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강 Jan 06. 2019

닮고 싶은 나의 상사

"오늘도 한수 배웁니다"

직장에서 만난 첫 상사를 잊을 수 없다. 어리바리한 상태로 자리에 앉아 눈치만 보던 나에게 회사는 어떻게 돌아가고, 업무는 어떻게 하는지, 일에 대한 기본적인 틀을 줬던 사람인데 어떻게 쉽게 잊을 수 있으랴. 좋은 상사, 유능한 상사를 만나는 것도 그 사람의 운이다. 그런 사람을 만나 업무 능력을 배워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처음 배운 일에 대한 자세는 은퇴하는 나이가 될 때까지 잊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하지만 반대로 운이 나쁘면 어떨까? 평일 저녁, 강남역에 있는 아무 삼겹살 집에 들어가보면, 적어도 한 테이블은 상사에 대한 불평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부장은 꼰대야", "우리 차장은 자기 하기 싫은 거 있으면 다 넘기고 결과만 챙겨가" 등 필자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참 다양한 스토리를 들었다 (물론 나도 불평한 적도 있다). 이렇게 상사에 대한 불만들은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막상 좋은 상사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필자 매니저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이다.



필자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삼성 첫 상사의 경우, 진정으로 후배 사원들을 아꼈고 일도 잘하는 분이셨다. 특히 "나중에 내 팀원들을 어떻게 대해야겠다"라는 그림을 그리게 해 주신 분이었기에 그를 만나게 참 행운인 것 같다. 예를 들어 그분은 타 부서와 마찰이 있을 때 약간의 지체 없이 앞장서 팀원들을 보호하셨다. 직장인들의 가장 큰 동기부여가 무엇일까? 누군가에겐 매월 21일 따박따박 나왔던 월급일수도 있겠지만, 필자에게는 서로 의지하며 업무를 한다는 것 역시 굉장히 큰 동기였다. 덕분에 그와 같은 마음으로 후배 사원을 대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는데, 이는 추후 은퇴하기 전까지 바뀌지 않을 마음가짐이었으면 한다.


아마존에서 만난 상사의 경우 다른 스타일의 상사였다.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는 내 상사는 아마존 내에서도 일을 잘하기로 유명한 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업무 능력을 인정했고, 네트워킹도 잘하는 성격이기에 인맥도 넓다. 그는 입사 2년 반 만에 고속 승진했고 (보통 5년 정도 걸린다), 더 오래 걸리는 다음 승진 역시 누구보다 짧은 시간에 할 것이라고 모두가 점치고 있다. 회의를 들어가면 그의 카리스마에 모두가 긴장을 하게 되고, 디렉터 역시 그에게 결정권을 줌으로써, 그를 굉장히 신뢰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렇게 업무적으로 뛰어난 그에게서 닮고 싶은 점들은 무엇일까. 오늘은 그와 겪었던 에피소드들을 통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EP1: "다시는 밤늦게까지 일하지 마"

워라밸이 좋다는 유럽에서 새벽 3시까지 업무를 한 적이 있다. 관리하는 제품에서 버그가 발견되었는데, 다음 날 하필 임원보고가 있었다. 원인 파악과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서 야근을 했는데, 모든 일을 정리하고 메일을 보내니 3시가 넘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매니저의 성향을 잘 몰랐지만, 내일 출근하면 칭찬을 받겠지 라는 흐뭇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매니저는 출근 후 필자를 회의실로 불렀다. 그는 내가 엄청 늦게까지 일한 것 같다며 왜 이렇게 늦게까지 일했냐고 물었다. 오늘 임원보고를 위해서 이렇게 준비했다고 하자, 그는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으로 나를 당황시켰다.


문제를 알고 있는 게 중요한 거야. 물론 해결책을 찾아야지. 하지만 네가 이런 식으로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이렇게 일하는 걸 바라지 않아.

그 후 미팅에서 임원들은 버그에 대한 질문을 했고, 필자 매니저는 "어제 퇴근 전 이 버그를 확인했습니다. 현재 ABC와 같은 현상이 확인되는데 우리는 XYZ의 방식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예상하는 버그 해결 완료 시점은 XX 시간 후이며, 해결 후에는 DEF와 같은 방식으로 영향을 받은 분들에게 설명할 것입니다. 추후 문제 방지를 위해서 우리는 QQQ를 준비하고 있고, MMM을 적용할 것입니다". 어젯밤을 새 가면서 준비했던 내용이 상관없이 그는 30초 동안의 보고를 통해서 임원들을 안심시켰다. 회의의 달인인 매니저의 경우 본인 입에서 쓸데없는 말이 나오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덕분에 그의 보고는 짧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간단명료한 그의 설명을 들은 임원들은 "응 그래, 자세한 설명 고마워" 라며 질문을 마무리 지었다. 매니저는 이번 경험을 통해서 업무시간은 스스로가 (본인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줬고 (물론 문제의 크기에 따라서 밤을 새워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문제가 있을 경우 위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고하는 방식도 알려줬다. 장난기가 많은 매니저는 이후 1주일 동안 출근만 하면 "너 어제 밤늦게까지 일한 거 아니지?"라고 하며, 퇴근할 때는 "너 집에 가서 일할 거 아니지?" 라며 놀려댔다. 


