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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ek Feb 09. 2020

이직을 하면 달라지는 것들 - 1

회사는 안 변해요, 내가 변해야 해요

나는, 이직을 했다.

첫번째 이직이고, 두번째 직장을 갔다.

대기업을 나왔고, 스타트업에 들어갔다.

대리라는 직함 대신, OO님이라는 내 이름을 얻었다.

격식을 차려야 할 상사가 아닌, 마음 놓고 이야기 할 동료를 만났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아니 어쩌면 신입사원 뽕에 취해있던 시절 이후 처음으로, 일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직을 한 지 4개월이 넘은 지금, 나는 아주 만족하며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래서, 이 얘기를 조금 해보려 한다. 나의 이직, 그리고 나의 삶의 변화에 대해.

부속품이 아닌, 구성원이다.

이전 직장에 있으면서 주변의 스타트업을 다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부러웠던 것이 스타트업이 가진 문화였다. 수평적이고, 긍정적이고, 서로가 서로를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 


대기업에 다니며, 나는 부속품에 불과하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빈 곳이 생기면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곳을 메꿔야 했고, 주니어라는 이유로 내 의견은 묵과될 때가 많았다. 인사팀에서 상담을 진행할 때면 내 이야기를 듣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나에게 수용시키기 위한 자리였다. 트렌디함을 추구해야 하는 광고회사이기 때문에 '수평문화'를 내걸었지만 수평을 가장한 수직문화였고, '직급이 아닌 통일된 호칭으로 부르는 제도'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할 때만 적용될 뿐, 밑의 사람이 팀장님을 통일된 호칭으로 부르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이런 수직적인 대기업 문화가 싫으면서도, 그냥 '회사가 그런거지'라는 생각으로 참고 다녔다.


그런데 스타트업에 오고 며칠되지 않아, '왜 하루 빨리 이직하지 않았을까..' 후회를 했다. 이직한 회사는 이름에 님을 붙여서 부른다. OO님이라는 호칭은 대표를 부를 때나, 인턴을 부를 때나 동일하다. 동등한 호칭에서 나오는 파급력은 단순한 언어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회의할 때 다양한 직급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과 그 생각들이 모이게 된다. 또 의미도 목적도 모르고 '책임님이 이렇게 하라고 하니까' 일하는 것이 아니라, 'OO님이 이렇게 말씀하시긴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서 내 의견을 말씀드리고 의논해서 다르게 하기로 했어'가 된다.

윗 사람의 명령에 따라 행동할 사람이 아닌, 스스로 생각할 사람을 만들게 하는 구조, 그게 동등한 호칭이 가진 역할이고, 이것이 수평문화의 순기능 아닐까 싶다.


물론 수평적인 문화가 수직적인 문화보다 절대적으로 좋은 문화라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성향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자기에게 맞는 문화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요즘 직장인이라면, 수평적인 문화를 더 원하지 않을까? 그래, 이게 요즘 직장 문화지!) 


일을 위한 일이 아닌, 목표가 있는 일을 한다.

대기업에 다니던 시절, 가장 싫은 2가지 일이 있었다. 하나는 '내부보고용 문서 만들기', 다른 하나는 '2시간 동안 회의실에서 묵언 수행하기'.


대기업에는 사람이 많고, 그러다보니 직급이 많다. 직급이 많다는 건, 하나의 일을 하기 위해 그만큼 보고해야 할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능력은 없지만 참견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윗사람에게 보고하고 설득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나는 주니어였기 때문에 본부장님에게도, 대표님에게 직접 보고를 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보고하기 위해 나는, 하나의 일을 함에 있어서도 '팀장님 보고용', '본부장님 보고용', '대표님 보고용', '클라이언트 실무 보고용', '클라이언트 임원 보고용', '클라이언트 대표 보고용' 문서를 만들어야 했다. 하나의 경쟁 PT를 하면, 도대체 비슷한 문서를 몇 가지 버전까지 만들어야 이 일이 끝날까 적지 않은 현타가 자주 왔었다.


'2시간 동안 회의실에서 묵언 수행'을 하고 나왔다고 하면, 혹자는 나의 능력이나, 나의 적극성을 비판할 것이다. 물론 나의 적극성이 부족했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회의 시작 5분만에 대표/본부장님이 언성을 높이는 회의실에서 주니어인 내가 과연 몇 마디나 꺼낼 수 있을까. 내가 얘기했을 때, 그 얘기를 듣고 진심으로 고려하고 고민해주는 피드백을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물론, 내 사수라고, 내 팀장이라고 이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일이 아닌 다른 이유로 내가 필요했다. 회의록도 적어야 하고, 갑자기 회의중에 노트북에 문제가 생기면 고쳐야 하고, 피곤하면 1층 스벅에 가서 아메리카노도 사와야 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스타트업의 일은 다르다.

