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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길 May 24. 2022

디자이너라고 다 컴퓨터를 잘 아는 건 아니니까

컴퓨터, 쫄지말고 이렇게 물어봐요

"예? 컴퓨터요? 아이맥이요!? 저 윈도우 밖에 안 써봤는데..."


디자이너에게 이상하게 따라 붙는 꼬리표가 있다. 바로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기기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날 것이라는 편견.


억울할 땐 조세호 짤이지!

사실 디자이너가 다른 사무직에 비해서 쪼~~~~~금은 더 익숙할 수 있다. 다루는 툴 자체가 포토샵부터 시작해서 일러스트레이터, 인디자인, 피그마, 프레이머, XD, 제플린 등등 전문적인 디자인 지식이 필요한 툴이 대부분이니까. 게다가 이제 UI/UX디자인을 더 깊게 할 수록 개발자 또는 데이터 전문가와 협업할 일이 생기면서 자연스레 관련 지식이 늘어나는 것도 당연하고.


그런데 이제 좀 억울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요리하는 사람은 대장간에서 칼 잘 만들게?

디자인 프로그램을 잘 쓰는 것과 그 프로그램을 구동하는 전자장비를 잘 아는 건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요리에 직접 쓸 칼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 전 디자이너라 컴퓨터는 잘 몰라요 ㅎㅎ'라고 하기엔 이미 일상에서, 업무에서 장비에 대한 이해도가 낮을 수가 없는 환경이 되었다. 전통적인 디자인 필드인 편집/인쇄/패키지 등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일지라도 예전에 비해 제작 환경이 더 고도화되고, 그에 따라 장비 성능도 중요해졌다. UI/UX/프로덕트는 또 말할 것도 없다. 피그마나 프레이머, 제플린, 프로토파이처럼 컴퓨터의 성능을 죽죽 빨아먹고 그래픽카드를 팔팔팔 돌려야 매끄럽게 움직이는 툴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사실 당연한 것이다. 기술이 발전할 수록 그를 뒷받침하는 기반 도구들도 좀 더 개선을 거듭하며 사양이 개선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스마트폰의 기술을 생각해보면, 예전 피쳐폰 성능으로는 택도 없는 것들을 우린 스마트폰으로 너무나 가볍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너무나 간편하게 모바일 웹을 쓰지만, 저 당시만해도 핵전쟁 버튼급 파괴력을 가졌던 피쳐폰 모바일 인터넷


아무튼 그래서 핵심이 뭐냐! 디자이너들도 결국 기본적인 컴퓨터와 그 주변기기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업무를 할 건지에 따라 장비의 사양을 맞추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하드웨어/소프트웨어적으로 어떻게 해결하면 되는지 최소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더 깊게 말할 것도 없고, 적어도 내가 포토샵으로 뭘 만들건데, 그걸 하려면 얼마짜리 노트북을 사야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이말이다.



일단 먼저 알아야 할 것


진리의 벤다이어그램. 이걸 벗어나는 사회 현상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내가 원하는 기기는 이 세상에 없다' 라는 걸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한다. 장비는 크게 3가지의 조건을 가진다.

성능이 뛰어난가?

저렴한가?

가볍고 휴대하기 좋은가?


잘 생각해보면 이 3개를 모두 만족하는 건 없다. 성능이 좋고 가벼우면 드럽게 비싸고, 싸고 가벼우면 인민에어가 되는 거고, 가격 대비 성능이 괜찮으면 철덩어리를 짊어지고 다녀야 한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맥OS와 윈도우OS 를 먼저 알아보자.

맥OS는 애플의 PC운영체제로, 아이맥과 맥북에 탑재되는 운영체제다. 너무나 당연한 걸 왜 알려주냐고? 원래 답변은 그런 것이다. 상대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전제를 해야 오해가 없기 때문이다. 맥북에 들어가는 것만 맥OS라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윈도우OS는 우리가 흔히 아는 그 윈도우 OS다.


차이점이라면, 맥OS는 애플이 직접 하드웨어(실물 노트북/컴퓨터 본체를 말한다)까지 만들어서 판매한다. 윈도우OS는 오픈소스다. 즉, 마이크로소프트가 말하길, '야, 내가 운영체제 만들었거든? 너네 컴퓨터 깡통 있으면 거기에 내꺼 깔아서 써라!' 라고 허용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맥OS를 넣은 샤오미 노트북은 없지만, 윈도우OS는 레노버, MSI, HP, 델, 삼성, LG 컴퓨터가 다 쓰는 것이다.


그러면    중에 어떤   나은가? 답은 '없다'. 10년전 쯤에야 맥북 쓰는 사람을 손에 꼽았고, 전문가의 전유물이었다. 게다가 우리나라 네트워크 환경과 호환성도  좋았지만, 지금은 2022년이다. OS로도 크게 불편함 없이 사용할  있다. 또한 디자이너들의  프로그램과의 호환성 문제도 옛말이다. 어도비는 이제 윈도우건 맥이건 상관없이 오류를 뻥뻥 터뜨린다. 피그마는  앱으로 출시해서 태블릿으로도 가능하고, 근성만 있다면 스마트폰으로도 가능하다. 예산이 된다면, 내가 익숙하다면, 또는 써보고 싶다면 원하는 걸 고르면 된다. 애플의 생태계에 대해선 다른 글에서 다뤄볼까 한다.


"근데 저 맥 처음 쓰는데..."

