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은 쉽지 않구나"
미국 출장을 다녀오느라 글을 적지 못 했네요. 월요일 새벽에 출발해서 토요일 아침에 돌아오는 강행군을 했는데, 시차에 적응하자마자 돌아온 것이라서 아직도 정신이 없습니다. 이번 출장에서 배우고 느낀 게 많아서 오늘은 아마존에서의 출장 경험에 대하여 적어볼까 합니다.
아쉽게도 삼성을 다니면서 해외 출장을 다녀본 적이 없다.
연구개발팀 소속이었던 필자의 경우 매일 아침 같은 시각 같은 장소로 5년 동안 출근했기에, 다른 환경으로 떠나는 "출장"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회사 카드로 저녁도 사 먹고 호텔에서 일하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서 그들이 진짜 어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사실 별생각 없이 출장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아마존에서는 유럽, 미국 팀들과 업무를 진행하다 보니 얼굴을 보고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있을 때마다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특히 중요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모든 내용들을 파악하고 어중간한 내용들을 확정하기 위해서 Offsite (워크숍)을 했었는데, 실제로 출장을 가면 놓칠 수 있는 부분까지 꼼꼼하게 확인할 수 있고 의견 차이에 대해서도 빠른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미국 출장의 경우 경험해보고 꺼려하게 되었는데, 시차와 장기간 비행에서 오는 피로감 때문이다. 아마존은 Frugality (검소함)의 회사이다. 비행기 티켓은 아무리 높은 직급이라도 비즈니스를 끊어주지 않는다. 국내 기업 임원급 되시는 분들도 이코노미에서 노트북으로 일을 하면서 출장을 잘 다니신다. 아무래도 미국, 특히 시애틀이 아닌 다른 도시에 가게 되면 비행기를 여러 번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피로감은 두배가 된다. 처음에는 엄청 신났지만 미국 출장을 가야 하는 일만 생기면 장기간 비행이 두려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검소함이 정말 좋은 답안인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검소함에서 얻는 이익 vs. 장기간 비행에서 오는 업무 능력 저하). 그렇다, 사실 필자는 비즈니스가 타고 싶다.
이번 여행이 특별한 이유는 처음으로 우리 매니저와 함께 출장을 다녀온 것이다. 룩셈부르크에서 워크숍을 진행한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비행기를 타고 같은 호텔에 지내면서 출장을 다녀온 게 처음이었다. 이번 출장의 목적은 2019년도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하여 core team들끼리 협의 및 토론하는 자리였다. PM/UX/Tech 팀들이 모여서 토론했던 이 출장은 결과물이 기대 이상으로 잘 나온 것 같다.
출장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새벽 6시 공항에 도착한 필자는 도착 후 비행기 취소 소식을 듣게 되었다. 확인해보니 다른 일행들은 벌써 알고 있었고 (항공사는 필자한테만 메일을 주지 않았다), 1시간 후 다른 비행기를 타고 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는데 프랑크푸르트에서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일행 중 한 명은 여권 추가 검사 때문에 비행기 탑승이 불가하게 되었고, 그녀 혼자 다음 비행기 타고 왔다. 두 번의 환승과 약 20시간의 비행을 거쳐서 도착한 우리는 맥주로 시차를 날려버렸고, 다음 날 아침부터 쉬지 않고 3일간 회의를 진행했다. 글 쓰는 회사인 아마존의 회의이니 각자 담당하는 제품에 대한 계획에 대한 글들을 적어왔고, 서로의 의견을 덧붙이며 제품의 완성도를 높여갔다. 또한 테크팀들도 참석하여 비즈니스 팀이 가고자 하는 2019 비전에 대해서 확실한 설명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렇다면 이번 출장에서 느낀 세 가지는 뭐가 있을까?
(1) 아마존의 까는 문화에 대한 새로운 면을 본 것 같다.
