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점수는요"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보게 된 예전 언프리티 랩스타 클립을 보고 주제를 정했습니다. 예전에 래퍼인 제시가 본인의 랩을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너네들이 뭔데 날 평가해"라면서 디스랩을 한 적이 있었죠. 오늘은 거기서 영감을 받아 열심히 일한 우리 모두가 매해 겪는 고과 평가 (Performance evaluation)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누군가의 객관성으로 포장한 주관적인 시점에서 평가를 받는다.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걷고 엄마라는 단어를 먼저 말한다는 이유로 신동 소리를 듣기도 하고,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피아노를 잘 쳤더니 피아니스트가 될 인물이라며 칭찬을 받기도 한다. 학교에 들어가면 매해 시험으로 평가를 받게 되는데, 이는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 졸업장을 받기까지 이어진다. 아직도 고등학교 마지막 시험이 끝나던 날을 잊지 못한다. 학교 앞 분수대에 뛰어들어 드디어 시험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는구나 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기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그리운 시간들이었는데 시험을 더 이상 봐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참 자유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필자의 예상과 다르게 대학교와 대학원까지 시험이라는 제도는 나를 매해 잊지 않고 찾아왔다. 그 후 필자는 사회로 뛰어들었고, 더 이상의 시험은 없었지만 같이 근무하는 상사들이 나에 대한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일을 잘하는지, 부족한 점은 없는지,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지 등 반년에 한 번씩 팀장님과 작은 회의실에 앉아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의 하루는 시험의 연속이며 답이 없는 더 어려운 문제 앞에서 생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전 직장의 경우 모든 평가의 마침표는 팀장님이 찍는다.
부서 간부들이 팀원들에 대한 평가를 올리면, 다양한 사항들을 고려하여 팀장님은 최종 고과를 결정한다. 이렇게 알고 있는 방식이지만 필자가 간부가 되기 전 퇴사를 했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평가 결과가 공유되는지 모르겠다. 다음에 부장님 만나면 물어보고 업데이트 하겠다. 그렇게 우리는 매해 특출 난 업무 성과를 낸 사람이 받는 A고과부터 되려 월급이 줄어들게 되는 무서운 하위 고과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성과주의 회사가 되기 위하여 이러한 고과 시스템을 적응한 이후, 능력에 따라서 특진을 할 수도 있게 되었고 되려 승진이 늦어질 수도 있게 되었다. 이러한 시스템은 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 할 수 있도록 좋은 동기부여가 되었고, 나이나 근속연수보다 능력으로 평가받는 문화를 형성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일을 못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타인에 의해서 결정되는 우리의 모습이 진정 공정한 평가라고 할 수 있을까?
이전 직장의 경우 고과를 결정할 때 상대 평가로 진행되었다. 아무리 일을 잘하더라도 나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낸 사람이 있다면 아쉽지만 부족한 고과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물론 누군가의 업적을 객관적으로 표현하기 어렵기에 절대 평가라는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되려 부작용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회사에서는 부서별 몇 명은 상위 고과를 받고 몇 명은 하위 고과를 받아야 하는 쿼터제를 사용했다. 이러한 방식은 평가받는 사람들만큼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본인들 눈에는 누구 하나 빠짐없이 열심히 일했기에 누구를 더 잘했다 라고 평가 내리기 어려운 순간들이 자주 발생한다. 게다가 팀 단위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다 보니 실무자들 사이에서 누가 더 뛰어나다 라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부서마다 다른 방식으로 "업무 능력"을 평가하고는 했다. 그중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야근 시간을 비교하며 고과를 내리던 시절이다. 물론 모든 부서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평가하지 않았고, 퇴사 전 이 방식은 모든 부서에서 금지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동일한 고과를 갖고 있는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승진시켜야 한다면, 그리고 둘 다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인간관계도 좋으며 충분히 승진을 할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예전에 술을 마시며 푸념하던 부장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 역시 그들만의 고충이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를 감히 평가한다는 그 무게감은 내가 들어보지 못했지만 그 무게가 작게나마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그 이후 팀장님은 다양한 시도를 통하여 더욱 공정한 평가를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일 년 동안 본인이 진행한 프로젝트를 요약하여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방식을 도입했는데, 부서 전원이 평가를 내리는 이 방식은 공평했지만 결국은 인기투표가 되어버렸다. 평가는 참 어려운 것 같다. 결국 누군가 한 명이 결정을 내려 그 사람의 "업무 능력"에 대한 "점수"를 줘야 하는데, 필자의 생각에 최종 결정권자인 팀장에게 주어지는 고과 대상자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한 것 같다. 팀장은 많은 프로젝트들에 대해서 완벽 숙지하고 있어야 하지만, 그 프로젝트를 어떤 실무자가 하고 있는지까지 보이지 않는 자리이다. 간부들의 1차 평가 점수를 반영하여 결정을 하지만, 결정권자와 고과 대상자의 사이에는 너무나 먼 공백이 존재한다.
