녀가 아마도 첫 대상이었던 듯 싶다. 중학교 1학년이었나, 그 당시 그녀의 등장은 나를 한 눈에 사로잡았다. 그리고 꽤나 오래, 집착적으로, 그녀를 너무도 좋아했다. 나탈리 포트만이라기보다는 레옹의 마틸다를. 조금은 음산하고 조숙한, 차갑고 퇴폐적이어 보이는 그 캐릭터를.
12살. 부모와 가족을 적에게 한순간에 잃고, 그렇게 내면의 분노에 총을 든 소녀.
내 나이도 그녀와 동갑. 그 당시 나는 나보다 13살 많았던 오빠를 잃고, 정신적으로 엄마 아빠 또한 잃고 마틸다처럼 고아 상태였다.
나는 겉으로는 평범한 생활을 이어나갔지만, 그 당시 내 내면에는 총을 들고, 내 키다리아저씨인 오빠와 함께 이 힘든 세상을 다 부셔버리고 싶다는 분노를 간직했던 열두살 아이가 있었다는 것을, 후에 깨달았다. 그 캐릭터에서 간신히 벗어날 즈음에야. 그리고 그 놀라운 싱크로율에 얼마나 놀랐던지..
뮬란
-나와 나라고 기대받는 모습 사이에서 갈등하던 뭣 모르던 소녀.
그 다음이 뮬란 이었지 싶다. 효녀이긴 하나, 부모를 사랑하긴 하나, 뭔가 나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나의 모습을 요구받는데서 힘들어했던 시절.
내 삶이 아니라, 남의 삶을 연기하는 것 같이 느껴지던 부자연스럽던 시절. 그녀가 부르는 <reflection>은 나를 위한 노래 같았다. 아직도 들으면 눈물나는 노래....
Why is my reflection
someone I don’t know?
그래도 그녀는 답을 찾았었다.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 나는 그게 너무나도 부러웠었다. 나는 이게 내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무엇이 나인지는 모르겠기에. 지금도 단지, '내가 아닌 것' 들을 벗겨가는 과정에서 내가 조금씩 드러난다는 사실만 안다.
Somehow I cannot hide Who I am though I’ve tried
When will my reflection show who I am inside?
그녀는 가족을 위해서 헌신하다가 진짜 자신의 힘을 만나게 되지만, 나는 그럴 자신도 없었다. 그저 그녀의 그런 상황과 용기를 부러워 할 뿐. 그렇게 머리를 자르는 그녀에게서 뭔가 통쾌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우울해질때면 다시 틀어볼 때마다, 그녀는 내게 큰 꿈과 희망의 상징처럼 느껴졌고 더불어 나도 조금은 씩씩해지곤 했다.
라푼젤,
-마녀로부터 벗어나, '좋은 엄마'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
정신분석학에서는 마녀의 원형을 '어머니' 로 본다. 어머니는 마녀의 측면과 좋은 엄마의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아이가 적절하게 통합하지 못할 경우 '마녀' 가 된다. 이 점을 정말 적절하게 잘 설명한 만화가 <라푼젤> 인데, 이 쪽으로는 어째 설명이나 자료로 쓰이지 않아 참 안타깝다. 내가 나중에 써볼참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나쁜 엄마' 에게서 탈출하여 '좋은 엄마' 를 만나고 자신의 삶을 되찾는 모든 여성들의 여정을 너무나 실감나게 담고 있다.
엄마와 딸 관계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측면을 극대화해 고스란히 담아낸 라푼젤과 마녀관계. 그녀가 부르는 'listen to your mother' 노래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모녀지간을 너무 잘 담아냈다. 사실 이 영화의 마녀와 진짜 엄마인 착한 왕비는 실제로는 동일인물인 경우가 많다. 바로 우리 모두의 어머니들.
그녀가 자신의 삶을 향해 발을 내딛었을 때, 나는 램프를 보는 게 꿈이라고 눈빛 반짝이며 노래할 때, 마녀에게서 머리를 잘라낼 때. 나는 가슴 깊이 울었다.
제이슨 본
-자신의 정체성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진실을 쫒는.
자신의 정체성이 뿌리채 흔들리고 존재 자체가 변화하게 되는, 극도의 혼란상태 속에서 자신의 진실을 찾아 쫒는 인물, 제이슨 본. 그리고 그 진실의 끝은 모두 '자신의 선택' 이었음을 비장하게 알리고 막을 내렸던 그 시리즈를 나는.. 참 너무도 사랑했다.
홀로 고독하게.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고. 무척이나 유능하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대체 이보다 황당한 사건이 또 있을까.
그가 뛸 때, 마음속으로 나도 함께 뛰었다. 그렇게 내 마음 속 오래도록 고통스럽게 살아 숨쉬었던 캐릭터였다. 그리고 그 선택의 첫걸음이 '자신의 선택' 이었다는 것도, 그 받아들이는 과정도 함께 영화 속 그 인물과 힘들어했던 내 안의 캐릭터였다.
그리고 그들의 캐릭터가 내 안에서 모두 지나가고 별다른 캐릭터 없이 살고 있는 지금,
그리고 뜬금없이, 영화 <더 록> 의 주인공인 숀 코너리가 찾아왔다.
메이슨 존( 영화, 더 록)
-유능하고 여유있는, 능글맞은 베테랑
갑자기 1997년도인가, 그 때의 이 영화의 이 캐릭터가 소환된 건 왜일까. 난 제임스 본드 라는 캐릭터를 안 좋아하고, 숀 코너리는 중후하고 아름답게 늙었다 정도였는데. 요즘 이 캐릭터가 내게 말을 걸고 있다. 왜일까? 갑자기 배우 숀 코너리가 좋아졌나 싶어 그가 나온 다른 영화를 보니 아니, 배우라기보담은 이 캐릭터가 또다시 내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여유롭게 "내 비서가 계산할 거요" 라고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사람들을 비서취급하는 능글맞음과 당당함.
바로 죽을수도 있는 더 최악의 상황으로 여유만만하게 걸어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어떤 베짱. 철학과 능력과 실력이 겸비되었으나 자랑하지 않는.그가 원하는 것은 그저, 소박한 자유일 뿐. 그래서 서툰 상황에 놓여 매 순간 죽을 뻔하는 니콜라스 케이지를 끊임없이 살려내는 사람. 그의 최고의 안내자이자 보호자인 여유있는 노장, 베테랑.
능력이 출중하고 아주 믿음직스러운,
그러나 조용하고 드러나지 않는 조력자.
모르겠다 아직, 이 캐릭터가 내게 말을 걸어온 이유는. 다만, 그 캐릭터를 거울 삼아 내가 가진 내 안의 무언가를 끌어내야만 하는 시점인가보다.. 라는 것 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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