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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강 Jan 03. 2019

회의를 위한 회의를 위한 회의

"도대체 회의를 하는 목적이 뭡니까?"


우리는 참 많은 회의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출근 후 스탠딩 미팅부터 주간보고, 타 부서와는 협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회의 등 종류도 다양하다. 때로는 토론을 하기 위해서 모이고, 때로는 팀원들이 어떠한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도 회의를 진행한다. 회의는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매개체이며 업무 상황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하는 모든 회의가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부장님이 회의한다고 모이시래요

대부분의 회의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팀원들은 회의실에 들어오고 막내 사원은 음료를 받아 적어 구매하러 간다. 정확한 회의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모두 한 곳에 모여 가벼운 농담으로 음료가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 손에는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우리는 회의를 시작한다. 제품 성능 향상을 위한 신규 아이템이 필요한데 아이디어가 없다. 기술적 포화상태에 들어간 제품에 어떻게든 새로운 변화를 가지고 오고 싶지만 누구 하나 선뜻 먼저 손을 들어 말하는 사람이 없다. 우리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를 풀고 있었고, 다양한 시도를 해봤기 때문에 모두가 답답한 마음이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우리는 모두 주목했고, 그 아이디어에 사람들의 경험과 의견을 덧붙여 심도 있는 대화가 이어진다. 회의 후 주관자는 회의록을 작성하며 실무진들과 함께 일정을 잡는다. 그 후 사원부터 과장까지 열심히 발로 뛰며 프로토타입 개발부터 평가까지 진행하는데, 제품 결과가 나오는 날만 간절하게 바라보며 우리는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우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같은 회의실로 입장한다. 프로젝터로 보이는 제품 성능에 대하여 토론하고, 어떤 방식으로 추가 평가를 진행할 건지 이야기한다. 또한 우리가 이 평가를 통해서 배운 것은 무엇이고 해당 기술을 특허로 전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하는데, 왠지 느낌이 좋다. 이 기술로 인하여 금년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모두가 흐뭇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본다.


아쉽지만 필자의 회의 경험들은 위 문단과 같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때로는 필요에 의해서 목적을 가지고 회의를 한 적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임원보고를 위한 주간보고를 위한 부장님을 위한 차장님을 위한 회의도 있었고, 제품 개발 방향이 보이지 않아 모두를 한 방에 넣어놓고 뭔가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다. 그 덕분에 필자는 회의를 굉장히 싫어했다. 업무량이 많던 시기에는 회의 목적이 뭔지 파악하고, 필자가 타업무를 진행하는 게 팀을 위해서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단호하게 회의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물론 무작정 들어가지 않는 게 아니라, 부장님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회의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자세한 설명을 사전에 드렸다. 전 직장에서의 업무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포지션이었지만, 때로는 회의로 인해서 실제 업무들이 지연되는 경우도 많이 봤기에 이 부분은 참 아쉬운 점이 많았다.


우리들은 이 수많은 회의를 꼭 해야하는 걸까?


시간 되면 잠깐 회의 좀 할까?

아마존에서 가장 듣기 힘든 말 중 하나이다.

최근 국내 기업들도 도입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존은 캘린더로 스케줄을 관리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필자 역시 입사 후 처음 써본 방식인데 초반에는 적응하기 어려웠다. 업무 시간표를 작성하여 회사 서버에 업데이트하면, 언제 자유 시간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타인에게 자동으로 공유된다. 회의를 할 경우 참석인들의 캘린더를 보면서 시간을 정하고, 캘린더 초대를 통해서 참석 확정 인원을 확인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캘린더 초대를 보낼 때 "회의의 목적"에 대해서 자세히 기입하는 것이다. 아무리 친한 동료라도 회의 제목만 보낸다면, "미안한데 무슨 일로 이 시간을 잡는지 자세하게 설명해줄래?"라는 연락을 받을 수 있다. 그만큼 타인과의 시간을 잡을 경우, 회의를 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이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결과는 무엇인지 적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초대를 거절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만약 본인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캘린더 시간을 사전에 잡아놓음으로 본인 업무에만 집중할 수도 있다. 캘린더는 개인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주고, 타인의 시간을 빌려야 할 경우 그들을 배려할 수 있게 해준다.


