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디자인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있다
디자인 일을 하다 보면 ‘이 정도면 괜찮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그 말은 언제나 타협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결심에 가깝다. 완벽한 결과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매번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하려는 과정 속에서 그 문장이 나온다. 완성이라는 건 대부분 일시적이고, 그때의 상황과 여건, 일정, 그리고 팀의 분위기 같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힌 결과다. 그래서 어떤 날은 똑같은 결과물을 보고도 만족하기도 하고, 또 다른 날은 이상하게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이 정도면 괜찮다’는 건 결과가 아니라, 그날의 나를 설득하는 문장에 가깝다.
조금이라도 부족해 보이면 다시 고쳤고, 피그마 안의 정렬이 1픽셀이라도어긋나면 이유 없이 불안했다. 여백의 간격이나 버튼의 높이, 텍스트의 자간 같은 디테일들이 전부 내 책임처럼 느껴졌고, 그걸 바로잡아야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디자인은 정리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의 문제라는 걸. 모든 걸 맞춰도 여전히 어색한 순간이 있고, 정답에 가까워질수록 불안이 커질 때도 있다는 걸.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완벽을 향해 달려가기보다, ‘지금 이 정도면 괜찮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 말에는 약간의 포기가 섞여 있고, 약간의 위로가 들어 있다. 하지만 동시에 책임도 있다. 완벽을 포기했기 때문에, 대신 일관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 다음 프로젝트에서도 같은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하고, 누가 대신 들어와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괜찮다’는 말을 그냥 흘려버리지 않기 위해선, 그만큼의 기준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서 이 말은 결국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신중하게 쓴다. 나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의 한계를 인정하고도 그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뜻으로.
가끔은 그 말이 너무 익숙해져서 무뎌질 때도 있다. 반복된 타협이 습관이 되고, 타협이 쌓이면 기준이 흐려진다. 그래서 어느 순간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피그마를 열고, 처음부터 정렬을 맞추고, 색상 토큰을 확인하고, 다시 화면을 바라보며 묻는다. 정말 이 정도면 괜찮은 걸까. 여전히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없다면, 아직 괜찮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게 확인된 날에는 다시 조금 고친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쌓인다.
디자인에서의 ‘괜찮다’는 말은, 끝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중간표시다. 완벽이란 단어가 주는 피로감 대신, 일관이라는 단어로 자신을 지탱하기 위한 장치다. 어쩌면 그게 우리가 이 일을 오래 하게 만드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완벽해지려는 마음이 아니라, 괜찮아지는 연습을 계속하는 마음. 결국 좋은 디자인은 완벽에 가까운 결과가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일관된 판단을 유지한 흔적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