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번 주 글을 200,000 분이나 읽어서 주셔서 한편으로는 신기하고 또한 조심스럽네요. 예전처럼 몇 분만 읽는다고 생각하고 MSG 없이 편하게 적을 테니 부족하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MBA 입학을 하기 전 발리 여행을 간 적이 있다. MBA 시리즈를 읽으신 분들은 다 알고 계시겠지만, 같이 입학하는 친구들과 입학 전 무작정 여행을 간 것이다. 그중 미국 시스코에서 세일즈 관련 업무를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따로 휴가를 내지 않고 발리 여행을 왔다. 우리 모두 낮에는 서핑, 발리 마사지, 사원 투어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 친구는 호텔에 남아서 근무를 하다가 저녁에 다시 만나서 술을 마시고 여행을 즐겼다. 그런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원격 근무가 가능한지 물어봤고, 그 친구는 웃으며 대답해줬다.
회사와 직원들 사이에 믿음이 있으면 되지 않을까?
회사 팀원들 모두 다른 나라에서 근무 중이고, 필요에 따라서 화상 채팅으로 회의를 진행한다고 했다. 그 외 필요한 이야기는 메일이나 메신저면 충분하다고 했고, 이런 식의 원격 근무가 크게 불편하지 않는다고 했다. 솔직히 이 말을 듣고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제 2년 정도가 흐른 뒤, 이런 업무 환경에서 근무를 하고 나서야 약간의 이해를 한 것 같아 오늘의 글을 적는다.
우리 매니저의 말로는 (확실하지 않다는 뜻이다) 유럽 회사들은 출퇴근 시간을 기록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내가 오늘 몇 시에 출근했으니 몇 시에 퇴근하면 되겠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본인 말고 내가 일주일 동안 얼마나 근무했는지 그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다. 회사에서 정해놓은 시간은 8-5이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추어 출퇴근을 한다. 독일 국경 도시에서 출퇴근하는 우리 디렉터의 경우 아침 8시 전에 출근해서 5시가 땡 치면 "Good night!"이라며 도망치듯 나가고, 내 매니저의 경우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딸과 아침 시간을 보내고 10시가 넘어서 출근, 오후 7시가 되면 퇴근해서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한다. 야근이 없어서 좋겠다고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점심시간에 입에 샌드위치를 문 채로 근무를 하고, 퇴근 후 가족들과의 시간을 갖고 밤에 다시 업무를 진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는 face time은 의미를 잃게 되는 것이다.
삼성 근무 당시 우리 부서는 자율출퇴근제가 가능했다.
입사 당시 "자율출근제"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본인의 업무에 지장이 없는 한에서 출근하는 제도이다. 그 후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 근무 후 퇴근하는, 마치 실리콘 밸리에서 들을 것 같던 시스템이었다. 물론 매일 같이 사용하는 제도는 아니었지만, 개인적인 업무를 봐야 할 경우 눈치를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르고 도입된 자율출퇴근제 - 일주일 동안 업무시간을 40시간으로 채우면 되는 제도이다. 예를 들어 오늘 내가 4시간을 근무했다면, 남은 4일 중 4시간을 추가 근무해서 업무시간을 40시간으로 만들면 된다. 불필요한 잔업, 업무 능률 향상을 위해서 도입된 이 제도는 마치 가뭄 속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오늘 일이 없을 경우 그냥 집에 가도 된다는 것인데, 이를 반기지 않을 직장인이 어디 있을까? 물론 눈치가 안 보인다면 거짓말이지만, 내 기준에서 충분히 유용하게 썼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밤 10시까지 야근 후 퇴근을 하면, 팀원들에게 내일은 늦게 나올 것 같다고 메일을 썼다. 그 당시 한참 GMAT 공부를 하던 중이어서 그날은 정말 마음 편하게 공부를 하다가 다음 날 11시쯤 출근하곤 했다. 그렇다고 크게 뭐라고 했던 분들도 없는 것 보니 어떻게 보면 필자가 좋은 분들과 일을 했던 걸 수도 있겠다. 내부 사정으로 자율출퇴근제를 사용 불가했던 기간도 있었지만, 이런 자율적 제도를 경험한게 인상적이었다.
"관리의 삼성"에서 이렇게 편하게 근무하면 사람들이 나태해지지 않을까?라며 걱정하시던 관리자분들을 많이 봤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지만, 업무시간의 자율성이 능률을 저하시킨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각자 업무에 대한 주인의식이 있을 테니 정신줄을 놓고 밤새도록 술을 마신 후 출근하는 것도 아닐 테고 (대부분은), 본인 컨디션이 가장 좋은 상태로 출근을 할 수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이 제도를 적용한 후에 본인을 포함한 팀원들의 능률이 되려 좋아진 것 같다. 물론 이를 남용하시는 분들이 생기셔서 제도가 사라졌었지만, 아마 이때부터 필자의 부서에서도 출퇴근 시간에 대한 압박이 많이 줄어들었다.
