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느라 생각할 시간을 잃어버렸다.
슬랙 알림이 떴다.
누군가 내 이름을 멘션했다. 평소처럼 즉시 클릭해 들어가려다가, 잠시 멈췄다. 문장을 읽자마자 바로 답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생각을 좀 정리해야 할 것 같았고, 다른 메시지들도 잔뜩 쌓여 있었다. 그래서 ‘이건 조금 있다가 답하자’고 마음속으로 미뤘다. 그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결국 그 주가 끝날 때까지 그대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며칠 동안 내내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약속을 어긴 것처럼, 혹은 숙제를 내고 잊은 학생처럼, 계속 그 알림창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이상한 건, 그 메시지는 나한테 시급하게 답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었고, 내게만 의존하는 일도 아니었다. 다른 팀원이 이미 이어서 대화를 하고 있었고, 실질적으로는 나의 답변이 없어도 업무는 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읽고도 답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불편했다. 읽음 표시가 남았다는 건 나도 알고, 상대도 아는 일이니까. 마치 마음 한켠에 ‘읽음’ 표시가 지워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가끔은 일부러 슬랙을 열지 않거나, 읽지 않은 척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잠시 편해지지만, 결국 그 편안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이런 감정은 단순히 알림 때문만은 아니다. 슬랙이라는 툴은 일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존재의 증명처럼 느껴진다. 메시지에 반응하지 않으면, 내가 지금 일하고 있다는 증거가 사라지는 것 같다. 특히 비대면 환경에서는 더 그렇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으니, 누군가의 ‘응답’이 곧 그 사람의 ‘존재감’이 된다. 그때부터 답장은 일종의 사회적 의식이 된다. 누군가의 말에 반응해야만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는 소속감이 유지되는 듯한 묘한 불안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이런 식의 즉각적인 반응이 계속되면, 생각할 시간이 줄어든다. 모든 대화가 알림 단위로 쪼개지고, 그 안에서 우리는 점점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답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피드백을 주는 대신 리액션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대신하고, 회의록을 쓰는 대신 슬랙 스레드로 결론을 흐린다. 점점 우리는 대화를 통해 무언가를 정리하기보다, 대화를 ‘소화해야 하는’ 존재로 변한다. 마치 인박스를 비우는 것처럼, 메시지를 처리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슬랙을 좋아한다. 특히 ‘일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답변 속도가 빠르고, 말투가 명확하고, 언제든 맥락을 이어받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하지만 그 ‘즉시성’이 늘 효율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답이 느리다. 그들은 단어를 고르고, 방향을 고민하고,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의 팀 문화에서는 그런 사람보다 빠른 사람이 더 유능하게 보인다. 마치 대답의 속도로 실무 감각을 측정하는 듯한 분위기다.
나 역시 그런 기준 속에서 자랐다. 슬랙이 처음 도입됐을 때만 해도,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푸시 알림이 뜨면 곧장 확인했고, 짧은 답이라도 남겨두는 걸 예의처럼 여겼다. 그러다 보니 점점 ‘항상 온라인’인 사람이 되어갔다. 그건 신뢰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사실상 자발적인 피로의 루프였다. 밤늦게까지도 대화가 이어지면 ‘내가 이걸 봤으니’ 답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겼고, 결국 새벽에도 메시지를 쓰는 일이 잦아졌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감시하는 구조에 들어간 셈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때부터는 알림이 울리지 않아도 슬랙 창을 열었다. 마치 마음속에 작은 센서가 있어서, 잠깐이라도 대화가 멈추면 불안해졌다. 그렇게 며칠씩 이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의 여백이 사라졌다. 슬랙 밖의 세계가 점점 좁아지고, 대화는 많아졌는데 말은 줄어드는 이상한 상태가 됐다. 그제야 깨달았다. 슬랙은 결국 말을 잘하는 도구가 아니라, 말을 많이 하게 만드는 도구라는 걸.
그래서 요즘은 조금 다르게 해보려 한다. 알림을 꺼두고, 일부러 읽지 않은 메시지를 남겨두는 연습을 한다. 그게 예전의 나에게는 무책임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생각의 간격으로 보이기도 한다. 모든 대화에 즉시 반응하지 않아도 팀은 잘 굴러가고, 세상은 그대로 흘러간다. 어쩌면 우리가 두려워하던 건, ‘답하지 않음’이 아니라 ‘잊혀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고 내가 대답하지 않았을 때, 그 사이에 생기는 공백이 불안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공백이야말로 진짜 생각이 자라는 자리다.
일을 하다 보면, 누군가의 메시지에 바로 답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예전엔 늘 변명을 했다. “지금 회의 중이라 늦었어요”, “방금 봤어요.” 그런데 이제는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으려 한다. 늦게 답한 건 단지 늦게 생각했기 때문일 뿐이다. 슬랙은 대화의 도구지만, 생각의 도구는 아니니까.
결국 중요한 건 답변의 속도가 아니라, 그 사이에 어떤 생각을 했느냐이다. 빠르게 답하는 사람이 아니라, 늦게라도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슬랙에 답장을 안 했다고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어쩌면 가장 성실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성실함이 자신을 괴롭히지 않도록, 가끔은 일부러 답하지 않는 연습도 필요하다. 일에는 대화가 필요하지만, 대화에는 침묵도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