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코딩을 배워야 하나요 v. 2026

배워야 할 건 기술이 아니라 경계다

by 김태길

이전에 디자이너가 ㅇㅇ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 관점을 새로 더해 2026년 버전으로 개편한 내용을 적어본다.





디자이너들이 모여 있는 오픈채팅방을 보고 있으면, 가끔 질문들이 묘하게 겹쳐 보일 때가 있다.


“디자이너도 코딩을 배워야 할까요?”라는 질문이 올라오고, 그 아래에는 “기획이나 마케팅까지 알아야 하나요?”라는 말이 이어진다. 누군가는 “요즘은 개발을 할 줄 아는 디자이너를 더 뽑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노코드 정도만 할 줄 아는데 이걸로 괜찮은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질문은 다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맥락은 꽤 비슷하다.


디자이너 커뮤니티에서 이 질문은 거의 계절성처럼 반복된다. 몇 달에 한 번씩, 트렌드가 조금 바뀔 때마다 다시 떠오른다. 예전에는 퍼블리싱이었고, 그다음에는 프론트엔드였고, 요즘에는 바이브 코딩이나 노코드, AI 개발 이야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질문의 형태는 달라도 핵심은 같다. 코딩을 할 줄 알면 더 유리해질까, 안 하면 뒤처지는 걸까,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할까 같은 고민들이다.


이 질문이 나올 때마다 분위기는 묘하게 갈린다. “무조건 배워두면 좋다”는 쪽과 “굳이 디자이너가 그걸 왜 하느냐”는 쪽이 나뉜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이 질문이 늘 기술의 필요성으로만 해석된다는 데 있다. 그래서 답도 기술 중심으로 흐른다. HTML, CSS는 알아야 한다거나, React를 이해하면 협업이 편해진다거나, 요즘은 AI로 다 된다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정작 질문을 던진 사람의 불안은 그보다 조금 다른 곳에 있다.


“귀가 얇기도 해서요”라는 말이 이 질문의 본질에 가깝다. 지금 내가 하는 방식이 맞는지, 혹시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다른 사람들은 더 멀리 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제자리에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한 불안이다. 코딩을 배워야 하나요라는 질문은 사실 지금의 나로는 부족한 것 같다는 감정이 형태를 바꾼 결과다.


그래서 이 질문에는 기술 스택으로 답을 하면 항상 어긋난다. 중요한 건 코딩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디자이너로서 어떤 문제까지를 내가 책임지고 싶은가다. 개발을 배운 디자이너가 모두 좋은 디자이너가 되는 것도 아니고, 코딩을 전혀 하지 않는 디자이너가 뒤처지는 것도 아니다. 차이는 기술의 유무가 아니라, 자신의 역할을 어디까지로 정의하고 있느냐에서 생긴다.


예를 들어 화면의 구조와 상태, 사용자 흐름을 정의하는 데까지 책임을 지고 싶은 디자이너라면, 코드 문법보다 컴포넌트가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는지, 상태가 어떻게 분기되는지를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 경우 코딩은 목적이 아니라 이해를 돕는 수단에 가깝다. 반대로 프로토타입을 넘어 실제로 동작하는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어야 하는 환경이라면, 노코드나 간단한 개발 도구를 다룰 줄 아는 게 분명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것 역시 모든 디자이너에게 동일하게 요구되는 기준은 아니다.


기획이나 마케팅에 대한 질문도 마찬가지다. 디자이너가 기획을 배워야 하나요라는 질문에는 늘 “그럼 PM이 할 일은 뭐죠?”라는 반응이 따라온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역할이 그렇게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다. 기획을 배운다는 말은, 기획자의 영역을 침범하겠다는 뜻이라기보다, 내가 만든 화면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지 이해하고 싶다는 뜻에 더 가깝다. 마케팅 역시 마찬가지다. 광고 문구를 직접 쓰겠다는 게 아니라, 사용자가 왜 이 화면에 도달했는지를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코딩을 배워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솔직한 답은 이거다.

배워야 할 수도 있고, 안 배워도 된다. 다만, 남들이 한다고 해서 따라 배울 필요는 없다. 대신 스스로에게는 한 번쯤 물어봐야 한다. 나는 지금 어떤 지점에서 일을 멈추고 있는지, 그리고 그 지점이 기술 때문인지, 아니면 역할을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를 말이다.


간단한 노코드 툴 정도만 할 수 있다고 했을 때 느껴지는 불안도 같은 맥락이다. 도구를 다룰 줄 아는 게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걸 어디에 써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불안해진다. 기술은 항상 상대적이다. 어떤 팀에서는 충분하고, 어떤 팀에서는 전혀 쓸모없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지금 이 기술이 내 일을 어디까지 확장해 주는지다.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이 질문이 계속 반복되는 이유는, 정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각자의 경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디자인에서 멈추고, 누군가는 구현까지 넘어가고, 누군가는 기획과 전략 쪽으로 이동한다. 그 선택 자체가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준은 아니다. 다만 그 선택을 남의 기준으로 하지 않을 때, 질문은 조금 덜 불안해진다.


결국 이 질문은 이렇게 바뀌는 게 더 정확하다.

디자이너가 코딩을 배워야 하나요가 아니라, 나는 디자이너로서 어디까지 책임지고 싶은가라는 질문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정리되면, 배워야 할 것도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그리고 그때 배우는 기술은, 유행이 아니라 도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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