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필자는 퇴근할 때마다 항상 큰 소리로 인사했다. 옆 큐비클 사람도 들어라! 나는 집에 갈테니!라는 마인드로 퇴근을 했는데, 내 동료들과 선배들은 이를 참 좋아하셨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는 항상 일이 많았다. 퇴근한다는 소리는 드디어 일이 끝나서 집에 간다는 말이었다. 한창 일이 많던 대리 진급 후 2년 동안은 휴가를 연 2회 밖에 쓰지 못했다. 그 당시 사용한 휴가 모두 GMAT 시험을 보러 다닌 것이니 얼마나 일이 많았는지 보여준다. 그 당시 우리는 자리에 앉아서 네이버를 보다가 퇴근 시간을 맞춘 게 아니라 정말 시간이 없어서 화장실 가는 시간을 줄여가며 근무를 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덕분에 크게 눈치를 보며 출근하거나 퇴근할 필요는 없었다. 퇴사한다고 선배들에게 인사를 드릴때 이제 퇴근한다는 스타트는 누가 끊어주냐는 말씀을 듣기도 했었는데 은근히 슬픈 포인트였다. 물론 삼성도 필자가 근무했던 초반에는 face time을 굉장히 중시했다. 야근 시간들을 비교해가면서 업무 능력을 평가하던 부서들도 있었으나 이제는 야근 시간을 비교하는 것을 아예 폐지했다. 물론 위 분들의 눈에는 더 늦게까지 근무하는 사람들에 더 정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능하다면 face time보다는 순수한 업무 능력으로 비교를 하려고 노력한다 (퇴사하기 전 필자의 부서는 완벽하지는 않았어도 개선하려고 많은 시도를 했다).
나 먼저 들어가 볼게. 오늘 친구가 한국에서 놀러 와서 술한잔하려고 해
이건 TMI다.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서 매니저에게 퇴근하겠다고 이야기를 하니 "응? 같이 가자는 소리야? 알았으니 어서 가서 술 많이 마시고 재밌게 놀아"라고 대답했다. 아마존의 퇴근은 간단하다. 책상을 정리하고 본인의 락커에 모든 짐을 넣는다. 그렇게 정리를 마치고 미소를 머금고 한마디만 하면 된다 "See you tomorrow". 출근도 마찬가지다. "아 미안 오늘 아침에 일이 생겨서 조금 늦었네"라고 할 필요도 없다. 원하면 인사를 안 해도 되고 아니면 가볍게 "Good morning"이면 충분하다.
아마존은 철저한 성과주의 회사다.
물론 아마존이 노력하는 직원들을 인정해주고 발전시키려는 회사인 것도 맞지만, 업무만 봤을 때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한다. 우리 매니저는 "I don't care where or how you work. You guys are smart people, I don't need to tell you everything"라고 자주 언급한다. 말 그대로 일만 잘하면 된다. 이는 아마존의 14 리더십 원칙 중 하나인 Earn trust가 밑바탕에 있어야 하는데, 동료들의 신뢰를 얻는 후부터는 완벽한 자율성이 보장되는 문화다. 유럽의 경우 입사 후 6개월간의 Probation (수습 기간)이 있다. 그리고 이 당시 업무를 따라가지 못 할 경우 바로 해고가 가능하다. 어떠한 퇴직금도 없고 입사 보너스를 다 뱉어내고 그만둬야 하니 굉장히 끔찍한 제도이다. 물론 차갑게 급 통보를 하는 것은 아니다. 동료들의 신뢰와 인정을 받지 못할 경우, 매니저는 면담을 통해서 개선 방향을 알려준다. 그 후 기회를 한번 더 주는데, 그래도 발전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경우 짐을 싸야한다. 상당수의 직원이 해고를 당한다는 소리를 듣고 6개월 동안 정말 열심히 근무했다. 하지만 그 기간을 통해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 후에는 출퇴근 시간 같은 것들로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다.
또한 발리에서 만났던 친구와 같이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경우 다른 나라 오피스에서 근무를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번 해 여름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주일동안 뉴욕 오피스에서 근무를 했고, 가을에는 친구들 결혼식 덕분에 한국 오피스에서 2주간 근무한 적도 있다. 이번 주 필자의 매니저는 두바이에서 근무를 하고 있고, 필자는 내일 집에서 근무를 할 생각이다. 어떻게 이런게 가능하지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의 모습이, 그리고 그 당시 친구가 했던 그 "믿음"이 무엇인지 이제서야 이해가 가는 것 같다.
하지만 자율성에는 그만한 책임감이 동반한다.
국내의 경우 노동법에 의해서 함부로 누군가를 해고할 수 없지만 (물론 방법을 찾아서 하는 회사들도 있지만) 미국 회사는 조금 다르다 (이건 아마존이 아닌 미국 문화라고 생각한다). 성과를 내지 못 하는 직원이 있을 경우 경고를 한 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냈던 성과나 경력과 상관없이 해고 통보를 내린다. 최근 프로젝트에서 같이 협업하던 친구 한 명이 해고 통보를 받았다. 프로젝트 진행 중 그의 input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고, 오랫동안 아마존에서 근무했던 친구였는데 한순간에 해고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 모두를 굉장히 긴장하게 만들었다. 완벽한 자율성과 그에 따른 무거운 책임감, 그게 아마존 직원들이 눈치 볼 필요를 없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유럽 사람들도 눈치를 본다. 직급이 어린 유럽 친구들은 웬만하면 본인 상사들보다는 늦게 퇴근하려고 한다 (물론 우리 매니저는 그런 것 1도 신경 쓰지 않는다. 굉장히 쿨하고 일을 너무 잘해서 배우는게 정말 너무 많다. 추후 우리 매니저 편을 따로 다루겠다). 결국 상사의 스타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때까지 같이 근무했던 유럽인 동료들을 보면 업무 시간을 위해서 본인의 삶을 포기하려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퇴근 시간이 되면 상사들이 일찍 집에 가니까 가능한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