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밖의 행동이 제품을 다시 설계하게 만드는 순간
서비스를 만들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사용자가 우리가 의도한 흐름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기획 단계에서 그려놓은 이상적인 사용자 여정은 늘 흐름이 깔끔하게 이어지고, 필요한 정보는 적절한 위치에 나타나며, 사용자는 우리가 준비해둔 방향대로 하나씩 진행할 것 같지만, 실제 상황은 거의 늘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용자는 우리가 안내한 순서를 따르기보다 자신이 먼저 발견한 길로 움직이고, 화면의 의도를 읽기보다 본능적으로 손이 가는 위치를 먼저 누르고, 예외라고 생각한 행동들을 아무렇지 않게 반복한다. 이럴 때마다 설계한 흐름보다 사용자의 행동이 더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특히 오랫동안 서비스를 운영하는 팀일수록 이런 예외 행동들이 얼마나 빈번하게 나타나는지 잘 알고 있다. 업데이트를 준비하면서 특정 기능을 서브플로우에 넣어 정리해두었는데, 사용자는 그 기능을 메인 플로우처럼 사용하고 있었고, 분명 추가 기능이라고 생각했던 버튼이 오히려 가장 많이 눌린 항목이 되어 있기도 하다. 때로는 실수라고만 생각했던 행동이 실제로는 사용자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우회 경로일 때도 있다. 사용자는 우리가 만들어놓은 길보다 스스로의 목적에 더 충실하게 움직이고, 그 목적이 열리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길을 만든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우리가 설계한 흐름이 정말 사용자에게 맞는 흐름인지, 아니면 우리가 보기에는 명확하지만 사용자는 전혀 다르게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제품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사용자의 오용이 아니라 사용자의 자연스러움을 이해하지 못한 데 있는 것은 아닌지 같은 질문들이다. 특히 예외로 분류했던 행동이 어느 순간 규칙처럼 반복되기 시작하면 설계를 다시 봐야 한다는 신호가 되는 경우가 많다. 예외는 대개 소수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예외를 만든 이유가 사용자에게 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면 그 예외는 곧 새로운 기준이 된다.
사용자가 빠르게 움직인다는 말은 사용자가 개발보다 똑똑하다는 뜻이 아니라, 사용자의 세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뜻에 가깝다. 화면을 하나씩 읽으며 의도를 파악하는 사람보다 자신의 목적을 먼저 향해 행동하는 사람이 더 많고, 기능을 이해하기 전에 목표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사용자는 우리가 만든 플로우보다 자신의 리듬을 우선한다. 이 리듬이 흐름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오류라고 판단하지만, 사실 그 벗어남 안에는 사용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장면에서 머뭇거리는지가 모두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사용자의 예외 행동을 수습하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 그 예외가 생긴 이유를 이해하려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사용자가 의도하지 않은 곳을 눌렀다면 그 위치가 시각적으로 더 강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기능을 반복해서 잘못 사용했다면 기존 설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설명 자체를 읽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 사용자의 행동은 잘못이 아니라 신호이고, 그 신호가 반복될 때 제품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바뀐다. 설계자가 그 변화를 빨리 읽지 못하면 화면은 정교해져도 사용성은 나아지지 않고, 기능은 늘어나도 서비스는 복잡해지기만 한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패턴은 더 자주 보이게 된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넘겼던 행동이 사실은 더 많은 사람들이 반복하던 흐름이었고, 일부 사용자만 겪는 문제라고 생각했던 지점이 나중에는 전체 사용자의 경험을 바꿔 버리는 핵심 영역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런 순간들이 반복될수록 사용자의 행동은 예측의 대상이 아니라 관찰의 대상이 되고, 설계는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의 문제가 된다.
그래서 요즘은 설계를 마친 뒤에도 이것이 정말 사용자의 흐름을 따라간 결과인지, 아니면 우리가 상상한 이상적인 흐름을 적용한 결과인지 잠시 멈춰 바라보려고 한다. 사용자는 우리의 속도를 기다려주지 않고, 우리의 기대를 기준으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사용자는 항상 자신이 먼저 이해한 방식대로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쌓인 결과가 제품을 만들어 간다. 결국 제품이 안정되는 순간은 설계가 완벽해지기 때문이 아니라 사용자의 움직임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게 된 순간이다.
사용자는 개발보다 앞서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다시 설계를 움직인다. 그래서 제품이 발전하는 과정은 늘 사용자와 개발이 서로를 따라잡으려는 움직임의 반복이다. 그리고 이 반복 속에서 결국 더 단단해지는 것은 기능이 아니라 이해다. 이해가 쌓일 때 설계는 자연스러워지고, 자연스러워진 설계는 사용자의 흐름을 다시 넓힌다. 나는 그 흐름을 따라가는 일이 여전히 디자인의 본질이라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