EP2: "네가 실망시킬 사람들을 생각해놔"

(다른 회사도 같겠지만) 우리는 참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개개인의 프로젝트 외에도 이를 사용하는 고객들, 관련 부서만 해도 몇 개씩 되기 때문에, 매일같이 수많은 메일들이 우리를 향해서 날아온다. 하루는 매니저가 나와 내 동료를 데리고 회의실로 갔다. 그리고는 일이 많지는 않은지 질문을 하면서 본인이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설명해줬다. 특히 그중 우선순위에 대해서 처음으로 말을 했는데,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네가 일을 하면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수많은 업무 중에서 못할 업무들도 있을 것이고, 메일을 늦게 답변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매니저인 내 입장에서 너희들이 그러는 것은 당연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일을 할 때는 100명 중 어떤 90명을 실망시킬지 잘 고민하고 업무를 하면 좋겠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게 맞는 건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새로운 10명을 고르는 작업을 하면서 일을 하면 조금 더 편하게 일할 수 있을 거야. 참고로 그 10명 중 때로 나 자신이나 디렉터가 없을 때도 있을 거야. 그럴 때 너무 눈치 보지 않고 네가 맞다면 그렇게 밀고 나가". 그 날 그가 해줬던 말은 지금도 매일 아침 출근해서 노트북을 열 때마다 되새긴다. 실망시킬 사람들을 결정한다? 그게 우리가 복잡한 업무 상황에서도 평점심을 유지하는 방법이고, 또한 워라밸을 유지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EP3: "모든 피드백에 귀담아듣지 마"

아마존의 평가 방식은 매니저의 평가가 큰 영향을 미치지만,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받는 평가 역시 중요하다. 상사, 동료, 부하직원, 타부 서원 등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능력을 평가받는다. 입사 후 6개월 동안의 수습기간이 끝나고 (*룩셈부르크의 경우 6개월 동안 수습기간이 있다. 이 시기 동안 업무 능력이 기대 이하라면 회사는 큰 법적인 문제없이 직원을 해고할 수 있다), 매니저와 피드백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좋은 피드백들이 많이 와서 기분 좋게 읽고 있다가, 부정적인 피드백이 보여서 자세히 읽어봤다. 요약하면 "그는 생각보다 뭐가 중요한지 모르는 것 같다"라는 식의 글이었는데, 누가 쓴지도 알 것 같았다. 예전 론칭 프로젝트를 하면서 어느 개인 프로젝트를 지연시킨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딱 티가 나게 글을 적은 것이다. 이 내용을 읽고 매니저는 간단하게 설명했다. "나는 네가 누군가의 피드백은 항상 감사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 근데 이러한 내용들을 마음에 담아두지 마. 왜냐하면 아마존에서 모든 직원들은 개인 목표가 있어. 그런데 그 목표와 다른 업무를 해야 할 때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는데, 네가 받은 게 딱 그런 이유인 것 같다. 너는 우리에게 중요한 일을 한 것이고, 이 피드백을 준 사람은 본인의 일을 할 수 없어서 이 글을 남긴 거다. 그러니 항상 감사하되 너무 귀담아듣지 마. 너는 지금 잘하고 있어".



물론 우리 매니저라고 좋은 것만 있지는 않다 (실제로 스트레스도 많이 준다).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1:1 회의를 하기 전 긴장이 된다. 매니저와의 미팅은 질문에 대한 질문에 대한 질문의 답까지 준비해서 가는데, 이는 참 좋은 습관인 것 같다. 그럴 경우 크게 당황할 일도 없고 본인 제품에 대한 자신감도 부여하는 것 같다. 또 다른 부분으로 우리 매니저는 글 쓰는 트레이닝도 해준다. 그는 완벽한 문서가 될 때까지 끊임없이 피드백을 준다. 첫 번째 버전을 보내면 매번 "좋은 글이야. 내가 코멘트 조금 해놨어"라고 회신을 준다. 허나 읽어보면 모든 글에 줄이 쳐있다. 아마존은 글을 얼마나 잘 쓰는지 보다는 내용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우리 매니저는 "처음에 습관을 들여놓으면 항상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중요 문서의 경우 기본적으로 9번정도의 버전을 거친다. 그에게 트레이닝을 받아보니, 다른 아마조니안들의 글을 읽어보고 과연 이게 최선일까 라며 글을 깐깐하게 보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이는 토론 때에서도 이어지는데 그는 모든 이야기를 100%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질문을 한다. 예를 들어 "이러한 문제로 인해서 저러한 일을 하려고 해".라고만 이야기한다면 "도대체 이러한 문제라는 게 뭐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줄래?"라는 식으로 모든 내용을 확실하게 이해할 때까지 파고드는 스타일이다. 이 역시 필자 역시 습관화가 되어 개인적인 대화를 할 때도 주제가 분불명하거나 내용이 확실치 않으면 계속 파고는 습관을 만들어 준 것 같다. 이와 같이 그는 정말 완벽주의자이다. 덕분에 나는 긴장하고 피곤한 회사 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이렇게 깐깐한 상사가 필자는 너무 좋다. 특히 처음 입사하고 첫 문서를 작성할 때 그가 문서마다 적용해야하는 각도와 Spacing을 알려줄 때 오히려 "나랑 비슷한 과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에 들었다.


모든 사람들은 배울 점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상사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해보고 그것을 습득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물론 필자 매니저 역시 단점들도 있다. 단점 중 하지 말아야 하는 점은 없는지 고민하고 장점은 어떻게 습득할 수 있는지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나도 우리 매니저 같은 사람, 그리고 언젠가 우리 매니저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회의를 위한 회의를 위한 회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