우선 이를 위해서는 쿼터제를 없애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잘하는 사람이 3명이 있다면 잘하는 사람 3명 모두 상위 고과를 주는 것이 맞는 것이고, 일을 못 하는 사람들만 있는 부서에서는 상위 고과가 주어지면 안 된다. 개인적인 관계를 떠나 가장 객관적인 관점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평가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이 점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최종 결정권자에게 더 많은 정보를 주는 것이다. 단순히 상사의 평가만 받는 것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주변 동료, 부하 직원, 협력 부서 사람들에게 모든 정보를 받아 평가를 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물론 이 일 덕분에 팀장님은 수없는 평가 정보를 읽어야 할 수도 있다. 적어도 개인별 30분 이상은 투자하여 평가 결과를 내려야 하는 상황이 오는데, "윗사람이 어떻게 그 많은 시간을 투자하겠냐!"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 결정을 내리면 안 된다. 그 고과를 받기까지 직원들은 매일같이 출근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본인의 마음을 다잡으며 일을 했다. 그런데 그 행동에 대한 평가가 "30분"이라는 이유로 덜 공정하게 주어진다면 그게 정말 맞는 일일까? 이 정도의 애정을 갖고 평가를 할 수 없다면 그 결정권을 매니저에게 넘겨주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아마존 역시 한창 평가 기간이다.
이전 직장과 가장 큰 차이로는 수많은 사람들을 직접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존 14가지의 리더십 원칙이라는 잣대를 들이밀어, 그 사람은 어떤 강점이 있고 "단점"이 있는지 적어줘야 한다. 그리고 "단순하게 일을 잘한다, 못 한다"가 아니라 구체적인 예시를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이번 연도 A와 함께 B라는 프로젝트를 했어. A는 타 부서와의 협의를 이끌어 내는 강점을 여기서 보여줬는데, 본인이 모르는 내용이 있을 경우 서슴없이 필요 인력들을 끌어와서 문제를 해결했지. 이는 특히 아마존의 리더십 원칙 중 Bias for action을 보여줬다고 생각하는데 그 외에도 XYZ라는 프로젝트에서도 나는 그의 능력을 볼 수 있었어"라며 구체적인 내용을 적어줘야 한다. 현재 피드백을 기다리는 사람 수가 몇십 명이 되고 있기에, 요즘 시기의 아마조니안들은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시간이 될 때마다 다른 사람들을 평가해주고 있다. 특히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단점"이다. 누구든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뭔가 일을 잘하고 있는 것만 같고, 특별해진 기분에 우쭐해지기도 하다. 하지만 평가에서 중요한 것은 내년에는 어떻게 발전할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것 같다. 단점 역시 리더십 원칙에 빗대어 평가하는데, 모두들 진지하게 대상자에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개인적인 의견을 남긴다.
결국 이 많은 정보들은 매니저의 손에 넘어가게 되고, 그 모든 내용을 이해한 후 매니저는 평가를 내린다. 쿼터제가 아니기에 정해진 수의 고과는 없고, 우리는 매니저의 가장 소신 있는 결정을 받아들이면 된다. 물론 이 방식에도 단점은 있을 것 같다. 우선 본인이 평가받고 싶은 사람들을 정해서 피드백 요청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피드백 요청을 하지 않으면 안 좋은 피드백이 많이 없을 수도 있다. 아마존의 경우 발전해야 하는 내용을 써주는 것을 큰 미덕으로 생각하기에 걱정하는 것보다 많은 "단점"들을 들을 수 있겠지만, 완벽한 투명 유리가 아닌 약간의 탁함은 지워낼 수가 없게 된다.
올해도 우리는 어른들의 성적표를 받을 것이다. 본인의 생각보다 안 좋게 나오는 성적에 토라질 수도 있을 것이고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회사들은 가장 공평한 방식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노력하지만, 개선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면 평가를 통한 고과 대상자의 많은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고, "이 구체적인 정보를 정독하여 결정을 내려줄 결정권자"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 눈에서 결정되는 우리의 성적표. 어쩌면 객관적인 시험의 점수들이 그리워질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