아마존은 개인주의 문화가 강하다. 이는 미국 회사 이기에 더 짙게 느껴지는 것 같은데, 그 덕분에 우리는 타인의 시간을 함부로 쓸 수 없다. 그게 본인이 담당하고 있는 직원의 시간이라도 말이다. 각자 맡은 일이 있기에, 우리는 그 업무 시간을 피해서 회의를 하고 어쩔 수 없는 경우 양해를 구해야 한다. 장점이라면 본인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이고, 단점으로는 타인의 시간을 맞추다 보니 업무 진행이 느려질 수도 있다. 필자의 경우도 초반 업무를 배우고 싶어 다양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지만, 대부분 캘린더 초대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3일 후에나 시간이 비어져 있었기에 이를 기다린다는 게 굉장히 답답했다. 물론 지금에는 시간이 많이 흘렀기에 회의를 사전에 준비하고, 정말 급한 경우 이 전에 말한 것과 같은 escalation을 통해서 회의를 진행한다.


우리 모두의 시간은 중요하다


타인의 시간을 빌리는 게 어렵기에 아마존에서의 회의는 효율적으로 진행된다. 필자의 경우 약간의 농담과 근황을 물어보는 small talk를 하는 편인데, 필자의 매니저의 경우 이 대화가 2분 이상 지속될 경우 "회의를 하는 이유가 뭐지?"라며 본론으로 들어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겨우 시간을 내서 미팅에 참석하기 때문에,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고 결과를 도출해낸다. 회의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하자면 아마존의 (이상적인) 회의는 먼저 목적과 의제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오늘은 EU 세법, 특히 abc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회의가 끝났을 때는 QWE가 있었으면 좋겠어. 관련 서류를 공유했으니 10분 동안 읽고 이야기하자.

서류를 정독한 뒤 우리는 끊임없이 토론한다. 서로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공유하고, 제품이 나아가야하는 방향에 대해서 끊임없이 조율하다가 캘린더 시간이 끝나면 다들 쿨하게 회의를 마친다. 정해진 시간 대비 마무리를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원하는 결과물을 가지고 회의실을 나간다. 그리고 혹여나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이 있을 경우 담당자들은 이메일을 통해서 마무리한다. 캘린더를 따르는 업무 방식의 경우 언제 하루 일과가 마무리될지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또한 시간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이 보장되기에 각자 효율적으로 근무한다. 허나 아마존의 모든 회의가 이성적이지 않다. 정보가 없는 캘린더 초대를 받은 적도 있고 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회의를 참석한 적도 있었다. 그럴 경우 "목적이 없는 거 같은데 의제가 확실해지면 미팅을 하자"라며 회의를 나갈 수도 있기에, 아마존에서 회의 사전 준비는 중요하다.


아마존의 회의 문화 중 가장 색다른 것은 주간보고였다.

아마존 주간보고는 1시간에 끝난다. 약 40장짜리 관련 PDF 파일을 받고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1시간 만에 다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각 페이지마다 세부 보고를 듣는 것이 아니라 특이사항 위주로만 듣는다. 이번 주 성공담 (success story), 주위사항 (call-out) 혹은 배워야 할 점이 있을 경우 서로 공유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큰 변화가 없을 경우 자세한 내용을 물어보지 않고 쿨하게 페이지를 넘긴다. 서로의 업무는 알아서 하겠지 라는 신뢰를 가지고 있었는데, 혹여나 누군가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을 경우 주간 보고 중 질문을 한다. 그리고 그 대답이 몇 분을 넘어갈 것 같고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내용이 아니라면 마찬가지로 오프라인 상에서 연락하자 라고 말을 하고 회의를 진행한다. 이렇게 진행하면 실제로 1시간보다 일찍 회의를 마칠 수 있다.


상사들이 업무의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을 때 어떻게 하냐고 질문할 수 있겠는데, 이럴 때 아마존의 글 쓰는 문화가 효율적으로 활용된다. 자세한 업무 상황을 알고 싶을 때 해당 담당자에게 연락하거나 서버에 올라와 있는 글을 읽음으로 스스로 확인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상사들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적어도 필자가 같이 근무하고 있는 매니저나 디렉터의 경우 타인의 시간을 빌리는 것에 있어서 상당히 조심스럽다.



우리 모두의 시간은 중요하다.

새로운 환경에서 근무를 하면서 배웠던 가장 큰 깨달음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막내 사원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들만의 업무가 있고, 이를 끝내기 위해서 온전한 본인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타인의 시간을 빌려야 한다면 그 시간에 대한 목적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고 양해를 구하는 것을 잊지 말자.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의 시간 역시 타인에 의해서 목적 없이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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