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은 어떤 사람과 일하고 있습니까?
'이직을 하면 달라지는 것들 1편'을 쓴지도 벌써 2달이 넘었다.
2편을 쓰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릴지 몰랐는데.. 그 동안의 나태함을 반성하며, 약속도 취소된 오늘, 글을 써보기로 했다.
1편에서는 이직을 하면 달라지는 일/커리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2편에서는 '사람'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생이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게되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커리어를 시작했다'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우리가 취업을 하는 이유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위한 것인가? 물론 '100% 아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첫 걸음을 뗀 것이고, 내 커리어의 시작점에서 1cm라도 나아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 조차도 첫 신입사원이 되었을 때, 주변에서 '사회생활이 중요하다.' '사람 관계를 잘 쌓아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지, '앞으로 광고 업계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도록 잘 배우고 성장해라.'라고 말 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사회생활 = 회사에서의 인간관계'를 중요시 한다. 상사에게 예쁨 받는 후배가 되어야 하고, 동기 사이에서는 너무 튀지도 그렇다고 너무 뒤 떨어져서도 안 된다. 유관부서에서 안 좋은 소문이 나지 않기 위해 평판관리도 해야 한다. 얼마나 우리나라가 '관계 중시성 직장 문화'를 추구하면, 일명 '가족'같은 회사를 말하겠나.
그래서,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직장을 다니려면, 사람을 무시할 수 없다.
가끔씩 술을 마시는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새벽에 집에 가느니 아침에 들어가는게 낫다고 한다. 새벽에 들어가면 가족이 깨니까, 그건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 친구의 지론이다. 친구 놈이 농담처럼 던진 말이지만, 이 말에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가족 간에도 예의가 필요한데 하물며 회사에서는? 당연히 더욱 예의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회사를 다니다보면, 예의라는 것을 집에 두고 출근하는 사람을 만나기 일쑤다.
이직하기 전 회사를 다닐 때 일이다. 나는 기획팀이었기 때문에 제작팀과 협업할 일이 많았다. 물론 협업이라는 단어로 위장한, 요청과 부탁의 연속이었지만.. 아무튼 그러던 어느 날, 클라이언트에게 광고 영상 자막에 대한 간단한 수정 요청이 왔다. 당연히 영상 수정에 대한 업무는 제작팀의 것이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제작팀에게 연락했다. 자리 전화를 안 받길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고, 몇 번의 신호음이 들린 후 그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을 평소처럼 전달했고, 그 이야기를 듣더니 그는 대뜸 화를 냈다. 이유는, 본인은 어제 경쟁PT가 있어서 밤을 샜고, 그래서 오늘은 일찍 퇴근한다는 것이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물론 그가 밤을 새고 힘들고 예민한 상황인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그 경쟁PT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그가 밤을 샜는지, 일찍 퇴근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 때 시간은 오후 5시가 조금 안 됐을 때다. 우리 회사는 퇴근이 6시인데 말이다. '본인은 퇴근해서 집에 가는 길인데, 내가 말한 일 때문에 다시 출근을 해야되는거냐?'라고 화 내는 그의 말을 들으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앞선 상황에 대한 설명없이 본인 감정대로 얘기하고 짜증내는 것을 보니 '나를 우습게 생각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예의 없음에 화가 나고, 몸 속 깊은 곳에서 빡침이라는 것이 올라 왔다. 그래서 지지 않기로 했다. '나한테 밤 샌 것에 대해서, 일찍 퇴근하는 것에 대해서 먼저 얘기한 적 있냐'는 말과 함께 반박했다. 연차가 7~8년 차이가 났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그의 행동이 신경에 거슬렸던 건 사실이다..ㅎ) 그렇게 싸우고, 클라이언트의 일을 어찌저찌 해결하고, 그 날 저녁에 아까 예민했던 것에 대한 사과를 카톡으로 했다. '사회생활'이라는 명목하에..^^ 그런데 읽씹하더라.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더 싸가지 없게 대해줬다!!
