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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강 Feb 25. 2019

후임이 들어왔다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하는 거지?"

최근 장기출장을 다녀오느라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설날을 맞이하여 휴가와 출장을 같이 다녀왔는데, 태국 싱가포르 한국 중국을 다녀오면서 많은 콘텐츠들을 구상했습니다. 이제 다시 룩셈부르크에서 일에 집중하며 지낼 것이기 때문에 꾸준하게 글을 올리도록 할게요!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싱가포르


최근 후임이 들어왔다. 기존 제품 운영을 맡을 새로운 팀원을 영입했는데 덕분에 필자는 신제품 개발 업무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후임에게 업무를 넘겨주거나 반대로 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오늘은 필자가 경험했던 삼성에서의 경험과 현재 아마존 후임에게 어떤 식으로 일을 넘겨주고 있는지, 그리고 그간 경험들을 통해서 배웠던 점들에 대한 이야기다. 


뭐가 그렇게 급해. 천천히 생각해

필자의 경우 삼성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신입사원 연수원과 사업부 교육을 받으며 회사생활을 배웠고 5년간 근무하면서 다양한 인원에게 인수인계를 했던 경험이 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서 배운 것 중에서 가장 큰 깨달음은 삼성이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기 참 괜찮은 회사라는 것이다. 입사와 동시에 회사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데 이 경험은 마치 어린아이를 앉혀놓고 누군가 a-to-z까지 다 알려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어 팀워크를 발휘하며 근무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하였고 심지어 회사 생활에 맞는 복장부터 회식에서 어느 자리에 앉는 게 가장 좋은지에 대한 팁들도 알려줬다 (그러나 실제 회식에서 자리배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이론과 실무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가 존재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삼성은 참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실제 업무는 연수 마무리 후 부서 상사분들에게 업무를 배웠는데, 우선 오늘 이야기는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루기에 같은 삼성이라도 전혀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참고 바란다. 필자가 근무했던 부서는 신입사원이 자주 들어오지 않는 부서였다 (필자의 경우 후임을 받기까지 약 3년이 걸렸다). 막내가 들어온다는 사실에 선배분들 모두 들떠 있었고 덕분에 첫날부터 무한반복의 커피타임을 갖게 되었다. 실제 업무는 상사분이 직접 가르쳐 주셨는데 하루에 30분씩 한 달 동안 제품에 대한 이론 설명 (연구개발이다 보니 제품에 적용되는 기본적인 이론을 알고 있어야 했다) 및 실무를 배울 수 있도록 시간을 할애해주셨다. 개인과외와 같은 교육 덕분에 업무에 필요한 내용들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고 모르는 내용들이 있을 때마다 바로 답을 구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 기간은 실무를 위한 좋은 토대가 되었고 추후 신규 제품들을 개발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상사분들은 특히 어떤 업무든 서두르지 말라며 "일은 평생 할 수 있으니 천천히 배우면 돼"라는 말씀을 해주시며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셨다. 티비에서 나오는 조직 간 수직적 관계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물론 수직적인 팀은 더 많다. 초기를 제외하고는 필자 역시 그러지 않은 팀에서도 일했다) 잠깐이었지만 인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받지 않으며 신입사원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당시 배움에 대한 감사함이 컸기에 필자 역시 후배들이 들어올 때마다 동일하게 약 30분씩 한 달 동안 개인과외를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단점은 있다. 특히 초반 업무를 천천히 배워가며 간접적으로 하다 보니 실제로 일을 배우는 속도가 느렸고, 내가 하지 않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할 것을 알기 때문에 업무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기가 어려웠다. 이를 흔히 ownership과 learning curve로 표현하는데 직접 업무를 하지 않고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실무를 배우는 속도가 눈에 띄게 더디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입사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필자는 다른 팀으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그곳의 경우 이전 부서와는 다르게 직접 일을 배워나가야 했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서 업무를 하다가 혼나는 일들도 자주 발생했고 해답을 찾기 위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물어가면서 일을 배우고도 하였는데, 어떻게 보면 참 극단적인 두 상황을 모두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 초반 스트레스는 대단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당시 실무를 정말 빠른 속도로 배웠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방식이 맞는 것일까? 일은 평생 배울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맞지만, 직원들이 이러한 생각을 갖고 업무를 한다는 것이 회사의 입장에서 썩 반가운 입장은 아닐 것이다. "천천히 배워도 돼. 다음에 하면 되지"라는 마인드는 직원들의 열정을 조금씩 사그라들게 하는 가랑비와 같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회사생활을 하면서 똑똑한 사람들이 참 많은 것에 비해서 직급이 높을수록 (아닌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편한 일들만 찾아서 하시는 분들을 많이 목격했다. 분명히 더 도전적이고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분들인데 "새로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 점에 대해서 상사분들에게 여쭤본 적도 있었는데 대부분 신입사원 때부터 "편한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도 말씀을 해주셨고 또한 새로운 것을 도전하면서 오는 책임감이 너무 무겁기에 되려 조용한 회사생활을 하고 싶어 하셨다. 그렇다면 이런 모습들이 그분들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회사는 직원들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배움의 기회를 제공할 의무가 없다. 업의 특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직원들을 뽑아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좋은 성과를 내주기만 바라면 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점점 직원들이 정해진 프로세스를 따르는 게 아닌 새로운 지표를 제시하는 역할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모든 게 급변하는 21세기의 어떤 회사던지 본인들의 미래를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그렇기에 직원들이 정해진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 회사에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올 수 있는 인재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가 한 가지 쉽게 간과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재란 입사 전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입사 후 올바른 배움을 얻는 것이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가 되는데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최근 <슈퍼 인턴>을 시청하는데 "회사가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거나 원래 하던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인재"를 찾는다고 했다. 과연 통합 며칠 정도의 만남을 통해서 그 사람이 그런 인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까? 기존 인력과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인재를 뽑는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방식으로 교육한다면 정말 그 다름이 유지될 수 있을까? 필자의 경우 그보다 영특한 인재를 찾은 후 어떻게 교육시킬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Learning curve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하여 직원들이 편안함에 익숙해지기보다는 본인이 스스로 도전을 하고 배움을 얻음으로 끊임없이 성장하는 "인재"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모두 신입사원으로 불리는 시절이 있을 것이다. 그 당시 우리는 마치 스펀지와 같아 모든 지식들을 쉬지 않고 빨아드렸던 시기라고 생각한다. 특히 신입사원 때 배우는 "업무에 대한 마음가짐"은 은퇴까지 따라오기에 선배의 입장에서, 상사의 입장에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깊게 고민하게 된 것은 예전 삼성에서 후배가 들어오고 난 후였다. 후배는 필자의 생각 이상으로 능력 있었고 무서운 속도로 많은 지식들을 습득했으며 필요에 따라서 새로운 아이디어들도 제시했다. 물론 사람의 성격이나 능력에 따라서 차이는 있겠지만 그 후 만났던 후배들 역시 필자의 예상 이상으로 더 영리했고 새로운 지식을 얻고자 하는 갈망이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과연 좋은 선배인가 라는 고민과 함께 어떻게 하면 후배들이 이 열정을 놓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 결론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업무를 배울 수 있는 환경"과 "어려운 문제들을 던져줌으로써 직접 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의 사이에서 후임에게 가장 잘 맞는 밸런스를 찾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그 사람을 잘 파악해야 하고 필요에 따라서 밸런스를 이동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같다. 물론 필자는 아직 갈 길이 아직 멀었지만 말이다.



