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네 관심사는 뭐니?"
어김없이 커리어 상담을 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예전에는 상담을 받던 입장에서 이제는 상담을 하는 입장이 되었다. 불과 몇 년 전인 것 같은데 입장이 달라지자 커리어를 상담하는 것에 대한 내 생각도 바뀐 것 같아서 오늘은 그 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나는 현재 5명의 시니어 프로덕트 매니저들을 이끌고 있고 10명의 사내 멘티들을 멘토링해주고 있다. 덕분에 나 역시 예전과는 다르게 커리어에 대한 다양한 데이터들이 쌓이고 있다. 특히 커리어를 바라보는 시선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커리어를 승진이라는 단어와 동일시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커리어란 어떤 일을 하던지 끊임없이 배움을 찾아 나서는 일이다. 물론 커리어는 본인이 정의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이를 상사와 공유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본인의 목표를 상사에게 알림으로써 상사 역시 팀원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 프로젝트 맡기거나 조언 혹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멘토를 찾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사와 커리어를 상담한다는 콘셉트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이를 이상하게 바라볼 수 있다. 분명히 취직해서 주어진 일을 하고 있는데 커리어 목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마치 이 사람이 곧 회사를 떠나거나 팀을 옮길 거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커리어 상담은 "이 팀을 떠나고 싶어요"가 아닌 내 삶을 장기적으로 바라봤을 때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하여 같이 고민하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왜 커리어 상담을 해야 할까.
드라마 미생에는 "직장인들에게 월급과 승진을 빼면 뭐가 있겠나"라는 대사가 있었다. 나 역시 당시 드라마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들어오는 월급과 몇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승진만 바라보고 매일 같이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한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두 가지 종류의 동기 부여를 받는다고 한다. 먼저 외적 동기 부여가 있다. 말 그대로 외부의 보상에 의하여 동기 부여를 받는다는 내용인데, 드라마 미생의 대사에서 나왔던 월급과 승진 모두 외적 동기 부여에 속한다. 두 번째로는 내재적 동기 부여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내재적 동기란 업무를 수행하면서 느끼게 되는 즐거움이나 성취감과 같이 업무 자체가 제공하는 본질적인 보상으로 인해 생기는 동기라고 정의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업무를 통해 본인이 성장하는 것을 느끼고 잠재된 자아를 실현할 때 부여받는 동기다. 물론 외적 동기 부여 역시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지만 어차피 이는 회사에서 시스템화해놨기 때문에 상사의 역할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런데 비해 상사는 팀원들의 내재적 동기를 제공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특히 내재적 동기는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가 된다는 수많은 연구 결과가 있기 때문에, 상사로서 당연히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 시작엔 커리어 상담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팀원의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커리어 면담을 준비하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솔직함이다. 무조건 상사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닌 (예: 저는 평생 이곳에서 헌신하겠습니다)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아마존 직원들이라고 하여 모두가 본인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 역시 괜찮다.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앞으로 상담을 통해서 알아가면 되고, 커리어 목표가 정해지면 (물론 목표는 언제나 바뀌어도 괜찮다) 그다음부터는 어떻게 하면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상담을 하면 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목표는 언제 바뀌어도 괜찮기 때문에 너무 많이 고민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 순간 본인이 가고 싶은 방향을 정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나의 커리어 목표가 쿠팡 사장이라고 해보자. 그렇다면 가장 먼저 현재 내 상황과 목표의 거리를 계산해 본다. 그런 다음 단기, 중기, 장기적 목표를 세우면 된다. 단기적으로는 해당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나는 어떤 경력을 갖고 있는지 돌이켜보고 어떤 능력이 필요할지에 대하여 고민해보면 된다. 예를 들어 나는 지금까지 프로덕트 오너로서 제품을 만들고 운영하는 경험은 많지만 P&L을 관리하는 경험이 없을 수 있다. 그렇다면 중단기적인 목표로 P&L 경험을 쌓을 수 있는 Category manager 혹은 General manager 커리어 트랙을 타기 위해서 알아볼 수 있다. 사내 비슷한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상사에게 부탁해서 그 사람을 멘토로 만드는 것 역시 좋은 생각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걸어본 사람을 통하여 어떤 식으로 내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을지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5년 그리고 10년 뒤 내 모습을 그려나가면 된다.
반대로 상사 역시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단순히 팀원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다는 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 역시 이 팀원을 어떻게 성장시킬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대략의 계획을 성립해야 한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은 어려울 수 있겠지만 적어도 앞으로 2년 동안 해당 직원을 어떻게 성장할지 분기별 계획을 세워놓으면 좋다. 예를 들어 직원 A는 우리 팀의 에이스로서 적응도 훌륭하게 했을 뿐 아니라 혹시라도 내가 팀을 떠난다면 나의 대체자가 될 인재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나는 직원 A에게 보다 복잡한 프로젝트를 맡겨 본인의 능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그리고 1년 뒤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마무리한다면, 다음 커리어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관리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그리고 이 계획은 직원 A와의 커리어 상담을 통하여 끊임없이 수정해 나가면 된다. 뿐만 아니라 상사로서 본인이 도와줄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쿨하게 인정하고 도움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으면 된다. 내가 담당하는 많은 멘티들은 보통 그들의 상사를 통해서 먼저 연락을 받았다. 해당 상사들은 우리 팀원이 이러한 경험을 쌓고 싶어 하거나 이러한 일을 하고 싶어 하는데 나는 이러한 경험이 없다. 하지만 알아보니 네가 이런 경험이 많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 네가 멘토가 되어 도움을 줄 수는 없겠니 라는 솔직한 접근을 한다. 내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멋진 것이다). 되려 본인의 전문 분야가 아닌데도 아는 척을 하다가 나중에 들키면 더 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에 상사라면 직원에게 가장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줘야 한다.
나 역시 처음 상담을 하였을 때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무척이나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에 비하여 내 멘티들이나 팀원들은 꽤나 직설적인 편이다. 어떤 누군가는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배우는 게 부족한 것 같아. 그래서 그게 가장 고민이야" 혹은 "나는 창업을 할 건데 특히 AI 산업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라는 식으로 본인의 목표를 공유하는데 서슴지 않다 (그리고 나는 그게 너무 멋지다고 생각한다). 걱정과 다르게 먼저 본인의 목표를 터놓고 이야기하면 그다음부터는 어려움이 없다. 상사 역시 본인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모르는 부분이나 도움을 주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 알아보겠다고 말을 해주면 된다. 물론 매번 상사가 팀원이 원하는 프로젝트를 찾아줄 수는 없다. 결국 회사 생활이란 본인이 원치 않더라도 해야 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작은 프로젝트라도 혹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본인이 필요로 하는 능력을 배울 기회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제공하는 게 상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유퀴즈를 보는데 박진영과 방시혁이 나왔다. 워낙 엔터 쪽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집중해서 봤는데, 막상 해당 회차를 보고 나서 기억이 남은 것은 방시혁보다 박진영이었다. 특히 방시혁이 JYP에서 독립하기로 결정하자 박진영은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결정을 응원해줬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회사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고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는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박진영이 리더로서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를 다니는 이상 우리는 결국 월급을 받는 똑같은 직장인들이다. 하지만 우리 가슴 한편에는 본인이 꿈꿔왔던 목표가 있다 (없다면 세워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 가장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상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상사 역시 무작정 일이 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매니저로서 본인의 팀이 최고의 아웃풋을 내기 위해서 꼭 필요로 하는 업무라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