아마존은 Social cohesion (사회적 응집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관계는 중요하고 같이 일을 하는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큼 회사 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필자가 제일 중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허나 혹시라도 서로의 관계 때문에 일에 대하여 반대하지 못하거나, 윗사람에게 직언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공"과 "사"의 구분을 중요시한다. 아마존의 회의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이 있다면 언제든 반대한다고 크게 소리쳐도 의가 상하지 않는다 (물론 삐지는 사람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워크숍은 까는 문화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서로 물고 뜯고, 다시 물어보고, 왜 이런 식으로 업무를 진행하는지 끝까지 추궁하는 회의들의 연속이었다. 덕분에 본인의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담당자는 땀을 흘려가면서 싸워야 했고 그 사람들의 피드백을 주워 담아서 회의를 마무리지었다. 물론 까는 문화가 있는 회사이지만 같은 core team끼리 이렇게 심하게 깐다고? 할 정도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물론 무조건 이유 없이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주장에는 논리와 경험이 녹아내려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당신의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무시당할 수도 있다. 그렇게 1시간에서 2시간 동안 쉬지 않게 토론을 하고 나면 모두 진이 빠진다. 그리고 다음 회의를 준비하는데, 다시 돌이켜보면 그 짧은 시간에 본인들이 갖고 있는 경험을 최대한 열심히 상대방에게 전수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밖에서 보면 거칠어 보일 수 있겠지만 이를 통해서 제품을 바라보는 관점이 더 다양해진다. 서로의 제품을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모든 팀원들이 싸우는 나름 이상적인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런 1시간짜리 회의는 지난 1주일 동안 고민한 것보다 좋은 아이디어들을 준다. 또한 회의의 끝과 동시에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하고 다음 회의를 준비한다. 신기하게도 회의가 끝나고 나면 모든 "공"이 사라지고 순수하게 "사"만 남는다. 누구 하나 삐지는 사람 없이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This is how we show we care and love each other
무조건 큰 소리 지르고 싸우는 게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토론은 "논리"가 없으면 잡아먹힌다. 모든 말에는 논리가 있어야 하고 근거가 있어야 한다.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이 데이터나 일화 (data or anecdote)가 없다면 네 주장을 믿어야 할까. 이 제품에 대한 고객 스터디는 충분하게 되어있나. 이게 정말 고객을 위해서 맞는 방향일까 등인데, 이러한 토론을 통해서 제품을 싹 다 뜯어고쳐야 하는 케이스들도 보게 되었다. Social cohesion을 무시하고 서로 "공"적으로 "논리"로만 결론에 도달하는 회의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2) 출장을 통해서 팀원들과 굉장히 친해진다
위에서는 "공"적으로 일한다고 해놓고 "사"를 꺼내는 게 아이러니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는 하루 일과가 끝난 후의 이야기이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필자의 매니저와 출장을 온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같이 일을 하지만 보통 퇴근시간이 되면 따로 저녁이나 술을 마시기 않음으로 약간의 어색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번 출장을 통해서 강제로 붙어있고 식사를 같이 하면서 그 벽이 허물어진 것도 사실이다. 농담도 많이 하였고, 본인이 살아온 과정에 대해서도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했다. 특히 우리 매니저의 경우 삶에 대한 철학이 확실한 사람이라서 배울게 많은 여행이었다. 퇴근 후 우리는 항상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녔다. 점심은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토론하기 바쁨으로 저녁만큼은 맛있는 거 먹자라는 주위이다. 덕분에 지난 일주일간 저녁은 맛있는 멕시칸 음식과 바비큐 식당을 다니며 매일같이 포식을 했다.
이렇게 social event를 통해서 팀원들을 더 잘 알게 되면 오는 장점들이 많다. 서로 도움을 줘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하는 것이 보이고 또한 서로의 고민 (제품에 대한 고민)을 조금 더 진솔하게 토론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서로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아이러니 하지만 이렇게 "사"적인 관계를 돈독하게 함으로 더 "공"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3) 준비가 없는 출장은 무의미하다
출장은 3일 뿐이었다.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제품에 대한 토론을 하려면 본인에게는 몇 시간밖에 주워지지 않는다. 필자의 경우 하루가 주워져 수많은 글들을 작성해야 했는데, 실제로 회의 중 마지막 글을 나눠줄 때 미국 팀원들은 "너 이러다가 작가 되겠는데"라고 할 정도로 글을 많이 썼다. 그런데 회의를 하던 중 허접한 글이 있는 경우들이 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TBD (To be decided)이라는 내용이 많다면, 회의에서는 더 이상 토론을 하지 않는다. 정해진 것이 없기에 피드백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출장을 올 경우 Agenda와 owner를 확실하게 정해서, 부족함 없는 준비와 함께 회의실에 입장해야 한다. 출장이란 비행기와 호텔을 더불어 수많은 돈이 들어가게 되는데, 그 시간은 우리가 기존에 사용하는 업무시간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는다면 철저하게 무시될 준비를 해야 한다 (사실 좀 무서웠다). 어떻게 보면 출장은 MBA 과정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원하는 바가 확실하게 있다면 그만큼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게 출장인 것 같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인원들 (그 이상이 있을 경우 오히려 부작용이 난다)과 사전 준비가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필자의 경우 2월에 중국 출장을 가는데, 이번 출장 경험을 통해서 워낙 많은 것을 느꼈기에 준비를 철저하게 하기 위해서 벌써 준비를 시작했다.
인 앤 아웃에서 점심을 먹는데 매니저는 지나가듯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아마존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만큼, 언제 끝을 낼 것인지도 알아야 하는 것 같아". 최근 한 분이 퇴직하는 모습을 보시더니, 본인도 생각이 많았나 보다. 아마존은 굉장히 힘든 회사다. 잠잠하게 회사생활을 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본인들의 100%를 쏟는 회사다. 개인의 한계를 끊임없이 깨뜨려야 하므로 이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아마존의 업무 방식을 매우 싫어한다. 덕분에 퇴사율도 높다. 또한 퇴사한 인원 중 이런 업무 경험을 그리워하여 재취업을 하는 경우 많은 것을 보니 그만큼 매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번 출장을 통해서 필자는 일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본 것 같다. 전략 컨설턴트 출신인 필자의 매니저 역시 아마존에서 배운 일하는 방식을 컨설턴트일 때 알았다면 모든 프로젝트의 답이 변했을 것이라고 자주 이야기한다. 나름 회사와 일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싶을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회사인 것은 확실하다. 참 피곤하지만 배울게 많은 매력적인 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