법무팀이랑 세금팀과 함께 주기적인 회의를 진행하면 좋을 거 같은데,
네가 준비할 수 있지?

현 아마존 매니저의 경우 극단적인 "알아서 해"라는 스타일이다. 전형적인 미국 테크 회사에서 자주 보이는 스타일인데 그래도 주기적으로 힘든 일은 없는지 그리고 본인이 도움이 될 일은 없는지 자주 들여다보기도 한다. 입사 후 3일 정도 흘렀을까 런던 트레이닝을 받던 중 매니저의 메일을 받았다. 기존 본인이 담당하던 회의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회의들을 필자가 담당하면 좋겠다는 연락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제품에 대한 지식도 없었고 아마존이 어떤 식으로 근무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세법"이라는 전문적인 회의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회의를 진행해야 하는지에 전혀 감이 없는 상태로 회의를 진행해야 했고 처음 보는 높은 직급의 타부서원들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질문을 하면서도 이게 정말 필요한 질문인가를 여러 번 생각했고 첫 회의가 끝난 후 몰려오는 민망함에 혼자 얼굴이 붉어지고는 했다. 매니저가 원하는 회의가 맞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서 여러 번 피드백 요청을 하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그는 "괜찮은 거 같은데? 아직 초반이잖아. 내가 포맷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경험하면서 네게 가장 잘 맞는 방식을 찾아가는 게 좋을 거야"라며 답했다. 


삼성 같은 경우에는 모든 일에 업무를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프로세스가 있었다. 허나 아마존은 정해진 방식이 없다 보니 어떤 업무이던지 본인이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입사 3개월 차에 신규 국가 론칭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몰라서 매니저에게 도움을 요청하니 그는 "나도 한 번도 신규 국가 론칭 안 해봐서 잘 모르겠어. 네가 하고 알려줘"라고 대답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적어도 아마존에 입사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불분명한 상황에서 답을 찾아갈 수 있는 문제 해결 능력 (Problem solving)이 있다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초반에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을 배웠지만 지금 와서 나 자신을 돌이켜보면 "이게 정말 최선인가?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라는 고민하며 업무 방식을 끊임없이 개선하고 있다. 또한 매니저 역시 멀리서 지켜보다가 필요할 경우 비슷한 길을 걸어왔던 선배로서 짧고 굵은 메시지를 전달함으로 필자를 감동시키기도 한다. 2018년도 필자는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은 프로젝트와 론칭을 했는데 매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새로운 개선점을 배웠고 업무 방식을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끝없이 고민했다. 이는 분명히 이전보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도록 좋은 자극을 주었고 덕분에 2019년 역시 더 많은 배움이 있을 거라는 일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


물론 업무를 전적으로 맡김으로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steep 한 learning curve를 얻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고 생각한다.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를 결심하는 사람들도 간혹 보이고 (필자 학년에 그런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어설프게 업무를 하게 되어 프로젝트들이 실패나 딜레이가 되는 것들도 쉽게 볼 수가 있다. 다만 회사는 이런 실패의 경험 역시 직원들이 성장할 수 있다고 믿기에 책임을 묻기보단 실패의 원인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공부"의 기회로 삼기를 당부하고 있다.



후임이 들어왔다. 아마존에서 근무한지는 필자보다 더 오래되었지만 세금이라는 복잡한 내용을 접목시키는 제품을 담당하게 되다 보니 전적으로 필자가 업무를 가르쳐줘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 필자의 경우 이 전 삼성에서 배웠던 것과 같이 약 한 달 동안 개인과외를 해주고 있고 그와 동시에 우리 매니저가 했던 것과 같이 업무를 넘기면서도 본인의 스타일을 찾을 것을 당부하고 있다. 물론 이게 답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필자의 경험 중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후임을 가르치고 있고 이번 경험을 통해서 "후임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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