사실 위와 같은 경우가 한 두번은 아니지만, AE라는 위치는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화를 참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도 다른 팀이기 때문에, 특정 프로젝트를 할 때만 마주치면 되었기 때문에 괜찮았다.(정신승리..!) 우리 팀 사람들과는 잘 맞고 재미있게 지냈으니까! 라고 적다보니, 예의를 지키지 않아 화가 났던 사건 하나가 또 떠올랐다.
한 제품의 광고를 준비중이었다. 아직 방향성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기획/컨셉에 대한 아이데이션이 필요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우리 팀의 책임님이, 퇴근 시간이 되어서야 오늘 저녁 8시에 회의를 하자고 하더라. 그렇게 급한 프로젝트는 아니었기에 왜 야근까지 하나 싶었지만, 평소에도 야근이 많았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갑자기 뒤통수를 세게 치는 일이 생겼다. 8시에 회의를 하기로 한 책임님이 6시가 되자 말하더라 "나 헬스장 가서 운동하고 올테니까, 저녁 먹거나 그러고 있어!"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건가? 본인 운동을 위해 6시에 할 수 있는 회의를 8시에? 1시간만 야근하면 되는 일을 3시간을 야근하는 일로 만든다고? 예의가 없음을 넘어서, 이건 어이가 없었다.
뭐라 대답할 틈도 없이, 그 말만 남기고 책임님은 사라졌다. 멀뚱히 1시간을 멍때리던 중, 야근 하던 같은 팀의 또 다른 책임님이 물어보더라. 왜 집에 안 가냐고. 그래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솔직히 나를 두고 운동에 간 책임님이 혼나기를 바라며, 상세히 그렇지만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자 바로 팀 단톡방에 카톡을 하셨다. "너네 셀은 누구는 운동가고, 누구는 기다리고 그렇게 일하는 거니?" 잠시 후, 헬스장의 책임님은 나에게 전화를 해서 내일 오전으로 회의를 미루고 퇴근하라고 했다.
위 2가지 이야기는 전 회사에서 겪은 '예의 없는 사람 문제'이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보다,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현타가 더 세게 온다. 이직을 하고 싶던 여러 이유 중, 이런 사람 스트레스를 더 이상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꽤 큰 비중을 차지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배우는 속담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늘말이 곱다"인 이유가 있다. 그 만큼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우리가 살아가는데 중요하단 것이다. 직장 내 사회생활은 일방향성이 아닌, 공존과 협업이다. 상대방이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면, 나도 그 순간부터는 그 사람에게 예의를 차릴 이유가 없어진다.
다행히도 나는 운 좋게 좋은 회사로 이직했고,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는 거의 받지 않으며 지내고 있다. 단순히 수평문화를 떠나서 이건 인간 대 인간의 문제이다.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회사에 다닌다는 건 너무나도 복 받은 일이다.
예의 없는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위에서 말했지만, 또 다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내 뇌로 생각하기에) 너무나도 한심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이건 그들의 능력을 폄하하거나, 사람을 우습게 본다는 맥락이 아니다. 그들의 한심함이 나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는다면, 그건 혀를 한 번 쯧 하고 돌아서면 그만일 일이다. 하지만, 나는 밤낮없이 야근을 하는데 내 팀장이라고 하는 사람은 놀고만 있다면? 정말 기가막힐 노릇이다.