모든 일에는 그 목적성이 뚜렷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하지 않는 모든 불필요한 절차는 지양한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모두가 공동의 목표점을 갖고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연차에 상관없이 서로가 서로를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회의를 하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서로의 의견을 쉽게 무시하는 법이 없다. 오늘의 나는 맞을 수 있지만 내일의 나는 틀릴 수 있고, 그렇기에 옆 사람이라는 존재가 있는 것이다.

반면 의미없는 일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외면한다. 그런 일을 시키는 사람도, 그런 일을 하려는 사람도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팀원들과 스타벅스에 가서 수다를 떠는 것이 다른 업무 집중도를 높이는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내가 느낀 스타트업은 '일을 잘하는 사람'과 '일을 잘 하려는 사람'이 모인 곳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이 회사에서 의미없는 일에 얽매이고 있다면?" 스타트업이라는 좋은 선택지를 한번 고려해보시길 바란다.


내 삶도 그렇듯이, 내 커리어에도 리프레시가 필요하다.

리프레시. 몇년 전부터 참 많이 들었던 단어이다. "아, 회사 너무 싫다. 내 삶에도 리프레시가 필요해.." "나 그냥 휴양지 가서 리프레시나 하고 싶어" "이렇게 연애하는 것도 지쳤어.. 변화가 필요해"


나도 그랬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쳤고, 쳇바퀴 같은 삶에 싫증이 났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싫었던 것은 내 직무였다. 나는 광고회사의 AE였다. AE라고 하면 보통, 광고 기획자를 얘기한다. 너무나도 멋있고, 크리에이티브하고, 존경할 만한 직업 아닌가..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내가 멋진 기획자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AE는 어딜가나 '을'이다.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서 그들은 우리에게 돈을 주는 사람이니까, 제작팀과의 관계에선 그들은 우리의 기획을 크리에이티브로 만들어주는 사람이니까, 미디어팀과는 그들은 우리의 미디어 효율을 책임지는 사람이니까, 그 외 유관부서 역시 클라이언트 관련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E는 어딜가나 '을'이다. 그래서 나는 싫었다. 너무 멋대가리 없고, 전문성도 없는 이 직업이 싫었다.


그래서, 이직을 한다는 결심을 했을 때, 1순위는 광고회사에 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 다짐에 따라 나는, 스타트업 마케팅팀의 브랜드 마케터/기획자 포지션으로 이직했다. 사실, 마케팅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 보자면 광고 기획과 뭐가 그리 다르겠냐만, 실제 직무를 이동하고 나니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내가 그 동안 했던 광고라는게 이렇게 작은 범위의 업무였구나' '나랑 일했던 클라이언트가 이런 부분에서 참 많이 힘들어 했겠구나'


그 중에서도 가장 긍정적인 부분은,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을 한다는 것이다. 광고회사는 업무 특성 상, 남의 돈으로 남의 일을 한다. 브랜드 오너십을 갖기란 어렵고, 한번에 한 가지 브랜드를 담당하지도 않기 때문에, 항상 여러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혼동에 휩싸인다. (보통 이 때, 일의 가장 우선순위에 있는 것은 돈을 많이 쓰는 클라이언트다.. 그냥 모든 선배가 그렇게 일하더라..) 또한 내가 열심히 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회사 차원에서 정말 열심히 노력해 준비한다고 해도, 클라이언트의 "싫다"는 한 마디면 모든 일이 '무'로 돌아간다. 이미 싫다는 사람에게는 설득이 아닌, 새로운 답안이 필요하다. 이렇게 광고회사의 일은 무한 반복된다.

하지만, 브랜드에서는 다르다. 내 브랜드고, 내 일이다. 내 결정이 좋은 브랜드를 만들고,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얘기된다. 반면 나의 조그만 실수가, 브랜드에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신중하고, 더 고민한다. 내 말에 힘이라는게 생기고, 그 힘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매일 열정적으로 논의한다. '이 얼마나 꿈꿔왔던 기획자의 일인가' 브랜드에 대한 오너십을 갖고 일하는 즐거움, 이것은 이전까지 느낄 수 없었던 일의 만족감을 준다. 그리고 별것 아니지만 나를 조금은 나은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말할 수 없는 무언가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일이 재미있다. 어떤 대단한 것을 하는건 아니지만, 자유롭게 고민하고 꿈꿀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게 행복하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일이 싫었던게 아니었나보다. 나는.. 진짜 기획자가 되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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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까 생각보다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새로운 직장에서 얻게 된 긍정적인 기운들을 많이 말하고 싶었나봐요..


이직을 하면 달라지는 것들 <2>에서는,

일하는 공간과 사람에 대해서 말해보려 합니다.


그럼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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