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aek Sep 12. 2019

퇴사자의 잉여살이

앞으로의 목표 : 돈 많은 잉여되기

퇴사를 하고 2주의 짧은 휴식이 보냈다.

어딘가로 멀리 떠나고 싶기도, 가만히 멍을 때리고도 싶었는데,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2주간 경험한 것들을 얘기하기 전에, 너무 편안한 시간이었다. 입사를 하고.. 아니, 채용이라는 시장에 뛰어든 이후, 최근 4~5년 동안 이렇게 편하게 정신을 놓아본 적이 있나 싶다. 휴가 가기 전 인수인계를 적어놓을 일도, 휴가 중 업무 관련 연락을 받는 것에 대한 걱정도 없었다. 아니 할 필요가 없었다. 1주일 간 휴가를 가려고 3~4일은 야근을 하며 내 업무를 정리해야 했던 것을 떠올리면 참.. 부질없게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2주간 가장 열심히 한 것은 '카페 투어'다. 회사를 다니며 점심시간에 한남동을 가거나, 오전근무를 하고 망원동에 가면 항상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이 시간에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뭐하는 사람일까..? 돈 많은 백수인가? 프리랜서일까? 아니면.. 그냥 반차쓰고 나왔나..?' 저마다의 속사정이 있겠지만, 그 이유가 어쨌든 평일의 여유를 즐기는 그들이 멋있고 또 너무너무 부러웠다.


나도 뉴요커가 되어보려 해!!

평일의 시작을 카페에서 열어보기로 했다. 사람없는 시간에 여유롭게 햇살을 맞으며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그 중에서도 나의 1차 목표는 블루보틀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은, 역삼점/압구정점에도 생겼지만 당시에만 해도 성수/삼청점만 오픈했을 때였다.) 사실 커피맛을 그리 잘 알지는 못하지만, 유행에 뒤쳐지면 안된다는 생각에 가장 핫하다는 카페를 목표로 잡았다.

10시 오픈시간에 맞추어 가자!라는 생각을 했지만, 역시나 아무도 깨우지 않는 나는 오후 2시가 되어서야 눈을 떴다. 부랴부랴 씻고 옷을 챙겨입고 나갔다. (여유를 즐긴다고 옷도 여유로워서는 안되기 때문에..ㅎㅎ) 오후 3시 정도가 되어서야 블루보틀 삼청점 앞에 도착했다. 인스타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 밖에까지 줄을 서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내가 갔을 때는 줄이 길지 않아 바로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약 5분 가량의 기다림 끝에, 나의 첫 블루보틀 커피를 주문할 수 있었다. 

블루보틀 입성!!

블렌드 원두의 필터 커피를 한 잔 주문해서 2층 스탠딩 테이블에 기대어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10분여간의 기다림 끝에 점원이 내 이름을 불렀고, 나는 커피를 받을 수 있었다. 커알못인 나에게 엄청나게 영감을 준 커피는 아니었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첫 블루보틀 커피였다.

이 외에도, 뷰티인사이드의 촬영지 '카페 valor', 고풍스러운 멋이 있는 '가배도' 등의 카페를 다녔고,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카페는 '포비 DMZ'다. 내가 보는 저곳이 북한인지 남한인지 모르는 채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을 주는 카페, 왠만한 한적한 카페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그런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혹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요새 답답함을 느낀다면, 강력하게 추천한다. (그 주변에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것은 함정이다..) 


나도 문화인이 되어보려 해!!

이렇게 퇴사할 것이라는 걸 모른채 지난 5월 티켓팅한 공연이, 운 좋게 쉬는 날 갈 수 있게 되었다. 바로 <LANY>의 내한공연!! 평소 레이니 음악을 좋아하던 1인으로서, 너무나도 기대되었고 이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그리고 당일 여유롭게 출발하였지만 역시나 촉박하게 도착을 했고, 그래도 공연시간에 늦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공연장에 입장했다. 평일 저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이 가수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은 후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모델 출신 보컬인 폴 때문인지 대부분의 팬들이 여성들이었고, 중간중간 몇몇 남자팬들이 보였다. (이들 중 몇몇은 누군가에게 끌려온 것 같은 표정이었다 -_-) 

콘서트에는 몇 번 가봤지만 첫 스탠딩이었고, 오랜만에 쩜프쩜프를 하니 즐거웠다. 그리고 이 곳에 있던 약 2시간의 시간동안, 세상과 단절된 기분을 오랜만에 경험했다. 핸드폰을 볼 여유도, 애플워치의 알람을 볼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이 기분은 공연장을 나와서도 지속됐다. 같이 공연을 본 여자친구와 차를 타고 집에 가는 내내 공연에 대한 얘기를 했고, 레이니의 음악만을 들었다. 단순히 공연을 떠나서 오랜만에 어떤 것에 몰입/몰두하는 경험을 한다는 것이, 입사를 하고 일만 하며 사는 동안 잊고 있던 감정을 찾은것 같아 벅차기까지 했다. 

나도 작가가 되어보려 해!!

회사를 다니며 항상 시간을 핑계 삼아,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일을 미뤄두었다.(사실 이건 학생때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는 것 같다..)  그러다 이렇게 쉬게 되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솔직히 말하면.. 예능을 보고, 드라마를 봐도, 시간이 남는다는 것에 가까웠다.. 이유가 어쨌든, 쉬는 동안 나의 목표는 책 1권 읽기와 브런치 작가되기 였다. 2주가 지난 지금, 책은 3분의 2밖에 읽지 못했지만 브런치 작가에는 당당히 선정되었다. 글을 잘 썼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고 생각치도 않지만, 그냥 나도 글을 쓸 수 있는 창구가 생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뻤다. 아직은 주변에 내 브런치 글을 공개할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당당하게 오픈할 수 있지 않을까? 재미난 상상도 해보았다.


* 추가적으로 2주간 쉬며 새롭게 시작한 습관이 하나 있다.

  살면서 참 많은 소개로 좋은 카페들을 경험했는데, 이 빌어먹을 기억력 때문에 좋았던 카페/맛집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네이버 지도에 하나하나 내가 갔던 곳들을 사진첩을 뒤져 표시하기 시작했다.

  2주동안 돌아다닌 곳도 다 표시해두었다. 나도 주변 사람이 물어봤을 때 자신있게 카페/맛집을 소개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므로..


작가의 이전글 첫 회사를 그만둔다는 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