6시가 되면 회사에는 2종류의 사람이 남는다. 퇴근을 못 하는 사람과, 퇴근을 안 하는 사람. 나는 일이 많아 퇴근을 못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리 팀장님은 집에 가면 부인과, 자식이 있기에 퇴근을 안 하는 사람이었다. 매일 6시만 되면, 팀장님 자리에서는 한 가지 소리가 들린다. 바로 프로야구 중계. 정말 너무너무 화가 났다. 야구 중계를 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화난 것이 아니다. 내가 할 일은 산더미인데, 그 팀의 팀장이라는 사람이 일은 안하고 집에 가지 않을 궁리만 하고 있다는 것이 화가 났다. 내 일은 도와줄 생각도 없으면서 야구를 보는 중간중간 나에게 왜 집에 안 가냐고 묻더라. 그 말을 들으면 더 화가 났다. 왜냐면 그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어느 정도의 일이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분기마다 팀 내 다면평가를 실시했는데, 그 때 팀에 대한 평가항목도 있었다. 자신이 속한 팀에 대한 만족도, 비전, 문화 등에 대한 것들을 조사하는 질문이었다. 당시 난 팀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지라, 당연히 낮은 점수를 줬다. 그 후 평가 결과가 나왔는지, 팀장님과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그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더라. "팀 평가 점수가 굉장히 안 좋게 나왔다. 모든 항목들이 다 최하치이긴 한데, 그 중 '팀의 비전을 모르겠다.'라는 항목이 전체 팀 중 최저점이더라." 속으로 찔렸지만, 우리 팀 중 나만 낮게 준게 아니구나 라는 동질감도 느꼈다. 여기서 이 대화가 여기까지였다면 '쌤통이다' 생각하고 끝났을 것이다. 근데 역시 명불허전이더라. 팀장이 나에게 한 뒷 말은 이거 였다. "OO아, 너가 나랑 술을 안 마셔주니까 우리 팀 비전이 낮다고 나오는 거잖아. 다 너가 나랑 술을 안 마셔서 그래." 속으로 생각했다. '응? 뭐라고?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거야..? 나 잘못 들은 것 아니지..? 이 사람 미쳤나 정말..?' 애써 웃어 넘겼지만 지금 생각해도 주먹이 쥐어지는 일이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진짜 머릿 속에 각인된 것이 2가지 있다. 우선 나이 먹고 저런 무책임하고, 무쓸모한 사람이 되지 말자. 두번째는,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 말하고 싶은, '월급 받는 만큼 일하자'다. 연봉은 사실 그 사람이 이전에 무엇을 했었는지에 대한 평가보다는, 이 사람이 올 해 어떤 일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주는 것이다. (이전에 잘한 것에 대해서는 성과급이 주어지니까.) 그러니 나보다 연봉을 많이 받는 팀장이 일을 안 한다면, 나는 더 안해도 되는 것이다. 아니면 팀장이 일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둘 중 한 가지 방법은 선택하자. 안 그러면 화만 나고, 스스로가 바보같아지는 순간이 온다. 왜냐면.. 결국 그들은 잘 먹고 잘 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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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직을 하면 달라지는 것들 2편>을 적어보았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예의없는 사람, (나에게 피해를 주는) 한심한 사람.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내가 그 일을 더 잘하기 위해 감내해야 하고, 그 스트레스를 이겨냈을 때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 근데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는 말이다. 감내하면 더 커지고, 참고 버티면 곪아 터지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직장에서 '사람'에 대한 문제는 조직 이동 등을 통해 2~3년이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생각에 반대한다. 그런 잘못된 사람을 용인하는 회사라면, 다른 조직이라고 괜찮을까? 그 사람 1명이 악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회사가 만든 것이고, 조직의 울타리가 보호하는 것이다. 그리고 설사 그 한 명만 피하면 해결될 수 있다고 해도, 우리의 2~3년은 너무 귀중한 시간 아닌가? 당장 이번 주말만 해도 이렇게 소중한데?
이직이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해결책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기회는 될 수 있다. 이직할 회사에 대한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꽤 확률이 높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직을 하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직업이란 것이 우리 인생 시간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할텐데, 스트레스만 받으면서 살기엔 너무 슬프지 아니한가.
*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 조금이라도 본인의 행동이 찔린다면, 우리 인간적으로 그렇게 살지 말자. 우리 다 지성이 있는 사람이고, 사회화 된 인간 아닌가? 본인이 젊었을 땐 다들 그렇게 배웠다고 하는데, 한글을 모르는 어린이도, 외국인도 욕은 가장 빨리 배운다. 당신이 젊었을 때 배운 것이, 가장 나쁜 것들이 아니었는지 한 번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