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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시야를 이해하는 일

좋은 협업은 서로의 시야를 확인하는 과정

by 김태길

협업을 오래 하다 보면 결국 중요한 건 상대가 얼마나 잘하는가보다, 그 사람이 어떤 시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를 아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문제를 보더라도 누군가는 이유를 먼저 보고, 누군가는 해결책을 먼저 보고, 또 어떤 사람은 문제보다 사람의 감정부터 살핀다. 이 차이는 단순한 관점의 차이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 전체를 좌우하는 지점이라서, 같은 팀 안에서 일하면서도 서로의 시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데 계속 엇박자가 난다. 결국 좋은 협업은 상대의 실력보다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디자인을 하다 보면 팀마다 서로 다른 언어로 일하고 있다는 걸 자주 느낀다. 기획자는 흐름을 보고, 개발자는 구조를 보고, 디자이너는 형태를 보고, 마케터는 시장을 본다. 모두 같은 화면을 보고 있지만 서로의 포커스는 균일하지 않고, 그 차이 때문에 작은 결정 하나에도 충분히 다른 해석이 붙는다. 그래서 회의를 여러 번 반복해도 결론이 쉽게 나지 않는 날이 있고, 어떤 팀은 작은 기능 하나를 두고도 긴 시간을 소비한다. 사실 이때 필요한 건 더 많은 설명이나 더 자세한 문서가 아니라, 상대가 지금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생략하면 대화는 끝없이 빙글빙글 돌고, 서로를 설득하려고 하다가 감정만 조금씩 쌓인다.


상대의 시야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대부분의 팀이 결과물을 중심으로 대화하기 때문이다. 화면이나 문서를 기준으로 이야기하면 틀린 것과 맞는 것이 명확하게 나뉘고, 의견 충돌은 곧 실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갈등이 실수 때문이 아니라 시야의 차이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리스크를 먼저 보고 전략적으로 판단하고, 어떤 사람은 세부 개선을 통해 완성도를 높이려 하고, 누군가는 전체 일정 안에서 안정적인 선택을 하려고 한다. 이 서로 다른 시야가 섞일 때 좋은 결과가 나오지만, 그 시야를 공유하지 않으면 같은 문제를 바라보면서도 전혀 다른 해석으로 움직이게 된다. 결국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협업은 자꾸 엇나가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는데 감정만 조금씩 불려진다.


팀을 오래 지켜보면 시야가 넓은 사람이 반드시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당한 범위에서 집중하는 사람이 더 안정적인 결과를 만드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각자의 시야를 서로가 알고 있는가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은 전체 플로우를 보며 우선순위를 판단하는데, 다른 사람은 작은 인터랙션 하나에 집중하고 있으면 두 사람이 내리는 판단의 기준은 완전히 달라지고, 이를 모른 채 의견만 교환하면 둘 중 하나는 ‘왜 저렇게까지 말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반대로 서로의 시야를 알고 있으면, 같은 의견 차이도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그리고 이 이해가 쌓이면 협업의 속도는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작업의 질 역시 안정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같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시야가 있을 때 팀은 더 강해진다. 중요한 것은 서로가 자신의 시야를 숨기지 않고 말할 수 있는 환경과, 그 시야를 존중해주는 구조다. 예를 들어 디자이너가 세부 요소를 더 신경 쓰는 이유를 설명하면 기획자는 전체 플로우 조율에 그걸 반영할 수 있고, 개발자가 기술적 제약을 솔직하게 말하면 디자인 단계에서 그 흐름에 맞춰 조정할 수 있다. 이렇게 서로의 시야를 공유하는 순간부터 팀은 하나의 화면을 단순히 나누어 작업하는 조직이 아니라, 한 문제를 서로의 방식으로 해석해 다시 합쳐가는 팀이 된다.


결국 좋은 협업은 상대의 시야를 추측하는 일이 아니라 확인하는 일이다. 상대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지, 지금 어느 지점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면, 설득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조율은 빠르게 정리된다. 의견 충돌은 여전히 있지만 감정 충돌은 줄어들고, 결정이 어렵던 부분도 훨씬 편안하게 넘어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이유도 모르는 채 서로의 감각이 맞아 들어가는 순간이 생기는데, 그때 비로소 팀이 리듬을 찾는다고 느끼게 된다. 협업의 핵심은 결국 실력이 아니라 시야다. 어떤 일을 함께해도 흔들리지 않는 팀은 서로의 시야를 아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 이해가 쌓일수록 팀은 조용한 힘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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