똑같다. 써보면 안다. 우리나라가 유난히 윈도우 보급율이 높아서 그렇지, 단축키도 얼추 비슷하고 쓰다 보면 운영체제 자체가 가진 기본적인 구동 원리가 익숙해진다. 대충 이건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겠네? 하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윈도우든 맥이든 어쨌든 컴퓨터 운영체제다. 콜라와 사이다 같은 것이다. 콜라만 먹다보면 당연히 사이다는 낯설다. 사이다도 똑같은 탄산 음료고, 맛이 다를 뿐이다. 개인 취향이다. 꼭 맥을 고집하지 않아도 되고, 윈도우를 산다고 눈치 줄 필요도 없다. 추천하는 것은 둘 다 쓰는 거지만...


아, 맥을 고집해야 하는 몇가지 이유가 있긴 있다. 맥에서만 지원되는 프로그램을 써야 한다면 어쩔 수 없다. 스케치나 파이널컷이라든가...이건 빌게이츠도 인정할 듯


진짜 본론으로 다시 들어가보자.



3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컴퓨터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맥/윈도우 중 원하는 운영체제를 골랐다면, 이제 이 다음의 항목들을 생각해보자.


1. 예산 -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 사실 100 미만에선 뭘 사도 비슷하다. 예쁜 거 사자.


2. 노트북/데스크탑, 또는 무게 - 클러치에 넣을 무게인지, 백팩 메고 다녀도 괜찮을 무게인지, 아니면 애초에 무게 상관없이 데스크탑을 살건지 라든가. 무게는 폼팩터를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기껏 다 골라놨는데 '아 사실 데스크탑 사도 됨' 하면 견적 봐주는 사람은 열뻗친다.


3. 내가 주로 할 작업 - 게임도 포함이고, 업무도 포함인데 여기서 중요한 건, '구체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포토샵할 때 쓸겁니다! 라는 건 매우 광범위하다. 잘 생각해보면, 포토샵으로 레이어 5개 이내에서 10픽셀 짜리 도트만 찍는 사람과, 포토샵으로 레이어 1500개씩 쌓아가면서 1만 픽셀짜리 대형 웹사이트 디자인을 하는 사람의 '포토샵한다' 의 레벨은 매우 다르다. 사진 보정도 비슷한 개념이다. 전면 카메라로 찍은 셀카 보정과, 한 장에 20mb가 넘는 raw파일 2천 장을 일괄 보정하는 건 같은 '사진 보정' 안에 있지만 그 성능 요구치가 오뚜기 카레와 카레 장인이 15시간 동안 고아낸 정통 카레의 차이급이다.


아마 대부분 이렇게 얘기한다. 아마 이걸 보는 당신도 한때 이렇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간단한 포토샵이랑...가끔 영화보고...피피티 만드는 거랑 인터넷하는 정도?'


영화도 540p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보는 것과, 4K 블루레이나 스트리밍을 보는 사람의 컴퓨터 사양은 매우 다르다. 의외로 영상 재생은 고성능 작업이다. 피피티도 10p 회사소개서를 만드는 사람과 50p 애니메이션 떡칠해서 만든 피칭 자료는 컴퓨터 팬 돌아가는 소리부터가 다르다. 팬 소리만 들어보면 이러다 노트북이 공중에 뜰 수도 있겠다 싶을 것이다. 상대방이 내 디자인 레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가정했을 때, 위의 내용을 반영한다면 저 파란 문장을 어떻게 다시 고쳐볼 수 있을까?


'상세페이지 디자인 위주로 포토샵을 쓰는데, 사진 보정은 안 합니다. 영화는 넷플릭스 주로 보고, 피피티는 회사소개서 작업하는 정도로 씁니다.'


덧붙이지면, 포토샵은 넷북에서도 돌아간다. 현존 하는 최고 사양 윈도우/맥 데스크탑에서도 포토샵은 돌아간다. 포토샵을 한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포토샵으로 '뭘' 하는 지가 중요한거다. 게임도 피카츄배구와 배틀그라운드 풀옵션은 엄연히 같은 게임이지만 다르잖아요.


위 3가지를 조합해야 내가 얼마만큼의 예산으로, 어느정도의 기기를, 어떤 사양으로 살 건지가 명확해진다. 정리하자면,


'100만원 이내에서 백팩 메고 다니기 무리 없는 무게 정도의 노트북이면 다 상관없습니다. 상세페이지 디자인 위주로 하는데 주로 텍스트랑 레이아웃 배치고, 가끔 일러스트로 아이콘 그리는 정도입니다. 넷플릭스 가끔 보고 인터넷 그냥 돌아다니는 용도로 필요합니다'

??? : 아 ㅋㅋ 들 수만 있다면 휴대용이라고 ㅋㅋ

얼마나 명확한가. 이렇게만 본인이 알고 있어도 컴퓨터 뉴비 냄새를 맡은 고인물들이 각종 브랜드와 각종 제조사, 각종 액세서리까지 군침 흘리면서 줄줄줄 읊어줄 것이다. 요약하자면,


(1) 예산 범위를 명확하게

(2) 노트북이면 무게는 어느정도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또는 데스크탑을 구하는지

(3)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목적으로 쓸 건지


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막상 쓰다 보니까 장비를 고르는 법 보다는 장비 고인물들에게 뉴비 떡밥 던져주는 법에 가까워졌지만, 아무렴 어떤가. 고인물들은 뉴비 소매넣기가 삶의 원동력인걸!

결론은, 디자이너도 기기에 문외한이면 커리어를 지속할 수록 버거워 진다는 뜻이다. 내 업무에 적합한 컴퓨터 사양 정도는 스스로 알아보고 배워보자. 이 또한 구글이 도울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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