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더 소중한 사람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실력이 좋아지는 속도보다 리듬이 무너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처음에는 업무량이 많아서 그런 줄 알았고, 나중에는 조직 구조가 복잡해서 그런 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유는 훨씬 단순했다. 일을 잘하려는 마음은 언제든 가속할 수 있지만, 일의 리듬은 마음과 달리 쉽게 뒤틀리고 쉽게 흔들리고 쉽게 지쳐버린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어떤 시기에는 분명 실수도 없었고 산출물도 깔끔했는데 이상하게 하루가 끝났을 때 마음이 조금 기울어져 있는 날이 있었고, 반대로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은 날에도 묘하게 안정감을 느끼는 때가 있었다. 그 차이는 능력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리듬에서 생긴 것이다.
업무 능력은 노력과 훈련으로 금방 오른다. 새로운 툴을 배우거나, 더 좋은 레퍼런스를 익히거나, 실수한 포인트를 다시 정리하는 식으로 능력은 비교적 빠르게 쌓인다. 그런데 리듬은 의외로 그 어떤 기술보다 관리하기 어렵다. 리듬은 내 마음의 상태와 팀의 온도, 메시지를 확인하는 속도, 회의의 환경, 피드백의 톤, 하루의 시작과 끝 같은 사소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능력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무너진다. 그래서 일을 잘하는 사람도 리듬을 잃는 순간 갑자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반대로 평소보다 느린 사람도 리듬을 잡은 날에는 놀라운 속도로 집중한다. 이 차이를 단순히 실력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시점부터 나는 리듬이라는 단어를 더 자주 떠올리기 시작했다.
팀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자주 본다. 일을 잘하는 사람과 오래 버티는 사람 중 누가 더 조직에 남는가를 생각해보면 답은 의외로 명확하다. 버티는 사람이 남는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지만, 리듬을 잃었을 때 다시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공백 동안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바람에 더 쉽게 소모된다. 반면 업무 속도가 아주 빠르지 않아도 일정한 패턴으로 꾸준히 일하는 사람은 한 시즌이 지나고 또 다른 시즌이 와도 그 속도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새롭고 복잡한 상황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균형을 잡고, 조직의 변화가 있어도 무너지지 않고, 팀의 문제를 과도하게 자신에게 들이대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한 조직의 중심이 되는 사람은 놀라운 성취를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꾸준히 같은 리듬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개인에게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초반에는 더 잘하고 싶고 더 빠르게 성장하고 싶어서 스스로를 밀어붙이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그 속도가 나를 지치게 한다. 실력은 계속 오르는데 마음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온다. 이것이 계속 반복되면 일하는 방식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그때부터는 실력을 키우는 것보다 리듬을 되찾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해진다. 리듬을 잃으면 판단이 흐려지고 집중이 흔들리며 작은 일에도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는 잘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그냥 하루를 무사히 넘기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게 되고, 그때부터는 좋은 결과를 내도 만족하기 어렵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실력을 쌓는 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장과 성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고, 그 감정들이 쌓이면 결국 리듬이 무너진다. 오랫동안 실무를 해온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말하는 것도 비슷하다. 조직을 오래 경험해보면 실력의 차이보다 리듬의 차이가 팀의 분위기와 결과에 더 큰 영향을 준다고. 결국 일이라는 건 잘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끝까지 남는 과정이라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하게 된다.
리듬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대단한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루를 무너뜨리는 요소를 크게 만들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감정을 오래 붙잡아두지 않으며, 완벽하려는 마음이 스스로를 해치지 않도록 적당한 위치에서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업무의 속도를 조절하고, 필요하다면 잠시 멈추고, 팀의 감정이 자신에게 과도하게 들러붙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한다. 결국 리듬은 단단함이 아니라 느슨함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을 오래 하다 보면 결국 누구나 비슷한 결론에 도착한다. 실력을 높이는 일보다 리듬을 유지하는 일이 더 어렵고, 동시에 더 중요하다. 한 번의 성취보다 여러 번의 안정이 더 큰 힘을 만들고, 좋은 순간보다 무너지지 않는 시간이 훨씬 더 오래간다. 그래서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리듬을 잃지 않는 사람이 끝까지 남는다. 실력은 언젠가 다른 사람도 따라잡을 수 있지만, 리듬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길러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